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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394화 ★ 문자주의는 무엇인가

wy 0 09:31

 예루살렘 남부 빈민가의 에비온파 은신처에 돌아온 네리는 빌립 집사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고 그분과 친한 니골라 집사가 짐을 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디옥 출신인 그는 희랍파 유대인들 중에서 학식이 가장 깊었고 네리 같은 젊은이들과도 잘 어울렸다.

 

네리가 그를 만나서 평소에 궁금한 것을 물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은 율법서나 예언서를 문자 그대로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그분들도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그분들은 기록된 말씀의 절대성이 깨지면 그것이 곧 가정파괴, 인성파괴로 이어져 인간의 가치관이 무너진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죄 덩어리라고 믿으니까요.

 

그래서 인간의 합리주의와 자유주의가 자칫 기록된 말씀을 훼손한다고 불안해하지요.”

 

니골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또 한편으로는 기록된 말씀의 절대성이 무너지면 제사장이나 회당을 운영하는 지도자들의 권위도 같이 무너진다는 두려움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들도 때로는 노아의 방주에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각기 암수 한 쌍씩 집어넣은 것이 문자 그대로 사실일 수 있을지 속으로는 확신하지 못해요.

 

더욱이 여호와께서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으로 다시 그 숫자를 늘리는 지시를 하셨음으로 짐승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겠지요.”

 

, 무지하게 큰 동물원이라고 상상하려고 해도 잘 안되네요.”

 

이러한 문자주의, 기록된 그대로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주장하면 오히려 자기 발등을 찍을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근친상간하면 안 되는 명단에 분명히 딸은 빠져있으니 만약 누가 딸과는 관계해도 된다고 주장하면 문자주의의 한계가 즉시 노출되지요.”

 

그러고 보면 회당에서 설교하는 제사장들이 스스로 자신이 없는 문제를 확신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려니 고생이 많겠어요.

 

집사님은 그런 적이 없으신가요?”

 

니골라가 네리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나도 어떤 때는 오늘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까마득할 때가 많지요.

 

누구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믿게 만드는 것이 스스로 무엇을 믿는 것보다 쉬워요.

 

남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선생이라 해서 속으로 늘 확신에 차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가 다른 사람에게 강력히 파고드는 힘은 오히려 자신 속에 살아있는 의심의 힘일 수가 있어요.

 

그렇지 않은 종교인은 적어도 편한 대화를 하기는 어려운 사람일 거예요.

 

어떤 때는 스스로 의심하며 한 말을 다른 사람이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 때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발표자 스스로 자기가 한 말을 믿게 되지요.

 

그리고 그렇게 해야 길을 잃고 헤매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된다고 생각하며 점점 더 자기 믿음의 길로 들어서지요.

 

연극배우처럼.”

 

, 집사님 말씀을 들으니 제 궁금증이 많이 풀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사렛 예수님은 그야말로 문자에 묶인 믿음을 자유롭게 해주신 분이네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이 우상숭배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안식일도 거기에 포함될 수 있으니까요.”

 

네리의 말이 기특한 듯 니골라 집사의 얼굴이 더 환해졌다.

 

맞아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우리가 조심할 것은 나사렛 예수님의 말씀도 문자주의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

 

우상숭배를 깨뜨리신 분을 우상으로 만들면 그분이 슬퍼하실 거예요.

 

그분이 가르친 진리를 봐야 하는데 그분의 손가락을 예배하고 찬양하면, 그 분 같은 삶은 살 수 없지요.”

 

집사님 말씀이 새롭게 들리네요.

 

베드로 님이나 야고보 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을 직접 뵌 제자이고 형제분이신데요.”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한 번도 생전에 만난 적이 없는 내가 그분을 더 잘 아는 척하는지도 모르지요.”

 

 

 

 

어제 파티에서 과음했는지 머리가 무거운 느낌에 낮잠을 자고 깨어난 칼리굴라는 저녁 파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았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연회를 할 때마다 늙은 늑대가 살며시 보낸 염탐꾼들의 번뜩이는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어린 게멜루스에게도 같은 보고서를 낼 것이다.

 

얼마 전 아그리파가 갑자기 엄청난 죄목으로 유배를 떠났을 때도 그의 반응을 예리하게 살피는 눈길들이 있었다.

 

티베리우스 황제가 풀장에서 어린 소년 소녀들과 나체로 수영한다는 소문을 낸 것은 국기문란이고 그 당사자로 아그리파가 지목된 것이다.

 

지난번 왔던 헤로디아 왕비가 카프리섬의 늙은 늑대에게 모함한 것이 틀림없는데 국기문란이라면 적어도 몇 년간은 로마에서 그의 얼굴을 보기는 어려울 성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카프리섬의 상황을 전하는 은밀한 목소리에 의하면 늙은 늑대의 건강이 요즘 들어 별로 좋지 않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

 

절제를 평생의 미덕으로 지켜온 황제답지 않았고 마음이 흔들리면 곧 몸도 무너지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티베리우스 황제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었고 석양에 걸린 태양이 언뜻 더 커지며 붉어지는 듯하다가 순식간에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듯이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조금만 더 인내하고 로마 시민들과 애환을 같이하는 행보를 묵묵히 해나가면 모든 영광과 권력은 새로 떠오르는 태양인 자신에게 향할 것이다.

 

로마 시내 곳곳의 서민주택을 방문하고 광장 옆 재래시장에서 먹기 싫은 음식을 사 먹는 시늉을 하는 것도 모두 그런 까닭이었다.

 

그리스가 철학으로 세워진 나라였다면 로마는 법으로 세상의 평화를 이룩했다.

 

하지만 칼리굴라는 법을 거의 신뢰하지 않았다.

 

물론 어려서부터 법률공부를 했고 회계관으로서 재정업무도 배웠지만 알고 보면 모두 허점투성이다.

 

법이 너무 엄격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법이 너무 복잡하면 곧 그 법망을 피해 갈 방법을 법률가들이 먼저 알아낸다.

 

오래된 법일수록 그 시대 인간의 야만성이 나타나 있고, 로마법도 결국 그 야만성을 조금 완화하면서 나태한 재판관에게 도움을 주는 도구일 뿐이다.

 

가장 존경할 만한 법이라도 역시 힘의 산물이다.

 

최고 권력자가 국기문란이라면 국기문란이 되는 것이 법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칼리굴라는 앞으로 그의 주변 경호를 더욱 철저히 하기 위해 로마 시내에 근무하는 백부장들의 명단을 살펴보았다.

 

그중 몇 사람을 뽑아 갈바 장군에게 자문을 받은 결과 맥슨 백부장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그의 아버지 맥슨 의원도 무난한 사람이었다.

 

또 지금 유대에 나가 있는 카시우스 천부장을 불러들이고 싶은데 그는 지금 카멜 수용소 소장이라는 한직을 맡고 있었다.

 

게르만 전장에서 어린 칼리굴라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안아주던 카시우스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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