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침묵이 흐른 후 칼로스가 화제를 바꾸었다.
“사마리아는 여기서 해안도로를 타고 가면 상당히 가깝소.
사실 사마리아가 유대 땅에서 기후도 좋고 곡창지대라 갈릴리와 합병을 하면 서로 큰 도움이 될 것이오.
현재 예루살렘은 행정적으로는 로마 직속으로 되어 있지만, 결국 나중에 모두 합치겠지요.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미트라교는 곧 없어져야 해요.
같은 민족이라도 종교가 한 번 달라지면 역사적으로 결국 또 나누어집니다.”
“네, 그렇습니다. 미트라교의 뿌리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입니다.”
“바로 그래서 미트라교는 우리 로마와 근본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지요.
문제는 로마 군인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 꽤 많이 그 종교에 빠져 있는데 우리 정보에 의하면 카멜 수용소장 카이레아 천부장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혹시 그런 소문을 들어본 적 없나요?”
바라바는 아까 천부장이 외부에서 누군가 미트라교를 지원하는 세력이 있을 거란 말을 넌지시 한 이유를 알았다.
“저는 처음 들었습니다. 카이레아가 누군가요?”
“음, 군인으로서는 뛰어난 지휘관이에요.
게르만 전투에서 게르마니쿠스 장군의 부관으로 맹활약을 했었는데 지금은 이상한 종교에 빠져 있어요.
총독 각하께서 증거만 있으면 체포하라고 하셨는데 아직 확실한 물증이 없소.”
“어떤 물증을 말씀하시나요?”
“미트라교 모임에 몇 번 참석한 정도로 천부장을 잡을 수는 없고 카멜 수용소 공금을 횡령해 미트라교에 헌금한 물증이 필요하지요.”
알렉스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천부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강 짐작이 되었다.
“미트라교 내부에 있는 열성단 조직이라면 알 수도 있을 텐데….”
“네, 제가 한번 알아는 보겠습니다.
바라바가 두 사람을 같이 보면서 말했다.
알렉스가 얼른 자기 생각을 설명했다.
“미트라교 내부의 회계자료만 볼 수 있다면 누가 언제 특별헌금을 많이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카이레아 천부장의 이름이 아니더라도 당시의 카멜 수용소 회계장부를 상세히 들여다보면 증거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칼로스가 눈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알렉스의 말을 이어 나갔다.
“꼭 카이레아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미트라교에 도움을 주는 외부 사람이 있을 것이오.
어쩌면 갈릴리 사람일지도 모르지. 여하튼 참고하시면 고맙겠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열흘 후에 예루살렘 안토니아 감옥에서 나오는 동료들을 제가 직접 가서 맞이할 생각입니다.”
바라바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계속 말했다.
“아,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예수 선생의 자료기록 중에 혹시 어떤 로마 여인의 눈을 고쳐준 이야기는 없던가요?”
“로마 여인? 음, 그런 기록은 없는 것 같고 어떤 거지의 눈은 고쳐준 것 같소.
이름도 나와 있던데… 어디에서 봤더라.”
천부장이 두꺼운 자료 기록을 넘기기 시작했다.
“음, 여하튼 그 사람의 기록 중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음식에 관한 것인데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떡과 생선이 부족했지만, 예수 선생이 즉석에서 더 찾아내었소.
그리고 곧 바다 위를 걸어서 사람들을 피해 은거했다는 거요.
이 두 기록은 늘 붙어 다니는 것으로 봐서 사실일 가능성이 아주 높지요.”
칼로스의 말을 한 귀로 들으면서 바라바의 눈은 크고 촉촉한 루브리아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파티는 처음이었다.
루브리아도 유타나를 같이 데리고 오긴 했지만, 이번 칼리굴라의 연회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두 모인 성싶었다.
미래의 권력에 눈도장을 찍기 위해 나온 원로원 의원들, 아첨과 농담을 주특기로 하는 귀족들, 방탕한 생활로 밤이면 가발을 쓰고 변장한 채 어두운 거리로 다니는 부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가득 채운 술잔을 쳐들며 자기가 믿는 신의 위대함을 떠드는 소리도 들렸고 유명한 전차경주 선수들, 첫눈에도 알 수 있는 인상 험한 검투사들, 거리의 시인과 철학자들의 무리도 섞여 있었다.
파티의 주인공은 운동장처럼 넓은 연회장을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악수를 나누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격식이나 절차를 따지지 않는 칼리굴라의 소탈한 모습을 칭송하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로마를 지배하는 늙은 황제는 카프리섬에서 나오지도 않는데 이 젊은이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품에 안고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이다.
그가 머리를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제우스신처럼 하얀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사람들의 눈에는 참신하고 멋져 보였다.
루브리아는 이런 분위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소란스럽고, 벌써 취해서 맘대로 지껄이는 여자들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이런 파티인 줄 알았으면 참석하지 말아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루브리아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유타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파티장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칼리굴라의 옆에는 20살이 채 안 돼 보이는 늘씬한 여인이 바짝 붙어서 같이 다니고 있는데 아마 그의 애인인 성싶었다.
어쩌면 루브리아가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조금만 더 있다가 조용히 연회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칼리굴라가 이쪽을 향하여 오고 있었다.
곧 루브리아를 발견한 칼리굴라가 두 팔을 벌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오, 나의 기쁨 루브리아!
제우스신께 맹세코 오늘 파티에서 당신을 못 보았다면 앞으로 1주일은 우울하게 지냈을 것이오.”
루브리아가 무릎을 살짝 굽히며 인사를 하는데 옆에 서 있는 여자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언뜻 보니 전형적인 그리스 미인의 얼굴이었다.
“루브리아, 인사 나누시오. 내 동생 드루실라요.”
“오빠에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잘 부탁드려요.”
그녀는 생각보다 목소리가 상냥했고 아직 어린 티가 느껴졌다.
“제가 잘 부탁드려야지요. 루브리아라고 합니다.”
칼리굴라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