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판결.jpg

                                                                                  

바라바 370화 ★ 전투의 추억

wy 0 2025.02.26

생선을 다 먹자 노란 푸딩이 디저트로 나왔다.

 

매우 부드러운 맛에 기분까지 편해졌다.

 

작은 잔에 붉은색 빛을 띠는 디저트 와인이 무척 달았다.

 

아빠가 2년 후에는 은퇴를 하실 생각이세요.

 

아직 젊고 건강하신데 너무 일찍 공직에서 물러나시는 것 아닌가요?”

 

, 아직 하실 일이 많으실 텐데요.

 

2년은 거의 자동으로 연임도 되실 거고요.”

 

맥슨이 살짝 머리를 갸우뚱하며 계속 이어나갔다.

 

어쩌면 지금 대장님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될 듯도 합니다.

 

여기서 4년을 하신 후에는 게르만이나 페르시아 사령관으로 나가실 텐데 대장님은 그 전에 적당히 그만두시려는 겁니다.”

 

예전에 게르마니쿠스 장군이 했던 일이군요.”

 

, 대장님은 공직 생활을 계속하시면 그렇게 되시는 코스지요.

 

그리고 그 후에 알렉산드리아나 에스파냐 총독으로 나가실 수도 있지요.”

 

지난번 칼리굴라 님의 파티에 갔었는데 곧 에스파냐 총독으로 나가는 분을 만났어요

 

성함이 갈바라고 하신 것 같은데.”

 

, 갈바 장군님인데 우리가 볼 때는 정치군인이에요.

 

군인이라면 부하 장병들과 같이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같이 전투한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그분은 한 번도 전방은 나가지 않았지요.

 

일반 병사들이 존경하고 마음으로 따르는 장군이 두 분 있는데 한 분은 바로 로무스 대장님이고, 또 한 사람은 젊은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입니다.”

 

, 그분도 그날 왔었어요.

 

이름이 길어서 기억을 못 했는데 그분 맞아요.”

 

루브리아가 디저트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너무 달아서 몰랐는데 은근히 독한 술이었다.

 

목으로 넘어가는 짜릿한 느낌이 오랜만에 조금 취하는 듯했다.

 

칼리굴라 님이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맥슨이 잔을 놓고 칼리굴라를 언급했다.

 

저도 그렇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가요?”

 

그분이 의식적으로 서민들과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해요.

 

아마 속으로 대단한 야심, 아니 대단할 건 없지요.

 

충분히 가능한 야심이니까.

 

즉 다음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어떻게 하겠다는 예행연습을 하는 듯해요.”

 

루브리아가 화제를 돌렸다.

 

어쩐지 맥슨과 칼리굴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싫었다.

 

맥슨 님은 유대에 오시기 전에 어디서 근무하셨나요?”

 

질문을 하고 보니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는 라인강 전선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간혹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지요.”

 

어머, 그러셨군요. 저도 아주 어렸을 때 거기 있었는데 후방에만 있어서 전투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요.”

 

맥슨의 순박한 눈이 루브리아의 관심에 기뻐하는 듯하면서도 곧 서늘하게 바뀌었다.

 

전투에 대한 기억은 없으셔야 합니다.”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사는 남자들의 전투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그 무서운 싸움터에서 얼마나 계셨어요?”

 

“2년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일찍 백부장이 되었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제가 자원해서 갔습니다.”

 

맥슨이 붉은색이 도는 디저트 와인 한 잔을 꿀꺽 삼켰다.

 

전투란 것은.”

 

맥슨이 조금 망설였다.

 

루브리아 님은 아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알고 싶어요.”

 

그녀의 반응이 강했다.

 

아빠도 똑같이 말씀하시는데 제 생각은 달라요.

 

로마의 수많은 여자들의 남편, 형제, 아빠가 군인이지요.

 

여자들이 좀 알아야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좀 더 도울 수 있을 거예요.”

 

맥슨이 루브리아를 잠시 바라본 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모든 전투는 마지막에 백병전으로 결말이 납니다.

 

화살과 창을 다 던지고 쏜 후에는 칼과 도끼 등을 가지고 육박전을 하는 거지요.

 

백병전은 소리가 다릅니다.

 

처음에는 서로 함성을 지르고 칼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만 곧 우두둑 소리가 나기 시작하지요.

 

뼈가 부러지고 갈리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는데 짐승들의 울음소리와 비슷합니다.

 

백부장은 80명 정도의 직속부대를 이끌고 맨 앞에서 돌격하는데.”

 

맥슨이 긴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루브리아의 눈을 쳐다보았다.

 

계속 듣고 싶으냐는 질문이었다.

 

루브리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시작 전에는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고 갑자기 추워지기도 하는데 손이 떨리는 모습을 감추려고 팔장을 끼는 사람이 많지요.

 

하지만 일단 백병전이 시작되면 정신없이 앞으로 돌진하느라 무서울 새가 없어요.

 

백병전은 그야말로 생지옥입니다.

 

모두 인간이 아니지요.

 

서로를 찔러 죽이고, 때려죽이고, 목을 자르고, 눈이고 입이고 닥치는 대로 찌르지요.

 

울부짖는 소리, 신음 소리, 뼈와 살이 으스러지고 내장이 터지는 소리, 우드득, 퍽퍽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들립니다.

 

전투가 끝나면 살아있는 동료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완전히 딴 얼굴이 되어 있어서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없어요.

 

그날 밤부터 다시 몸이 떨리고 무서워지기 시작하지요.

 

전투의 순간순간이 떠오르고 내일은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공포가 극에 달하지요.

 

독한 술을 먹지 않으면 견디기가 힘듭니다.

 

손이 떨려서 고개를 숙여 술대접에 바로 입을 대지요.

 

그렇게 전투를 치르며 멀쩡하게 살아남았다는 것이 어떤 때는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전쟁터에서 두렵지 않다는 사람을 나는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시저 장군도 아그리파 장군도 무서웠을 거예요.

 

그래서 그들의 동상을 보면 떨리는 것을 감추려고 팔짱을 끼고 있지요.

 

그런 조각상을 보면 속으로 우스워요. 하하.”

 

[크기변환]1shutterstock_1735366334.jpg

 

그래도 시저 같은 분들은 뒤에서 병사들을 지휘하지, 맨 선봉에 서지는 않잖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자신이 없었다.

 

그분들도 젊었을 때는 백병전을 치른 분들이지요.

 

또 높은 지위가 전투에서 생명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도 로마 내전에서 브루투스 군대의 습격을 받아, 늪지대에 얼굴만 내놓고 삼 일을 숨어있다가 간신히 살아났지요.”

 

루브리아가 긴 숨을 내쉬었다.

 

아빠가 전투 이야기를 안 해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맥슨의 얼굴에서 그런 백병전을 겪은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으나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가 더욱 믿음직스러웠다.

 

그래서 루고의 등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창으로 관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디저트 와인도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았다.

 

 

 

State
  • 현재 접속자 9 명
  • 오늘 방문자 144 명
  • 어제 방문자 298 명
  • 최대 방문자 1,075 명
  • 전체 방문자 323,975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