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는 머리가 무거워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엄청난 일을 저질렀지만 그것은 단순히 질투 때문은 아니었다.
어젯밤 떨리는 손으로 붉은 촛농을 감쪽같이 떼어내고 루브리아의 서신을 열어 보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읽어보니 바라바 오빠에 대한 그녀의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전달해 주려고 했으나 읽어볼수록 마음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일어났다.
천국도 침노하는 사람의 것인데 사랑도 소유하는 사람이 임자가 되는 것이다.
바라바 오빠가 로마에 간다 하더라도 그녀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곧 다시 돌아온다면, 계속 열성단의 단장으로 큰 일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
사라는 서신에서 루브리아가 바라바를 만날 수 있도록 여호와 신께 기도한다는 내용을 빼고, 마지막 장에는 서로의 행복을 위해 각자 새출발을 하자고 고쳐 넣었다.
쓰다 보니 이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최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바라바 오빠는 이 땅의 영웅으로 남아야 하고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사실 루브리아 언니도 이제 눈이 다 나았으니 로무스 대장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밤새 한잠도 못 자고 오늘 아침에 바라바 오빠가 막 떠나는 순간 서신을 건네주었다.
바라바 오빠가 그 서신을 읽고 마음이 아플 생각을 하니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그동안 자신을 무시하고 올바른 길을 걷지 않은 잘못이 크지만, 이제라도 반성하고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요즘 항간에 나도는 괴소문, 괴소문이 아니고 사실이지만 바라바 오빠와 로마 여인의 염문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사라 님, 저녁 드시러 내려오세요. 사람들이 기다려요.”
문밖에서 두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곧 내려갈게요.”
이제 사라도 자신이 할 일을 해나가야 한다.
그녀는 일부러 입술과 눈화장을 진하게 하고 길고 하얀 드레스를 입었다.
식당 한구석에 누보와 호란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 사라 님이 이렇게 미인인지 몰랐어요.”
환하게 차려입은 그녀를 보고 누보가 탄성을 발했다.
“유리 씨가 들으면 질투하겠어요.”
사라가 자리에 앉으며 나무라듯 말했다.
“아, 내일 시몬 교주를 만나기 위해 예행연습 하시는 거군요.”
누보가 곧 알아차렸다.
“그래요. 이렇게 입고 가려고 해요.
내일은 열성단 이름으로 저도 가지만, 이쪽의 대표는 에세네파의 호란 씨예요.
어떻게 상담을 진행하는 게 좋을까요?”
호란이 긴 속눈썹을 몇 번 깜박거린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몬 교주가 아마 저를 기억할 거예요.
오래전 할아버지 밑에서 수련 생활을 했으니까요.
그런 인연을 봐서라도 성배를 우리에게 돌려주면 나중에 찾은 보물의 일부를 나누어준다고 협상을 시작해 봐야지요.”
“진짜로 나누어 주려고요?”
누보의 눈이 살짝 커졌다.
“네, 그렇게 해야지요. 바라바 형님도 같은 생각이세요.”
“내가 로마 사람은 아니지만 제우스신께 맹세코 시몬 교주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누보의 목소리가 자신만만했다.
“네, 그래서 사라 님이 열성단을 대표해서 같이 가시고 바라바 단장님의 서신을 전달하는 거지요.
협상은 끝내고 협박을 시작해야지요.
로마군이 쳐들어와서 미트라교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황금 성배를 부숴버리면 크게 후회할 거라고요.”
주방에서 두스가 음식을 가져오면서 누보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이 식당은 곧 누보 님이 인수하시는 거지요?”
누보가 고개를 끄덕이자 두스가 계속 말했다.
“그럼 제 동생 마르스를 식당 종업원으로 좀 써주세요.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똘똘하니까 일은 잘할 거예요.”
다시 누보가 고개를 끄덕였고 사라가 갑자기 청약수를 찾았다.
“청약수가 맛이 특이하다던데 오늘은 없나요?”
“있습니다. 곧 가지고 오겠습니다.”
두스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내일 시몬 교주를 만나는데 그 사람이 만든 술을 마셔보면 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호란이 놀라서 사라를 바라보는데 누보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란 씨,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오해 말고 들어보세요.”
누보가 침을 한 번 삼킨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황금 성배가 중요한 것은 거기에 새겨진 보물 지도의 비밀을 알아내서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죽기 전 숨긴 보물을 찾으려는 거지요.”
누보가 스스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계속 말했다.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 황금성배 안에 그려진 지도만 확보한다면 쿰란 지역의 동굴은 호란 씨가 잘 알 테니까 성배는 놔두고 보물만 찾으면 더 좋지 않을까요?
전투를 피할 수 있고 보물도 미트라교와 나누지 않고….”
“그건 안 됩니다.”
호란의 태도가 단호했다.
“황금 성배를 제 손으로 가지고 가서 에세네파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데 지도의 동굴이 쿰란 지역이란 것을 어떻게 아셨나요?”
“아, 그건 원래 에세네파의 보물이었으니까 당연히 거기 어디겠지요.”
두스가 서둘러 청약수를 가지고 나왔다.
누보도 처음 보는 은으로 만든 컵에 청약수를 가득 따라 사라의 앞에 조심스레 놓았다.
검붉은 청약수가 그녀의 입술에서 식도로 불길처럼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