바라바와 호란은 세겜시로 향했다.
나발이 제안한 인사 문제는 로벤을 비롯한 동료들을 먼저 석방한 후 결론을 내기로 했다.
다만 급하게 요청한 자금은 일단 반만 지급해 주기로 하였다.
이번에 바라바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사라의 태도였다.
그녀와 지내면서 어려운 일일수록 한마음이었는데 처음으로 사라가 바라바에게 정면으로 반발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심지어는 바라바의 판단력을 비난하며 이번에 나발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자기는 열성당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아몬과 헤스론이 그녀를 진정시키고 만류했지만 사라의 생각을 돌리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헤스론과 아몬도 나발의 뜻대로 해주면 안 된다는 사라의 주장에 동의했다.
머리가 복잡해진 바라바는 곧 칼로스 천부장을 만나서 동료들 석방 문제를 매듭짓고 황금 성배를 찾은 후 로마로 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넓은 세상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물론 가자마자 루브리아를 만나서 그녀와 미래를 같이 할 수 있는지부터 알아볼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선생이 한 달 후 로마로 출발한다는 소식이 왔으니까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 한다.
바라바의 안색이 별로 밝지 않은 것을 보고 옆자리에 앉은 호란이 넌지시 물었다,
“무슨 골치 아픈 문제가 있으신가요?”
“아니, 뭐 여러 가지를 좀 생각하다 보니까….”
“죄송해요. 저 때문에 한창 바쁘신데 이런 여행을 하시게 해서요.”
“천만에, 어차피 칼로스 천부장을 카이사레아에서 만날 거니까….
그리고 황금 성배는 에세네파의 보물인데 내가 당연히 같이 나서야지.”
마음이 좀 놓이는 듯 호란이 계속 말했다.
“이번에 황금 성배를 찾고 에세네파의 내부 갈등을 정리한 후 바라바 형님이 가족분과 쿰란에 오셔서 사시면 어떨까요?
요셉 선생님도 연세도 있으시고 가게를 오래 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형님도 곧 결혼도 하실 거고….”
“내가 곧 결혼을? 누구하고?”
“사라 님과 곧 결혼하실 거 아닌가요?”
호란이 당연한 듯 말했다.
“아니야. 아버지가 그러시던가?”
“네. 사라 님을 며느리로 생각하시고 말씀하시던데요.”
바라바가 별다른 대꾸를 안 하자 호란이 다시 화제를 바꾸었다.
“성배를 찾아도 성배의 비밀을 알아내려면 저 혼자는 어려울 것 같아요.
형님과 요셉 선생님이 계셔서 저를 도와주시면 큰 도움이 될 텐데요.”
“실은 나는 이번 일이 끝나면 로마로 가서 좀 있어야 할 것 같아.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선생과 거기서 만나기로 했어.”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황금 성배의 비밀은 모세가 죽기 전 가나안 땅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황금과 보물을 묻었다는 지도와 연관이 있겠지?”
“네, 성배 어딘가에 보물이 묻혀있는 지도가 그려져 있을 거예요.
빌립 할아버지도 어릴 때 한 번 성배를 보셨는데 지도는 찾지 못하셨대요.
만약 미트라교에서 성배를 절대로 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요?”
호란이 처음부터 걱정되던 문제를 질문했다.
“황금 성배의 원래 주인이 에세네파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끝까지 막무가내로 내놓지 않으면 우리도 열성단을 동원해야겠지.
우선 원만한 합의를 위해서 보물을 찾으면 어느 정도 분배해 주겠다는 제의를 하면 어떨까?”
“그렇게라도 해서 별 마찰 없이 받아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트라교가 신흥종교로 사마리아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라고 해요.
아마 자체적으로도 경호원이 사오백 명은 있을 거예요.”
바라바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겜의 미트라교 못지않게 요즘 예루살렘에서는 나사렛 예수 선생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대요.
지난번 우연히 사라 님을 만난 것도 그들의 모임을 찾아가던 길이었어요.
쿰란에서도 예수 선생이 부활 후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가 곧 다시 오신다는 소문이 퍼져있고요.”
“곧이라는 게 언젠가? 그분이 오시면 꼭 만나봐야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는데 적어도 몇 달 안에는 오시겠지요.
형님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으신데 만나셔야지요.”
“그래. 그분이 나를 기억하실 거야.”
잠시 대화가 멈추고 호란이 엄지손가락만 한 자줏빛 대추야자를 둥그런 통에서 꺼내 바라바에게 건네주었다.
“요셉 선생님이 가면서 먹으라고 주신 거예요.
사라 님이 가져온 거래요.”
바라바가 한 개를 천천히 다 먹은 후 말했다.
“사라는 예수 선생을 몇 번 만났어.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거기 있었고 나보다 그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을 거야.”
“쿰란의 에세네파 유대인들도 예수 선생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엘리야 선지자와 세례요한의 맥을 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꽤 있어요.
나사렛 예수의 부활은 처음부터 제자들이 꾸민 이야기라는 거지요.
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대개 가난하고 무식하다며 이처럼 사회의 하층민만을 유혹하는 자체가 그들의 한계라고 비난해요.
아마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들은 그분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클 거예요.”
“그럴 거야.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시작했지만, 한쪽에서 정치권력을 장악하면 스스로 무너질 때까지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숙청했지.
또 하나의 새로운 파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것 아닐까?”
“네, 그래서 에세네파는 그 권력 다툼에서 벗어나 수도 생활 위주로 하면서 종교와 정치는 어느 정도 분리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인생의 마지막 참된 진실은 어떤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있다’라는 말이 있지요.”
“음, 설마 그 말을 호란이 한 건 아니겠지?”
“네, 빌립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에요.”
“그렇구나. 그런데 쿰란에서 하는 수도 생활은 주로 어떤 훈련을 하나?”
“호흡명상이 기본이에요.
인간은 잘 때도 쉬지 않고 심장이 뛰고 코로는 숨을 쉬어야 사는데 그중 호흡은 우리가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숨을 가득 들이마시며 ‘감사’라는 말을 하고 천천히 내뿜으면서 ‘평안’이라는 말을 하면 세상에 있는 감사와 평안이 호흡을 통해 서로 교류하는 느낌이 들지요.
호흡을 통해 욕심과 불안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어요.”
“음, ‘감사’와 ‘평안’이라…나도 좀 해봐야겠네.”
마차가 벌써 그리심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