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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붕어 - 한돌

wy 0 2021.12.03

 

국화와 붕어

 

 

어린 날의 우정은 샘물과 같은 것이다

탁한 강물을 만나더라도 변치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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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참 소중한 것이다.

 

살다가 힘들면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고장 난 마음을 고쳐 주기도 한다.

 

추억창고에 들어가서 아무 추억이나 꺼내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동무들도 없고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하여 우정과 사랑에 대한 얘깃거리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추억창고는 쓸쓸하기 짝이 없다.

 

내게 아름다운 추억 몇 개만 있어도 살아갈 힘이 될 터인데 제대로 영근 추억이 없으니 나는 정말 재미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아주 가냘픈 추억이라도 떠오르면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애를 쓴다.

 

 

어느 겨울 날 녹음을 끝내고 집에 가는데 붕어빵 노점이 보였다.

 

그냥 지나가려는데 비닐포장 사이로 흘러나오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러 하는 수 없이 붕어빵을 만나고 말았다

 

사실 어릴 때 처음 먹은 풀빵은 붕어빵이 아니고 국화빵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국화빵이 보이지 않았다.

 

붕어빵 굽는 아주머니한테 물어보았더니 자기도 국화빵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붕어빵 한 봉지를 들고 집에 가는데 문득 국화빵을 함께 나누어 먹었던 어린 날의 동무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에서 전학을 온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언제나 조용했으며 옷도 늘 단정하게 입고 다녔다.

 

그런데 아이들이 말을 걸거나 귀찮게 하면 눈을 흘기며 이마를 찌푸리기도 해서 친해지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갸름한 얼굴에 쌍꺼풀이 굵게 진 눈매가 예뻐 보였는데 경상도 사투리와 살짝 보이는 덧니까지 귀여워서 나는 그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즐거웠다.

 

하지만 그 아이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그런 날이 이어지자 아이들은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아이가 아이들을 무시한 적은 없지만 하도 어울리려고 하지 않으니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루는 아침부터 하늘이 꿀꿀하더니 수업이 끝날 무렵 비가 내렸다.

 

미리 우산을 갖고 온 아이들은 몇 명 안 되었고 대부분 아이들은 엄마가 우산을 갖고 오기를 기다렸다

 

날 나는 그 아이가 노란 우산을 쓰고 운동장을 걸어가는 모습을 교실 창문을 통해서 바라보았다.

 

어쩌면 우산까지 남다른 노란 우산일까?

 

얼른 달려가서 그 아이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뺨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 그냥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았다.

 

비록 무뚝뚝한 아이였지만 보이지 않으니 보고 싶었다

 

선생님은 위문을 가야겠다며 같이 갈 사람은 교실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모두들 그 아이를 멀리했지만 나는 그 아이가 싫지 않았다. 그날 교실에 남은 아이는 나 혼자뿐이었다.

 

아이들의 쑥덕거림이 귓전에 맴돌았지만 나는 모른 척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해가 빛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 비라고 생각했다

 

불현듯 노란 우산을 쓰고 가던 그 아이가 떠올랐다.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운동장을 걸어가던 노란 우산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빗줄기가 아까보다 좀 더 굵어졌고 선생님 우산 속에 들어간 나는 옷이 다 젖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걸었다

 

걸으면서 그 아이 생각을 하는데 가슴이 막 뛰었다.

 

선생님, 경이네 집은 부자예요?”

 

몰라. 선생님도 처음 가는 거야. 그런데 너는 왜 경이한테 위문 가기로 했니?”

 

집이 어떻게 생겼나 보려고요.”

 

너는 경이가 궁금한 게 아니고 경이네 집이 궁금한 게로구나.”

 

선생님이 웃으면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그 아이가 보고 싶어서 가는 거지만 한편으로는 그 아이의 집이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양옥집인가 뭔가 하는 집에 사는 줄 알았던 나는 그 아이의 집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상상한 그 아이의 집은 높은 담이 있는 이층집이었고 잘생긴 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는 그런 집이었다.

