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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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58 화 ★ 쇼팡과 사케

wy 0 2019.06.19

 

 

선희의 아파트 입구에서 지난 번 만났던 안경 낀 경비 아저씨가 서준에게 살짝 목례를 했다.

 

이번에는 서준도 여유 있게 인사를 했다.

 

1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지난 번 보다 천천히 움직였다.

 

벨을 한 번 누르니 곧 문이 열리고 하얀 앞치마를 두른 선희가 밝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10분 전부터 창문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어요.”

 

그녀의 양 볼이 불그스레했고 집안에서 맛 있는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메리 크리스마스!” 

 

서준이 한 손에 들고 온 치즈케잌을 건넸다.

 

“메리 크리스마스!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셨네요.”

 

“물론이지요. 근데 오늘은 예쁜 단풍잎은 없어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눈송이도 없고…”

 

“눈송이 대신 하겐다즈 바닐라 아이스크림 준비해 놓았어요. ㅎㅎ

 

서준이 소파에 앉자 선희가 부엌에서 맑은 술 한 병을 가지고 나왔다.

 

“오늘은 메뉴가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진미채 밖에 없어요.

 

그래도 제가 끓인 된장찌개가 맛있을 거에요.” 

 

된장찌개 마지막에 청양고추와 깻잎을 얇게 저며 넣고 2-3분동안 끓이면 향긋하고 매콤하지요.”

 

그녀가 술병의 뚜껑을 가볍게 돌려서 딴 후 서준의 잔에 한 잔 부어 주었다.

 

“‘남산’ 이라는 일본 사케인데 남자자에요.

 

한식에 잘 어울리는 술이라고 해서 어제 마켓에서 사왔어요.”

 

“땡큐, 메리 크리스마스! “

 

서준이 잔을 들어 선희의 잔과 부딪쳤다.

 

“메리 크리스마스엄마 스토리가 너무 잘 나와서 감사 드려요.

 

그렇게 엄마의 삶을 이야기로 정리해 세상에 알리니까 엄마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아주 조금 한 것 같아요.

 

오늘 정말 메리 크리스마스에요.”

 

적당히 달면서도 향긋한 사케가 서준의 혀를 타고 순하게 넘어갔다.

 

“기사 내용에 별 문제는 없지요?”

 

“네. 기사는 모두 훌륭했어요.”

 

그녀가 잠깐 멈추었다 계속 말했다.

 

엄마 사진 한 장이 좌우가 바뀌어 나온 것이 옥에 티인데 저 말고는 누가 알겠어요.

 

엄마 오른 뺨에 작은 점이 왼쪽 뺨으로 나왔으니까요.”

 

그녀의 눈썰미에 감탄하며 서준은 알고도 그냥 넘긴 것을 후회했다.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좌우를 바꾸어 보면서도 전혀 의식하지 않지요.

 

거울이 아닌 사진의 모습이 올바른 모습인 것처럼 우리의 생각도 그렇게 스스로 올바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마음을 찍는 CCTV 같은 거요. ㅎㅎ

 

그녀의 입에서 CCTV 라는 말이 나오자 서준이 저절로 헛기침을 했다.

 

“된장찌개가 다 끓었나 봐요. 고추와 깻잎 넣고 가져 올게요.

 

기다리시는 동안 엄마가 좋아하던 쇼팽 녹턴 들어보세요. 루빈슈타인 연주에요.”

 

선희가 10년은 넘은 듯한 CD 플레이어의 ON버튼을 누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스르르~ 소리가 몇 초 들린 후 쇼팽 녹턴 9-1의 단선율 멜로디가 영롱하게 서준의 가슴을 파고 들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말로는 할 수 없는 사연을 한 음 한 음 전달하는 듯했다.

 

서준은 쇼팽의 녹턴 중 가장 많이 알려진 9-2보다 쇼팽의 초기 작품인 이 곡을 더 좋아했다.

 

이 멜로디가 서준의 마음을 파고들며 어루만지듯 서준도 오늘 선희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입 안으로 수월히 넘어가는 물 같은 사케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CCTV의 방주 모습처럼 가볍게 포옹만 우선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은 목사는 아니고, 선희와 방주는 끝난 일 아닌가..

 

가슴이 가볍게 뛰는 소리가 들렸다.

 

벽에 걸린 선희 엄마의 사진이 서준을 보고 미소 짓는 듯 했다.

 

어쩌면 선희 엄마도 자신과 선희가 연인 관계가 되는 것을 바랄지도 모른다.

 

남산을 한 잔 더 따라 마시고, 피아노가 녹턴 9-2로 넘어갈 때 선희가 식탁에서 부르는 소리가 정다웠다.

 

식탁에 앉으니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그릇이 은수저와 함께 놓여 있었다.

 

뜸이 잘 든 밥 냄새에 서준이 서둘러 숟가락을 손에 들었다.

 

된장찌개 안에 두부와 송이버섯이 풍성했고, 길게 썬 파가 넣은 지 얼마 안 되는 듯 숨이 살아 있었다.

 

서준이 앙증맞은 꽈리고추가 섞여있는 진미채를 한 젓가락 입에 넣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홍수진변호사의 번호였다

 

안 받을까 망설이다가 전화기를 귀에 대었다.

 

“최기자님, 메리 크리스마스!”

 

“네. 메리 크리스마스!”

 

전화기 너머로 시끄러운 음악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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