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슨 백부장과 만나기로 약속한 식당은 폼페이우스 대극장 옆에 있는 최고급 생선요리 전문 식당이었다.
한겨울을 빼고는 쉬지 않고 음악회와 연극을 상연하는 극장 덕분으로 식당은 늘 만원이었다.
맥슨 백부장이 루브리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에게 걸어가는 그녀의 우아한 모습이 사람들의 눈길을 저절로 끌었다.
맥슨의 가슴이 행복한 흥분으로 살짝 뛰고 있었다.
“일찍 오셨나 봐요.”
종업원이 빼주는 의자에 앉으며 루브리아가 말했다.
“조금 전에 왔습니다. 늦게 오면 자리를 잡기 힘들어서요.”
“네, 지금도 벌써 자리가 반 이상 찼네요.
오늘 극장에서는 무슨 연극을 하나요?”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투를 각본으로 한 연극인데 사람들이 매일 꽉꽉 찬다고 합니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이 그리스를 침공한 이야기를 연극으로 하나 보네요.”
“네, 그렇습니다. 루브리아 님이 관심이 있으시면 며칠 후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맥슨이 또 루브리아와 만날 좋은 기회라 생각하며 말했다.
“네, 저도 역사책에서 배운 기억이 나요.
페르시아의 50만 대군을 그리스와 스파르타 연합군이 무찌른 이야기인데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런 전쟁 이야기를 연극으로 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연극도 연극이지만 무대장치와 음악도 상당히 대규모로 받쳐줘야 하니까요.
루브리아님이 음악을 하셨으니까 꼭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종업원이 분홍색 로제와인을 루브리아의 잔에 먼저 따랐다.
“이 와인은 가스가 나오는 지하수를 섞어 만들어서 시원하고 맛이 순합니다.”
맥슨이 와인을 설명하며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올렸다.
루브리아도 잔을 낮게 들어 올렸고 두 잔이 가볍게 부딪히며 맥슨의 시선이 그녀를 똑바로 향했다.
“제우스신께 맹세코 루브리아 님의 행복을 위해 저의 모든 것을, 생명까지도 아깝지 않게 바치겠습니다.”
맥슨의 말을 들으니 그가 예루살렘에서 루고의 등에 창을 찌른 광경이 갑자기 떠올랐다.
어쩌면 맥슨은 이미 그때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듯했다.
루브리아가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사실 그 당시 맥슨이 아니었으면 루브리아가 큰 해를 당했을 수도 있었다.
루고가 비록 재판정의 피고였으나, 같은 로마 백부장을 향해 그런 행동을 즉각 취한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그의 진심이 느껴지며 맥슨을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종업원이 전채요리로 샐러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싱싱한 연한 상추에 생선 내장 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것은 감사한데요…아직 하고 싶은 공부가 좀 많아서요.
유대에서 온 지도 얼마 안 되고….”
루브리아가 적당히 핑계를 대었다.
아무 말을 않고 있다가는 그의 마음을 받아준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터이다.
맥슨이 즉시 입을 열었다.
“네, 루브리아 님이 하고 싶은 공부는 뭐든지 계속하십시오.
루브리아 님은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성을 갖추신 분입니다.
그런 분은 평생 그 지혜를 갈고 닦아 주위 사람들의 밝은 빛이 되셔야 합니다.”
“과찬의 말씀이세요. 어림도 없어요.”
“아닙니다. 저는 루브리아 님이 앞으로 로마제국을 위해 비록 여성이지만 로무스 장군님 못지않은,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을 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루브리아가 아무 대답 없이 샐러드를 한 입 먹었다.
발효된 소스 맛이 혀를 자극하여 상추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아직도 거품이 올라오는 핑크빛 포도주를 마시자 맥슨도 그제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순박한 마음에서 나오는 진솔한 자세는 식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력적인 얼굴은 아니지만 특별히 어디 흠잡을 곳은 없는 용모였다.
샐러드를 거의 다 먹은 후 루브리아가 입을 열었다.
“로마제국은 아직도 계속 팽창 중이고 맥슨 백부장님 같은 분이 하실 일이 많지요?”
“네, 그렇습니다. 서쪽으로는 세상의 끝인 에스파냐까지 이르렀고 북쪽으로는 브리튼을 잠시 점령했다가 지금은 철수한 상태지요.
동으로는 게르만 야만족들과 라인강을 전선으로 잠시 휴전한 상황이고 남으로는 페르시아와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쪽을 빼고는 온통 전투 중이군요.
맥슨 님은 전선으로 갈 계획은 없으신가요?”
그가 샐러드를 찍은 포크를 접시에 내려 놓았다.
오른손을 뻗어 앞에 있는 포도주를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 루브리아를 바라보았다.
“루브리아 님이 가시면 저도 따라가야지요.”
맥슨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루브리아 님이 계신 곳은 어디나 전선입니다.
예루살렘, 갈릴리, 카이사레아도 그랬지요.
사실 지금 여기 로마도 어느 곳보다 위험한 곳입니다.”
식당의 큰 창문으로 테베레강이 넓게 내려다보였다.
구불거리며 로마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장대한 강은 여러 전투지역을 묵묵히 흘러 여기까지 왔으리라.
강 저편으로 지는 태양이 붉은 낙조를 서서히 떨어뜨렸다.
“네, 그렇긴 하지만요. 저는 세계의 끝이 궁금해요.
서쪽은 바다가 나와서 더 갈 수 없지만 동으로는 게르만 지역을 지나면 끝없는 땅이 펼쳐진다고 들었어요.
그쪽으로도 끝까지 가서 바다를 보고 싶어요.”
“라인강을 넘으면 엘베강이 있는데 그 강을 지나면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고 대단히 추운 땅이 한없이 이어진다고 해요.
아래로는 페르시아를 건너서 인도라는 큰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를 지나면 바다가 나와서 남쪽 끝이라고 합니다.
알렉산드리아 쪽은 조금만 더 내려가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에 막혀서 갈 수 없고요.”
맥슨이 설명을 다 마쳤다는 듯이 포크를 집어서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 폭동은 좀 수그러들었나요?”
“네, 유대인들의 인명피해가 엄청 많았는데 이제 좀 진정 국면이라고 하네요.
그들이 곧 로마에 와서 황제와 원로원에 자기들의 억울함을 직접 호소하기 위해 각 지역의 대표를 뽑고 있다고 해요.”
종업원이 루브리아가 시킨 흰 살 생선요리를 가지고 왔다.
가시를 미리 발라내고 두툼한 생선 살 위에 버터와 레몬이 살짝 녹아 있었다.
테이블 위 여덟 개의 은촛대 위에 불을 붙이자 분위기가 아늑해지며 촛농 흐른 냄새가 나는 듯했다.
폼페이우스 극장의 연극이 끝났는지 식당에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