 

오락가락 내리던 비가 멎었다. 비에 씻긴 풀들이 반짝였고 저만치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이 그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내 상상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높은 담은커녕 다른 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당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피어 있었고 싸리나무 울타리 위로 잠자리들이 징검다리 건너듯 옮겨 다니고 있었다.

 

뜻밖의 방문에 어머니는 마루에 앉아 참외를 깎아주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선생님이 왔다는 소리에 방에 있던 아이가 문을 열고 나와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나한테도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드디어 그 아이가 나한테 말을 했고 나 또한 그 아이한테 처음으로 말을 하게 되었다.

 

고맙긴 뭘, 네가 갑자기 학교에 안 나오기에 무슨 일인가 궁금했어. 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까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고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내 표정을 본 아이는 핼쑥한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때 보고 싶었던 그 아이의 덧니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모습을 계속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 아이의 집을 담이 높은 이층집이라고 생각한 것이 무슨 큰 죄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고개를 돌려 꽃밭을 보았다

 

꽃들이 내 마음을 눈치채고 히죽거리는 같았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학교에 불이 났다. 그래서 우리는 커다란 군용 천막에서 수업을 받았다.

 

그 무렵 경이랑 친하게 지내는 아이가 있었는데 경이랑 같은 동네에 사는 영수라는 아이였다.

 

나만 경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몰래 좋아하는 거였고 영수는 국화빵을 사서 경이랑 나누어 먹는 사이였다.

 

나는 경이와 더 친해지기 위해서 연극놀이를 할 궁리를 하였다

 

어느 날 경이한테 연극놀이 하자고 하니까 좋다고 하였고 그 말을 들은 영수도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방과 후에 우리들은 연극을 하게 되었다

 

나는 영수에게 괴뢰군 역할을 시키고 나는 국군 역할을 하고 경이는 간호사 역할을 하였다.

 

내가 총에 맞으니 경이가 치료를 해 주었고 그러다가 경이가 영수한테 잡혀갔는데 내가 뒤쫓아서 영수를 총으로 쏴 죽였다.

 

그래서 나는 경이를 구해서 천막 밖으로 나왔다. 그랬더니 영수가 다음엔 나보고 괴뢰군하라며 이마를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3학년이 되자 천막 교실을 떠나 새로 지은 교실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새 교실로 이사 온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칠판에 낙서도 하고 요란했다

 

하루는 쉬는 시간에 칠판에 낙서를 하고 있는데 영수가 내 바지를 홀랑 벗기고 달아나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야? 하고 뒤돌아섰는데 아이들이 깔깔대고 웃었다

 

왜 웃나 봤더니 내 고추를 보고 그러는 것이었다. 얼른 바지를 추켜올리는데 경이와 눈이 마주쳤다.

 

경이가 내 고추를 봤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지고 영수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나는 영수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영수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한 나는 영수를 실컷 때려 주고 싶었다.

 

이참에 나는 영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서 경이와 더 친해지리라 생각했다

 

드디어 방과 후에 싸움이 붙었다. 나는 영수한테 정신없이 얻어맞고 코피까지 흘렸다.

 

학교에서 우리 집 가는 길에 찐빵도 팔고 국화빵도 파는 가게가 있었다.

 

하루는 경이랑 같이 걷다가 날씨도 춥고 해서 국화빵을 사 가지고 경이랑 나누어 먹었다.

 

드디어 나도 경이랑 국화빵을 나누어 먹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너무 기뻐서 경이네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내가 날마다 바래다주겠다고 하자 경이는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였다

 

나는 납작해진 코를 어루만지면서 집으로 왔다.

 

나 혼자 쌓은 경이와의 추억은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다가 무너지고 말았다

 

경이가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얘깃거리를 더 만들 걸. 얘깃거리가 없는 추억은 풀죽은 풀빵이지

 

그리고 추억은 같이 만들어야지 혼자 만드는 추억은 추억이라고 할 수가 없어.

