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은 나를 건강하고 상쾌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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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인류 - 소로우 가상 인터뷰

wy 0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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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Q: 선생님을 생각하면 먼저 수필집<월든>이 떠오릅니다.

월든은 어떤 책인가요?

 

A: 나에게는 에머슨 선생이라는 친한 벗이자 멘토가 있었지요. 나는 한때 그분이 소유한 월든 호숫가에서 오두막집 생활을 했는데, <월든>은 그 생활을 담은 수필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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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수필집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내 손으로 집을 짓고 홀로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자연 속에서의 단순하고 자급 자족적인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았지요.

 

자발적 고립이라는 형식을 통해 인간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지적한 이 책은 출간 당시에는 큰 호응을 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20세기 환경 운동의 원천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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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 콩코드의 월든 호수

 

Q: , 이 책은 나중에 많은 분에게 큰 영향을 주었지요.

선생님은 채식을 하셨지요?

 

A: 나는 당시 에머슨 선생의 영향을 받아 채식을 하였소.

 

선생은 당신이 방금 저녁 식사로 고기를 먹었다면 아무리 도살장을 멀리하고 철저하게 감춘다고 해도 당신은 도살의 공모자다."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Q: 에머슨 선생은 어떤 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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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프 월도 에머슨   1804-1882

 

A: 그는 당시 유명한 철학자이자 시인이었고 하버드 대학 신학부를 나오셨어요.

 

내가 존경했던 선생은 나보다 13살 위였지만 나보다 20년 후에 돌아가셨지요.

 

저보다 33년이나 많은 삶을 사신 셈인데, 오랜 세월이 지나고 보니 큰 차이가 아닌 것 같네요.

 

그분은 동양 사상에도 밝았고, 편협한 종교적 독단이나 형식주의를 거부하셨지요.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목사가 되었지만, 3년간 목회를 한 후 목사직을 사임했어요.

 

자연 속에서 사색을 쌓아 '문학적 철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당시 미국과 유럽의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친 초월주의 철학을 전개하셨지요.

 

이후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니체나 다윈을 꼽을 수 있고, 가상 인터뷰니까 하는 말이지만 오바마도 에머슨 선생의 영향을 받은 듯 보이더군요.

 

물론 동시대를 살고 하버드 대학 동문인 내가 가장 큰 영향을 받았겠지만요.

 

 

Q: . 소로 선생님은 45년의 짧은 생애에 많은 글을 쓰셨습니다.

 

A : 나는 1817년 매사추세츠의 콩코드에서 태어났어요.

 

내가 일생 동안 추구한 정신은 단순하고 금욕적인 삶이었지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형과 함께 사립학교를 열어 잠시 교사 생활을 한 뒤, 한동안 목수, 조경, 토지 측량 등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산책하고 독서하며 생태학과 환경보호에 관한 책을 쓰며 보냈소.

 

Q: 선생님이 숲 속 작은 집에 들어가 사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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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로우가 살던 집 모형과 내부(아래)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한번 내 생각과 일치하는 인생을 살아보기 위해서였소.

 

또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여 인생이 가르치고자 한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싶었지요.

 

언젠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할까.

 

 

Q: 선생님은 희망을 가질 이유보다 절망할 이유가 더 많았습니다.

평생 가난했으며,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 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지만, 도전과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힘없고 소외받는 모든 존재들을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생태주의라는 말 자체가 없었던 시대에 선생님은 생태주의적 삶을 실천했고, 노예해방을 위한 투쟁이 목숨을 거는 일이었을 때도 기꺼이 그 위험을 감내했으며, 도시 문명의 위험과 한계를 뛰어넘어 어떻게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삶을 살 것인가를 평생 고민하셨지요.

 

선생님은 단지 도시가 싫어 자연 속으로 힐링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A: 1841, 스물네 살의 나는 호숫가에 가서 오두막을 짓고 혼자 살겠다는 생각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는데 커다란 반대에 부딪혔어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지요.

 

<당장이라도 훌쩍 떠나 호숫가에서 혼자 살고 싶다고 했더니 친구들은 나에게 핀잔을 준다. 거기 가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그러느냐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여름·가을·겨울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이 되지 않을까. 184112, 새해를 앞둔 마지막 날 나는 맹세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지닌 특성을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해로움도 실망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나는 마침내 월든 호수에 오두막을 짓기로 하고 모든 일을 준비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 나의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닮았다고 생각했던 사람, 친형 존의 죽음이었다.

