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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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260화 ★ 다락방 만찬

wy 0 2024.02.07

예수 선생 일행이 만찬 장소에 도착했다.

열두 제자들과 여성 제자들 그리고 베다니에 있던 그의 추종자들이 조용히 따라왔다.

예루살렘의 저녁은 아직 춥지 않았고 어두워지는 하늘에 허연 보름달이 뜨기 시작했다.

니고데모 님 집은 아닌가 봐. 이렇게 작지는 않을 텐데...”

수산나가 마르다에게 속삭였다

미리 도착한 요한이 선생 일행을 안으로 안내했고 베드로가 큰 상자를 들고 뒤따랐다.

기대를 잔뜩 안고 기다리던 엘리아셀과 성내 사람들도 선생을 맞이했다

오늘은 분명히 중대 발표가 있고 놀라운 일도 벌어지리라.

이제 곧 유월절이니 이 집 어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양의 피가 발라져 있을 것이고, 큰 기적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다면 오늘 밤이나 내일은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도 있다.

선생이 이런 모임을 성내에서 하는 것은 처음이니 더욱 은근한 열망이 집안 분위기를 달구었다.

오늘 만찬은 선생과 열두 제자가 따로 2층에서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1층 넓은 홀에서 편안하게 즐기도록 준비되었다.

집안에 들어가니 고소한 양고기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예수 선생 일행이 돌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갔다.

집주인은 어떤 이유에선지 준비만 마쳐 놓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긴 식탁 위에는 다섯 갈래 촛대가 중간에서 밝게 빛났고, 벌써 무교병과 양고기가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틀림없이 흠결 없는 1년생 숫양일 것이다

큰 그릇에 채소와 과일도 담겨 있었다

베드로가 상자 안에 든 포도주를 꺼내 선생의 잔부터 따르고 모두의 잔에 가득 부었다.

검은색이 도는 진한 보라색에 달콤한 제비꽃 향기가 방안에 퍼졌다

이렇게 격식 있는 테이블에 앉게 되니, 예수 선생의 양옆에 자리한 베드로와 요한이 마치 제자들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고, 맞은편 중앙에 앉은 유다는 선생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시장한 제자들이 어서 선생이 먼저 빵을 집어 들기 기다리는데 아무도 예상 못 한 일이 발생했다.

예수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떠 와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겠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당황스럽고 송구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유대에서는 노예라 하더라도 주인의 발을 닦아 줄 의무는 없었다.

선생은 맨 먼저 맞은편에 있는 유다에게 다가와 그의 발 앞에 몸을 숙였다.

최후의 만찬 [크기변환]1shutterstock_1668219748.jpg

유다는 아무 말 없이 발을 내밀었다.

이제 마지막 의식이 시작된다고 그는 확신했다.

오늘 만찬이 연극의 한 장면이라면 선생이 주연이고 나는 조연이다.

아마 제자 중 조연이 한두 사람 더 있겠지만 상관할 바 아니다.

각본은 하나님이 쓰셨으니 배우는 연기에 충실할 뿐이다.

예수 선생을 처음 만나 그를 따르며, 몇 년간 선생 일행의 재정을 맡아 분주하게 다니느라 굳은살이 여기저기 박인 유다의 투박한 발을 선생의 손이 어루만졌다.

바로 얼마 전에도 가야바의 집에 몰래 다녀오느라 바빴던 발이었다

유다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가 지금 선생에게 모두 밝히고 어서 피하라고 하면 어찌 되는가

지금도 1층에는 대제사장의 첩자가 선생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베다니나 이곳을 알고 있었다.

다만 주위에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예수 일행을 체포하면 큰 소란이 날 수 있고, 유월절에 민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지금 피하면 또 하루 이틀 넘길 수도 있겠지만, 이제 와서 조연 배우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다.

선생은 모두 알고 있고, 가난한 자의 메시아든 유대의 왕이든 쓰인 각본대로 결판을 내야 한다.’

유다의 발을 다 닦은 후 옆에 앉은 도마로 옮겨 가는 선생의 손이 분주했다.

제자들은 유다가 처음에 태연하게 발을 맡기자, 어서 이 어색한 행사를 끝내고 식사를 하고 싶어서 모두 자연스럽게 발을 내밀었다.

누구의 배에서인지 크게 꼬르륵 소리가 났다.

잠시 후 선생이 마지막으로 베드로의 발 밑에 대야를 놓고 앉았다.

선생님이 어찌 제 발을 씻으십니까?”베드로가 발을 내밀지 않았다.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 것이고, 내가 여러분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여러분도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습니다.”

선생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베드로의 발까지 다 씻기고 선생은 조금 피곤한 기색으로 식탁에 있는 큰 물병의 물을 요한에게 한잔 따라 주며 물었다.

이 소금물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노예 생활을 하며 흘린 눈물을 상징합니다.”

소금물을 한 잔씩 모두 마신 후 선생이 비로소 무교병 빵을 한 조각 떼기 시작했다.

시장한 제자들은 음식을 허겁지겁 뱃속으로 집어넣었고, 포도주와 같이 먹는 양고기는 부드럽고 기름졌다

각종 쓴 나물과 양의 정강이뼈도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었다.

한동안 주위에는 고기를 뜯어 먹는 소리, 쩝쩝거리며 뼈를 핥는 소리, 술 따르는 소리와 함께 1층에서 벌써 취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도 간혹 새어 올라왔다.

선생은 음식을 별로 입에 대지 않았으나 초조한 유다를 제외하고는 이를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

아래층에서는 네리와 함께 조금 늦게 들어온 사라를 살로메가 반갑게 맞이하며 그녀의 옆자리에 앉혔다

베다니에서 온 식구들과 주위에서 소문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 여기저기 섞여 있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유쾌하게 떠들며 술과 고기를 먹고 있었지만, 대부분 신경이 2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쏠려 있었다.

지난 일요일 선생이 성전에 나타나서 크게 환영받을 때의 정경, 이방인의 뜰에서 비둘기를 팔던 상인의 모습, 선생이 분노하며 환전상들의 탁자를 엎어 버렸던 모습이 그들의 뇌리에서 오갔다.

사라 님이 가져온 포도주가 어쩜 이렇게 시지도 않고 맛있어요.” 

수산나가 나폴리산 고급 포도주를 한 잔 사라에게 따르며 말했다.

나도 그 술 한 잔 마셔 봅시다.” 옆에서 걸쭉한 목소리가 들렸다.

병을 보니까 우리 식당에서는 못 보던 건데 어디서 사셨소?”

엘리아셀이 수산나에게 빈 잔을 쑥 내밀었다.

이건 나폴리에서 직접 가져온 귀한 포도주예요.”

그녀가 술을 조심스레 따라주었다.

, 역시 좋네. 우리도 앞으로 사 놔야겠어요.”

그가 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묵직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내일 아침에는 모세가 일으킨 기적처럼 문설주에 표시가 없는 이 땅의 못된 지배층들에 저주가 내리겠지요

위층에서 그 작전을 짜고 있나 봐요.

베다니에는 다시 안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여기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는 안 올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누가 올라가서 좀 보고 오세요.”

엘리아셀이 자기가 할 말만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지 않아도 나중에 요한이 잠깐 내려오면 루브리아 님의 눈 얘기를 선생께 하라고 할게요.”

살로메가 사라의 귀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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