 

경이한테 잘 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서 멈추는 바람에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다.

 

어른들은 사랑하다 헤어지면 미련이 남아서 가슴을 태우기도 한다지만 아이들은 사랑을 모르니까 그냥 추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경이와의 추억은 나 혼자만의 추억이었기에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인가? 3학년을 마치고 나도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보내려는 아버지의 뜻이었지만 나는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경이와 만나는 상상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남대문초등학교에서 4,5학년을 다니고 6학년 때는 다시 덕수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 사이 경이는 내 머릿속에서 거의 다 지워졌고 전학을 자주 다니다보니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동무 사귀는 것도 어려웠다.

 

춘천에서는 그래도 명랑한 아이였는데 서울에서는 아예 말이 없는 아이가 되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경이가 전학 와서 왜 말을 안 하고 지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다가오자 학교에서는 여학생이랑 남학생이랑 같이 시험을 보게 하였다

 

아마 긴장감을 조성하고 커닝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여자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들어가는데 나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금세 주눅이 들었다.

 

의자에 앉아서 선생님이 시험지 나누어 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편 책상 앞에 앉아있는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시험이 시작이 되었는데도 자꾸만 그 여자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 여자 아이의 옆모습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서 커닝하지 말라며 꿀밤을 주었다

 

꿀밤 맞은 것은 기분은 나빴지만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은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그 여자 아이를 쳐다보았다. 서울로 유학을 떠날 때 경이와 만나는 상상에 빠졌었는데 그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 여자 아이는 분명 경이였다.

 

 

나는 그날 시험을 망쳤다. 경이는 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나 역시 한마디도 못하고 헤어졌다.

 

그냥 반갑다고 하면 될 것을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멈춰버리는 것이었다

 

경이와 내가 같은 학교에 다녔다고 생각을 하니 운명이라는 게 정말 정해져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졸업식 날이 되었다.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은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병사들처럼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저만치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경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서 어느 중학교에 들어갔느냐고 물어보면 되는데 이번에는 발이 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나 어른이나 사랑하는 감정은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이들은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뿐이다.

 

여자와 남자의 우정이라는 것도 가만히 내버려두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일인데 그걸 사랑으로 꿰어 맞추려다 보니 추억이 변질되는 것이다.

 

나 역시 경이와의 얘깃거리도 별로 없으면서 그것을 추억으로 부풀리다 보니 사랑하는 마음이 꿈틀거리기도 하였다.

 

조그만 아이가 무슨 사랑을 알겠냐마는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좋아하는 감정은 있는 것이고 그 감정이 발효가 되어 사랑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충분이 느낄 수 있었다.

 

짝사랑과 사랑의 차이점은 맞울림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경이에 대한 나의 사랑은 맞울림이 없으므로 짝사랑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이었다. 버스 타고 광화문 새문안 교회 앞을 지나가는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경이를 보았다.

 

경이는 금란여고 교복을 입고 있었고 조금은 쓸쓸하게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얼른 달려가고 싶었지만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나는 경이한테 말을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나에게 무슨 병이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나는 여학교 앞을 지나다니지 못했고 여학생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무튼 서울 와서 경이를 세 번 보았다. 모의고사 시험 볼 때 한 번, 졸업식 때 한 번 그리고 세문안 교회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 한 번. 그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 번을 볼 동안 한 마디 말도 건네지 못한 것도 믿을 수 없는 일이였다

 

어린 날의 우정은 샘물과 같은 것이다. 탁한 강물을 만나더라도 변치 말았으면.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의 추억창고는 썰렁하다.

 

혼자 떠돌다 보니 사람은 없고 풍경만 가득하다. 풍경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기차가 있는 풍경이다. 어릴 때 역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누구랑 기차 타고 여행을 가는 그런 추억이 있어야 하는데 나의 추억창고에서는 빈 기차 소리만 들린다.

 

지금 나는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간다. 먼 훗날 추억창고에서는 오늘의 나를 볼 수 있으려나?

