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판결.jpg

                                                                                  

바라바 382화 ★ 칼리굴라의 여동생들

wy 0 2025.04.09

 

그가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 루브리아에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식사가 나올 겁니다.”

 

마치 그녀가 곧 떠나려한 마음을 들여다 본 듯했다.

 

루브리아가 고개를 끄덕였고 칼리굴라는 주위에서 그를 기다리며 곁눈질하는 귀부인들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이 자리를 뜨기에는 너무 늦었다.

 

잠시 후 맑은 차임벨 소리가 울리면서 사람들이 둥그런 식탁에 앉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바로 식탁에 앉을 수 있으려면 고위층 인사들이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식사하는 동안 우스갯소리로 좌중을 웃기거나 시를 읊으면서 남은 술과 음식을 서서 먹으며 자리가 비기를 기다려야 했다.

 

아가씨, 저기서 드루실라 님이 부르시네요.”

 

유타나의 눈길을 따라가 보니 연회장 중앙 쪽 커다란 둥근 식탁에 앉은 드루실라가 옆자리를 비워 놓고 그녀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드루실라 루브리아 칼리굴라 collage.png

 

, 그럼 유타나는 여기에 자리 잡고 식사해.”

 

제 걱정은 마시고 많이 드시고 오세요.”

 

드루실라의 테이블은 칼리굴라가 앉은 헤드 테이블의 바로 오른쪽 옆이었다.

 

4명 정도씩 앉은 테이블에 의자를 급히 하나 더 마련한 듯싶었다.

 

헤드 테이블에는 지난번에 만난 갈바 장군과 그의 부인 그리고 얼굴이 눈에 익은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카프리섬에서 만난 세네카 선생이었다.

 

여기 앉으세요. 오빠가 루브리아 님 신경을 많이 써서 살짝 질투가 나려고 해요. 호호.”

 

그녀가 곱게 눈을 흘기며 하는 말이 농담 같지만은 않았다.

 

루브리아가 자리에 앉으며 미리 앉아 있던 두 여인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아그리피나입니다.

 

드루실라의 언니이고 저기 앉아 있는 노랑머리 남자의 동생이예요.”

 

루브리아의 옆에 앉은 여자가 자기를 소개했다.

 

얼굴이 갸름한 미인인데 턱이 약간 길고 조금 튀어나온 인상이었다.

 

루브리아를 쳐다보는 눈이 강렬했고 경계의 빛도 띠고 있었다.

 

루브리아가 공손하게 자기를 소개하니 곧 앞에 앉은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저는 율리아라고 합니다. 제가 막내예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는 목소리가 차분했고 인상도 순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순박한 얼굴에 거구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했다.

 

아헤노바르부스입니다. 아그리피나 님의 약혼남이지요.

 

로무스 장군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안부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루브리아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검은 하녀들이 음식을 날라오기 시작했다.

 

백포도주를 입에 댄 루브리아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칼리굴라 님의 세 여동생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소문이 사실은 아니겠지만 여동생들이 모두 오빠와 연인 사이라는 말도 있다.

 

루브리아 님이 우리 오빠를 20년 만에 만났다고 들었어요.

 

대단히 반가웠겠어요.”

 

드루실라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 그럼요. 어릴 적 모습이 얼굴에 아직 남아 있으세요.”

 

그게 우리 오빠의 매력이지요. 좀 얼뜬 것 같으면서도 따스한 눈동자, 호호!”

 

아그리피나가 루브리아의 말을 받아서 말했다.

 

채소요리와 버섯요리, 생선요리와 고기요리가 계속 나와서 식탁 위에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아헤노바르부스는 루브리아의 얼굴을 슬쩍슬쩍 보면서 앞에 있는 접시를 바쁘게 비우고 있었다.

 

, 오늘 처음 만났는데 건배 한번 해야지요.”

 

아그리피나가 루브리아의 반쯤 빈 잔에 백포도주를 가득 따라 주고서 자기 잔을 높이 들었다.

 

오늘의 만남이 앞으로 계속 있을 행복한 만남의 첫날이 되기 바랍니다."

 

루브리아도 잔이 넘칠까 봐 조심스레 높이 들고 한 사람씩 눈을 마주친 후 한 모금 마셨다.

 

우리 오빠가 루브리아 님과 진작 만났으면 좋을 뻔했어.

 

그러면 지난번 여자처럼 불행한 일은 없었을 텐데.”

 

아그리피나가 잔을 식탁 위에 놓으며 혼잣말처럼 말했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듣기에 따라서 묘한 느낌이 드는 말이었다.

 

그녀가 루브리아를 쳐다보며 계속 말했다.

 

루브리아 님은 클레오파트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에 대해서요?”

 

그녀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글쎄요. 쓰러져 가는 프톨레미 왕조를 지키려고 여왕으로서 애를 많이 썼는데.”

 

그런 얘기 말고 한 여자로서 말이에요.

 

여왕의 자리를 지키려고 10살이나 어린 남동생과 결혼하고.

 

그 후 로마의 지배자인 시저의 아기를 낳고 나중에는 안토니우스와 또 아기를 낳는 여인, 천하의 대세가 기울어지자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여인 말이에요.”

 

아그리피나의 호기심 어린 눈이 루브리아의 눈동자 속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언니, 처음 만난 분에게 무슨 그런 심각한 질문을 해.

 

언니 관심 분야는 다음에 만나서 두 분이 얘기해요.”

 

드루실라가 가볍게 나무라듯 말하자 아그리피나의 안색이 약간 굳어졌으나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칼리굴라가 둘째 동생을 가장 총애한다는 말이 사실일 법했다.

 

형부, 나중에 식사 끝나시고 베르길리우스의 시 한 편 낭송해 주세요.”

 

어색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그녀가 아헤노바르부스에게 말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시를 읊으시면 박카스 신께 맹세코 가장 좋은 안줏감이에요.

 

아마 앞으로 태어날 2세도 천재적인 시인이나 가수가 될 거예요. 호호.”

 

칭찬을 들은 그가 입가를 냅킨으로 닦으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루브리아가 옆 테이블을 쳐다보니 칼리굴라의 옆자리가 한 자리 비어 있었다.

 

갈바 장군의 부인이 요란한 웃음과 더불어 재미있는 얘기를 하는 듯했고 마침 이쪽을 쳐다보던 세네카와 눈이 마주쳤다.

 

루브리아가 반가워서 얼른 목례했는데 못 알아보는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입맛이 별로 없었지만, 예의상 앞에 놓인 생선요리를 조금씩 입에 넣고 있는데 누군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을 멀찌감치서 느꼈다.

 

살짝 돌아보니 저쪽에서 맥슨 백부장이 서서 음식을 먹으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

 

루브리아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얼굴이 금방 밝아지는 것 같았다.

 

그도 초대를 받았는지, 아니면 루브리아가 이런 연회에 참석하는 것을 알고 보호 차원에서 온 것도 같았다.

 

그녀의 마음이 든든해지며 맥슨이 믿음직해 보였다.

 

유타나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았는데 언뜻 눈에 띄지 않았다.

 

아마 어느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음식을 먹고 있으리라.

 

연회장 한구석에서 악사들의 음악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레코드 연주 소리와 함께 그녀의 뇌리에서 바라바의 모습이 서서히 떠올랐다.

 

지금쯤은 자신이 보낸 서신을 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곧 로마에 온다는 소식을 어느 날 갑자기 들을지도 모른다.

 

 

 

State
  • 현재 접속자 4 명
  • 오늘 방문자 191 명
  • 어제 방문자 543 명
  • 최대 방문자 1,075 명
  • 전체 방문자 341,651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