 그 일은 내게 트라우마를 안겨 주었지만, 4년 후 나는 마침내 상처를 딛고 월든 호수를 향한 용감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Q: , 선생님이 월든에서 조용히 지낸 기간은 단지 22개월 동안이었고, 그 외에는 항상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 흑인 노예와 인디언을 향한 차별 철폐, 정의롭지 못한 국가를 향한 시민의 저항과 투쟁 등 수많은 운동을 주도하셨지요.

선생님의 또 다른 유명 작품으로 '시민 불복종' 이 있지요?

 

A: 월든 호숫가의 통나무집에서 살던 나는 어느 날 구두를 고치러 마을에 갔다가 붙들려 감옥에 들어갔지요.

 

6년 전부터 인두세 납부를 거부해오고 있었는데, 이는 노예 제도를 허용하고 멕시코 전쟁을 일으킨 정부에 항의하기 위한 행동이었어요.

 

내 친척이 나 몰래 세금을 납부해 주는 바람에 수감 생활은 단 하루에 그쳤지만, 이 사건은 나로 하여금 개인의 자유에 대립되는 국가 권력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로부터 3년 후 시민 불복종이라는 책을 내게 됩니다. .

 

이 책도 오랜 기간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가 톨스토이에게 발견되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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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불복종

 

 

Q: 그 책은 마틴 루터 킹의 흑인 민권 운동에 영감을 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지금 읽어도 요즘 나온 책 같은 부분이 많습니다.

 

A : 이 책의 내용 중 아래 글들이 종종 인용되고 있어요.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Q: , 저도 들어본 적이 있는 말씀 들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일부러 가난하게 사셨나요?

 

A: 가난하게 사는 것이 나의 계획은 아니었소.

 

단지 먹고 사는 일에 대부분 시간을 바치며 살고 싶지 않을 뿐이었지요.

 

돈을 버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좀 있는 것 같은데 그중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만일 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돈 버는데 모든 시간을 바치지는 않을 것이오.

 

 

Q: 선생님이 월든 숲에서 혼자 사실 때 어떤 물건들을 가지고 있으셨나요?

 

A: 내가 직접 나무로 만든 침대 하나. 식탁 하나. 의자 3, 포크 2, 나이프 2, 스푼 2, 접시 3, 청동 거울 하나, 기름병 하나, 옻칠한 램프 하나가 전부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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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생님의 검소한 생활 방식과 자연과의 영적 교감 등은 현대 환경주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너무 극단적인 환경주의는 문제가 좀 있지 않을까요.

 

A : 무조건 문명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고 자연을 사랑하면서 모든 생명과 서로 공존하는 자세가 가장 바람직하겠지요.

 

"월든" 에서도 '기찻길 걷기''돼지 몰이' 같은 챕터에서 볼 수 있듯이 먼저 인간에 대한 휴머니스트로서의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Q: , 선생님의 생활과 철학은 이후 톨스토이, 간디, 스캇 니어링, 한국의 함석헌 선생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간디의 영적 스승이 선생님이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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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월든"에서 나는 조로아스터교의 경전 구절을 자주 인용했어요.

 

간디가 인도 북부의 전통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아서 내 말에 쉽게 공감대를 형성했는지도 모르지요.

 

또 그가 "시민 불복종"을 읽고 비폭력 무저항 독립투쟁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했어요.

 

당시 간디는 인도의 지배자 영국인들에게 "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위대한 영적 스승이 있는데 왜 그의 가르침을 잊고 사는가?"라며 지배자 영국을 질책하였지요.

 

Q: 선생님도 살면서 여러 실패를 경험했는데 특히 뉴욕에서 직업을 가져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셨지요?

 

A: 나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고, 지역사회에서도 뛰어난 강연과 저술로 정평이 나 있는 유망한 청년이었소.

 

하지만 고향 콩코드를 떠나 뉴욕에서 자리를 잡으려던 나의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요.

당시 나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오.

 

<뉴욕의 거리 곳곳을 온종일 걸어보았지만,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날 수가 없었다. 그 누구와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었기에, 그 누구와도 생생한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그토록 깊은 외로움을 느낀 것이다.

 

연필 공장을 운영하기도 하고, 측량기사로 일하기도 하고, 가정교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가장 꿈꾸는 작가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야심 차게 결행한 뉴욕행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나의 작품은 뉴욕의 출판사들로부터 매번 거절당했고, 도시의 각박한 살림살이는 나를 지치게 했다. 나는 결국 서글픈 패잔병처럼 고향 콩코드로 돌아왔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Q 선생님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뜨거운 영감을 주십니다. 고통 속에서도 위대한 미래를 창조하며, 고난 속에서도 결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중 기억에 남는 명구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도덕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 도덕 그 이상을 목표로 하라. 단순한 선함이 아니라 목적 있는 선함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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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코드에 있는 소로우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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