 

부산에서 일을 마치고 마산에 살고 있는 동무를 만나러 갔다. 무슨 시장이었던가

 

동무랑 함께 그 부근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갔는데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우리뿐이었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가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어서 깜짝 놀랐다

 

경상도 사투리에다 갸름한 얼굴에 쌍꺼풀이 굵게 진 눈매!

 

어린 날의 경이와 너무 닮아서 잠시 심장이 뛰었다. 말을 붙여볼까 하다가 궁리 끝에 점쟁이 흉내를 냈다. 

 

제가 뭐 좀 맞추는데 맞추면 안주 한 사발 어때요?”

 

그래요? 그 대신 못 맞추면 안주값 더블이요.”

 

나는 점쟁이처럼 주인아주머니의 얼굴을 두루 살폈다.

 

이름이 경이지요?”

 

주인아주머니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어떤 안주가 필요하냐고 말했다.

 

오징어 한 마리 데쳐 주세요.”

 

아니 근데 어떻게 보자마자 이름을 맞춘대요?” 

 

그냥 한번 찍어봤지요.” 

 

그러자 주인아주머니는 싱거운 표정을 지으며 다른 걸 맞춰보라고 하였다.

 

자 그럼, 이번에도 맞추면 안주 한 사발 더?”

 

그럼 못 맞추면 더블에 더블이요.”

 

나는 점쟁이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을 하는 척했다

 

주인아주머니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 고생을 많이 한 얼굴이었다.

 

고생을 많이 했군요. 혹시 춘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았습니까?”

 

주인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더블에 더블이요.”

 

나는 말하고 싶었다.

 

너 경이지? 나야, . 춘천 중앙국민학교! 우리 천막 교실에서 연극도 했잖아.

 

너는 간호원 하고 영수는 괴로군 하고 나는 국군 했잖아.

 

내가 너를 구해서 천막 밖으로 나왔는데 생각 않나?

 

선생님이랑 너네 집에 갔을 때 너네 엄마가 참외도 깎아 주고 그랬잖아.’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모르는데 굳이 지난날을 끄집어낼 필요가 있을까?

 

설사 그 아주머니가 내가 기억하는 경이라 할지라도 경이의 추억창고에는 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포장마차를 나서는데 저만치 붕어빵 노점이 눈에 들어왔다. 불현듯 주인아주머니한테 붕어빵을 사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붕어빵 노점의 비닐 포장을 젖이고 들어서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국화빵이 아니던가!

 

나는 너무 기뻐서 경이를 부둥켜안는 상상을 하고 말았다

 

국화빵 한 봉지를 사 가지고 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한테 내밀었다. 

 

아주머니가 보고 싶어서 또 왔습니다.”

 

아니, 뭘 이런 걸 다. 다음에 또 오이소, 고맙습니데이.”

 

아주머니 덧니가 예뻐서 다음에 또 와야겠습니다.”

 

환하게 웃는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찬바람 속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아주머니는 춘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았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어린 날의 내 동무로 보였다.

 

어쩌면 나는 썰렁한 나의 추억창고에 우정 어린 추억 하나를 진열해 놓고 싶어서 그 아주머니를 경이라고 우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멀리 떠난 국화빵이 보고 싶어 길을 떠난 붕어빵

 

하지만 국화빵을 찾지 못하고 풀죽은 풀빵이 되어 추억창고 앞에서 어린 날을 그리워하며.

 

 

국화 한 송이 붕어 한 마리

어울리지는 않지만

마음속에는 서로 똑같은

사랑이 있었지

뜨거울 때면 호호 불면서

맛있게 놀던 시절

차가울 때면 차가운 대로

따뜻했던 시절

예쁜 국화는 멀리 떠나고

홀로 남은 붕어는

차가운 바람, 바람 속에서

뜨겁게 식어가네

국화를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가 없었네

따뜻한 시절 그리워하는

풀죽은 풀빵

 

-국화와 붕어, 1990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5BFIc_a_z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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