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큰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예수 선생을 따르는 모임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 돌에 맞아 숨진 것이다.
스데반이라는 그리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사울은 지난번에 엄중히 경고했는데도 그가 자숙지 않고 이런 화를 당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Gustave Dore 1832~1883
사울이 직접 돌팔매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그 현장에 있었고 스데반이 많은 군중 앞에서 열변을 토했으나 사실관계가 틀린 것도 몇 가지 있었다.
영민한 젊은이였고 나름대로 열심히 야고보를 따라다니며 공부한다고 했겠지만 사울이 듣기에는 허점투성이였다.
스데반은 야유를 퍼붓는 정통 유대교인들 앞에서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예수에 이르기까지 유대 역사를 길게 나열했다.
그는 놀랍게도 *아브라함이 세겜에 무덤을 샀고 나중에 그의 손자 야곱이 거기에 묻혔다고 했는데 사마리아의 세겜에 무덤을 산 사람은 야곱이다.
물론 야곱이 묻힌 곳도 세겜이 아니고 헤브론에서 아브라함 곁에 묻혔다.
그뿐만 아니라 스데반은 모세가 떨기나무의 불꽃을 본 곳이 시내 산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호렙산이다.
두 산이 같은 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호렙산의 줄기에 시내산이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울이 듣기엔 다소 궁색한 변명이다.
하지만 이런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고 이 정도의 일은 당황한 스데반이 순간적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공회로 끌려 간 스데반 앞에 바로 그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증인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정통 유대인 무리를 오히려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그들이 의인을 죽였고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았다고 담대히 선언했다.
이런 와중에 스데반이 다시 하늘을 우러러보며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하니 군중들이 큰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친 것이다.
유대인에게는 스데반의 발언은 상상할 수 없는 신성모독이다.
하나님의 우편에 있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는 것을 뜻한다.
그가 언급한 사람의 아들은 다니엘 선지자가 말한 구름에 싸여 오는 왕이 아니다.
그가 말한 사람의 아들은 형체와 본질이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인간을 동일시한 신성모독인 것이다.
예수를 존경하고 추종하는 마음이 도를 넘어서 결국 생명까지 잃게 되었다.
스데반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였는데 역시 스승 예수의 마지막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리라.
쏟아지는 돌을 그가 맞기 시작하자 주위에서 예수의 제자같이 보이는 젊은이들이 뛰어들어 군중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으나 이미 너무 늦었고 그들 중 몇 사람이 돌에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모습도 보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가야바 대제사장은 앞으로 예수를 따르는 무리에 대한 철저하고 강력한 응징이 계속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적어도 예루살렘에서 그들의 활동은 숨을 죽일 것이고 어쩌면 사마리아나 갈릴리 쪽으로 활동 범위를 넓힐지도 모른다.
사울은 어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상의할 겸 오랜만에 요나단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키가 늘씬하고 눈이 양옆으로 벌어진 젊은 여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했다.
“사울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금 전에 손님 한 분이 들어갔는데 곧 나올 거예요.
잠시만 소파에 앉으셔서 기다리세요. 마실 것 좀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요. 정리하는 일이 많은 것 같은데 계속 일해요.”
그녀의 책상 위에는 서류 더미가 꽤 많이 모여 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울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어제 성 밖에서 돌에 맞아 숨진 사람의 얼굴이 천사 같았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럴 수가 있는 건가요?”
“음, 천사의 얼굴이라… 글쎄….”
사울이 말꼬리를 흐렸다.
“어제 선생님이 현장에 계셨다는 소리를 들어서 여쭤본 거예요.
헛소문이겠지요. 그런 이단 숭배자가 천사 같을 수는 없잖아요.”
여비서의 궁금증에 뭐라 대답할까 생각하는데 요나단의 집무실 문이 열리며 손님이 나왔다.
약간 대머리에 눈매가 날카로운 중년 사내였다.
곧 방 안으로 들어가니 요나단이 반갑게 그를 맞았다.
“역시 사울 님은 내 마음을 다 아시네. 그러지 않아도 연락하려고 했어요.”
사울이 넓은 이마를 옆으로 살짝 덮은 긴 머리를 손으로 올린 후 어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참 이상하네요. 나사렛 예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그들의 순교명단에 올랐군요.
앞으로는 이런 불상사가 없어야 할 텐데… 돌을 던진 사람들은 누군가요?”
“주로 헬라파 유대인들이 앞장서서 처형을 주도했습니다.”
“아니, 죽은 사람이 헬라파 아니었나요?”
“지금 여기 와 있는 헬라파 유대인들 중 정통교리에 충실한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이 볼 때는 공부도 좀 한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는 것이 더 어이없겠지요.
원래 종교갈등은 같은 뿌리에서 갈라지면 증오가 더욱 심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 신이나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다른 집단으로 생각해서 제쳐 놓으니까요.”
요나단이 가볍게 한숨을 내쉰 후 다시 물었다.
“나사렛 예수를 추종하는 세력은 결국 무너지겠지요?”
사울의 양미간에 나이보다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래야 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의 지도자인 야고보가 날이 갈수록 서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저도 한 번 만나봤는데 고집이 낙타 고집입니다. 무릎도 낙타처럼 생겼고요.”
“저도 그 사람 얘기는 들었습니다.
예수 선생의 친동생이라고요.”
“네. 그들이 우매한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간 예수가 곧 다시 온다는 재림 메시지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이 말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예수가 얼마 후에 예루살렘으로 내려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한다는 것이지요.
적어도 야고보는 나사렛 예수가 여기 다시 올 때까지 이 성전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음, 그러면 야고보는 여기서 죽게 되겠군요….”
요나단이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본 후 화제를 바꿨다.
“그리고 곧 성전 경비대의 반 이상이 동원되는 전투가 있을 겁니다.
로마군과 합세하여 사마리아 토벌군을 조직하게 되었어요.
오늘 아침에 빌라도 총독의 승인이 떨어졌다고 하네요.”
사울의 얼굴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