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보는 속으로 은근히 잘 되었다 싶었는데 바라바가 곧 “그래서 그 경비 중 반을 일단 우리 갈릴리 열성단 지원금으로 썼지.”라고 말했다.
“아, 네….”
누보의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그런데 바라바 님, 사마리아 미트라교의 정보를 그대로 로마군에게 준다는 것은 나중에 우리가 이 사람들에게 큰 원망을 받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카잔이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고 계속 덧붙였다.
“물론 동료들을 석방시키기 위해서 하긴 해야겠지만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는 안 주는 게 좋겠습니다.
어느 시기에 사마리아인들과 열성단이 힘을 합쳐 로마와 싸울 수도 있으니까요.”
“네, 염려하시는 뜻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누보에게 정보를 받으면 적당히 수정해서 제출하려 합니다.
그리고 칼로스 천부장이 지금 미트라교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당장 이곳을 쳐들어온다거나 하는 일은 못 할 겁니다.”
카잔이 고개를 끄덕였고 바라바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제가 여기 온 목적이 또 하나 있습니다.”
호란을 제외하고 모두 바라바의 입을 쳐다보았다.
“미트라교가 가지고 있는 황금 성배를 빼앗아 주인에게 돌려주려 합니다.”
누보가 놀라서 ‘헉’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주인이 누구인가요?”
누보와 눈을 한번 마주친 후 카잔이 물었다.
“주인은 에세네파입니다.
바로 여기 있는 호란이 에세네파 빌립 장로님의 친손자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호란에게 순간 집중되었고 바라바의 발언이 계속되었다.
“그 물건이 원래 에세네파의 보물이라는 것은 미트라교도 인정하겠지요.
사실 저의 아버님도 에세네파의 갈릴리 지역 장로님이지요.”
잠시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침묵이 흘렀다.
“누보, 자네가 지난번 황금 성배를 미트라교에서 가지고 있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고 했지?”
누보가 깜짝 놀란 듯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네, 단장님. 틀림없이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니까 칼로스 천부장을 만나고 와서 바로 미트라교 교주를 만나야겠군.
교주가 어떤 사람인가요?”
바라바가 시선을 여로암에게 돌렸다.
“이름은 시몬이라고 하고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입니다.
젊었을 때는 유명한 마술사로서 비를 오게도 하고 아픈 사람들을 고쳐 주었는데, 그때부터 신비한 약수를 사용한 듯합니다.
원래는 독실한 유대교인이었는데 약 10년 전부터 미트라교의 사마리아 교주로 조직을 일으켰고 초창기에는 어려움도 많았다고 합니다.”
“음, 뭐든지 처음 시작이 어려운데 새로운 종교는 더 그렇겠지요.”
“제가 그동안 좀 있어 보니까 시온 교주의 카리스마가 상당합니다.
이번에 황금 성배를 신도들에게 보여 준 것도 그동안의 소문, 즉 모세의 황금 성배가 다시 나타나서 그리심산을 중심으로 사마리아가 독립한다는 소문을 사실로 믿게 하려는 계책인 것 같습니다.”
여로암의 설명이 끝나자 호란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라면 성배를 내줄 생각은 전혀 없겠네요.
미트라교를 넘어서 사마리아에 독립국을 세우려는 야심이군요.”
바라바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몇 번 끄덕거렸다.
두스가 음식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바라바가 누군지 알고부터는 양도 많아지고 태도가 더욱 공손해졌다.
어쩌면 누보가 곧 이 음식점을 인수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바라바는 보스의 보스가 될 것이다.
누보는 평소에 그렇게 맛있던 삶은 꿩 요리가 오늘은 무엇을 씹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자기가 보석금으로 낸 성금을 다른 용도로 썼다고 불만을 나타낼 수는 없지만, 그 돈이 나발의 훈련 자금으로 들어간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만약 그런 자금이라면 우선 여기서 훈련하고 있는 열성단원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이다.
그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바라바 단장이 황금 성배를 차지하기 위해 갑자기 나타난 사실이다.
에세네파의 보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물건은 가진 사람이 임자이고 그것을 위해 손가락의 피도 흘리며 미트라교 신도가 된 자신이 우스워졌다.
그렇다고 사실은 황금 성배를 위해 나와 유리가 갈릴리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설명을 할 수는 없었다.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는데, 옆자리에 앉은 카잔 님도 얼굴에 근심이 있는 표정이었다.
아마 고향이 사마리아라서 바라바 님이 로마군에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 누구보다 걱정이 많을 성싶었다.
별 대화 없이 여기저기서 음식을 씹는 소리, 고기를 손으로 들고 뜯는 소리, 목구멍으로 술 넘어가는 소리만 어색하게 들렸다.
누보가 바라바를 슬쩍 곁눈질해 보았다.
갑자기 황금 성배를 에세네파에 돌려줘야겠다는 말을 해서 그런지 바라바 님이 어딘가 달라진 듯싶었다.
예전의 갈릴리 지역 열성단을 통합해 나가는 누보의 마음속 영웅, 바라바와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지금 그의 위상은 예전보다 더욱 높아져 유대 전역으로 널리 알려졌고 누구나 인정하는 열성단의 리더이다.
만나는 사람들도 칼로스 천부장이나 산헤드린 위원들이다.
어쩌면 그의 높아진 위상이 그의 순수함과 열정을 가리고 있을 법도 했다.
바라바의 속마음은 예전과 같을 것이고 그가 에세네파라면 황금 성배를 찾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바라바도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누보를 보며 질문을 했다.
“갈릴리에서 만나던 아가씨는 잘 지내지? 이름이 뭐더라.”
“네, 유리입니다. 잘 있습니다.”
“오늘 같이 안 나왔네. 만나면 내 안부 전해 줘.”
“네. 감사합니다!”
누보의 얼굴이 풀렸고 여로암이 옆에서 거들었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내달 보름에 누보 씨가 결혼합니다.”
“아, 그래. 정말 축하하네. 내가 가능하면 참석하도록 할게.
그때는 우리 동료들도 석방되고 모든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네.”
카잔이 콧수염을 한 번 불면서 건배를 제의했다.
“그때 다시 모이겠지만 우선 오늘, 바라바 단장님이 계실 때 누보의 결혼을 축하하는 건배를 하겠습니다.”
모두 잔을 들고 누보의 잔과 부딪치며 축하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