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 비난들이 사실이 아니겠지요?”
“로마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사실이에요.”
그녀가 즉시 대답했다.
“그럼, 바라바 님이 로마로 가는 건 그 여자 때문인가요?”
질문을 하면서 미사엘의 마음 한구석은 오히려 밝아졌다.
사라와 바라바의 사이가 완전히 정리가 된다면 그녀가 자신에게 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순전히 그래서 가는 건 아니지만 아마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거예요.
틀림없이 나발이 뒤에서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있어요.
바라바 오빠가 로마로 떠나면 사람들이 소문을 믿게 되고 결국 자기가 단장이 되려는 거지요.”
“음, 문제가 심상치 않네요.”
“네. 저도 걱정이에요.
로벤과 동료들도 풀려나오면서 로마 군복을 입게 될 것이고… 그 내막을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고요.”
“음, 너무 늦기 전에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바라바 님과 이런 이야기를 빨리 해야 할 텐데….
사마리아는 무슨 일로 갔나요?”
“에세네파의 보물인 황금 성배를 찾으러 갔는데 사실은 그럴 때가 아니지요.
지금 사태가 얼마나 위급한지 전혀 모르고 있어요.
로마에 갈 생각을 굳힌 후에는 열성단에 대한 책임감이 약해졌어요.”
사라가 말을 하고 보니 바라바를 너무 비난한 성싶었다.
회당의 종소리가 다시 들렸다.
벤치 뒤에 있는 굵은 야자나무는 그사이 더 푸르고 키가 한 뼘은 자란 것 같았다.
“오늘 제가 어쩐지 공원으로 오고 싶었는데 미사엘 님을 하루속히 만나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어요.
요셉 선생님을 만나러 나왔었는데 이제 모든 결정을 했으니까 그냥 대추야자만 전해드리고 와야겠네요.
아몬 님과 헤스론 님에게도 곧 우리 생각을 알려 줘야 할 텐데요.”
“그 두 사람은 제가 오늘 오후라도 만나도록 할게요.
지금 사라 님과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하면 그들도 곧 이해할 거예요.”
“네. 그래 주시면 좋겠어요. 그럼 저는 요셉 선생님께 가 볼게요.
늦으면 혹시 외출하실지도 몰라서요.”
사라가 일어나면서 굵은 야자나무 기둥에 새겨진 두 사람의 이름을 슬쩍 보았다.
어쩐지 지금 자세히 들여다보기에는 쑥스러운 느낌이었다.
“네, 그럼 곧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미사엘도 일어나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공원을 나오면서 사라는 이제 예전의 사라가 아닌 듯싶었다.
바라바 오빠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만 태우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열성단 조직을 재정비하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면 얼마나 아빠가 당신의 딸을 자랑스러워하실까….
어쩌면 바라바 오빠도 저절로 마음이 돌아서고 그동안의 일들을 후회할 것이다.
새로운 용기와 희망으로 사라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어느새 가게 앞에 거의 다 왔는데 요셉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디 나가시는 길인가요?”
“응, 사라구나. 마침 잘 왔네.
내가 작은 조각상을 금방 배달하고 올 테니까 잠깐 가게 좀 봐줄 수 있니?”
“네, 그럼요. 천천히 다녀오세요. 대추야자 좀 가지고 왔어요.”
“그래. 고맙구나. 사라 먼저 먹고 있어라.
비너스상들 위 선반에 바라바가 예전에 따온 석청도 있으니까 같이 먹으면 더 맛있을 거야.”
사라가 가게 안에 들어가서 의자에 앉은 후 대추야자 상자를 열었다.
어제저녁부터 별로 먹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시장기가 돌았다.
얼른 큰 것 한 개를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생긴 것보다 별로 달지 않았다.
아저씨가 말한 선반 위에 놓인 까만 석청 단지를 꺼내려 일어섰다.
키가 안 닿아 의자를 놓고 발돋움하는데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이상하게 남의 집에서 물건을 훔치려다 들킨 느낌이 들며 사라가 얼른 의자에서 내려왔다.
손님은 무릎까지 내려가는 하얀 겉옷을 입은 중년의 여성인데 복장으로 봐서 가정주부 같지는 않았다.
“어서 오세요.”
사라가 손님에게 상냥하게 인사했다.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가게를 슬쩍 한 바퀴 둘러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가 바라바 님이 하는 가게 맞지요?”
“그런데요. 누구시지요?”
사라가 긴장하며 대추야자를 꿀꺽 삼켰다.
“음, 바라바 님은 지금 안 계시나요?”
“네. 지금은 안 계시는데요.”
중년 여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사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헤로디아 왕비를 모시는 시녀장입니다.
왕비님께서 바라바 님을 하루속히 왕궁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는데 언제 올 수 있을까요?”
“아, 그러시군요. 실은 지금 잠시 여행 중이신데요.”
“아가씨는 바라바 님의 동생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사라가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
설명하려면 복잡할 듯해서였다.
그러자 그녀가 품 안에서 서신을 꺼내며 말했다.
“이 서신은 로마에 있는 어떤 분이 바라바 님께 전해 달라고 해서 내가 심부름으로 가지고 온 것입니다.
동생분이 대신 좀 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라가 받은 후 뒷면을 보니 루브리아 언니가 보낸 것이었다.
“여하튼 바라바 님이 어디 있든 빨리 가서 알려 주세요.
왕비님이 대단히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으니 즉시 들어오라고 하신다고요.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동생분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그녀가 막 돌아서려다가 물었다.
“네. 저는 사라입니다.”
“원래 이름은 *사래였겠네요.”
그녀가 어울리지 않은 농담을 하고 문밖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왕비의 시녀장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이 혹시 꿈이 아닌가 싶었는데 사라의 손에는 루브리아의 서신이 그대로 들려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서신을 열어보고 싶은 순간 문소리가 났다.
“빨리 다녀왔지?”
요셉님의 목소리와 동시에 사라가 서신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네, 금방 오셨네요.”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막 헤로디아 왕비의 시녀장이 와서 바라바 오빠를 왕비님이 급히 찾는다는 말을 하고 갔어요.”
“바라바가 지금 사마리아에 갔는데 어떡하나….
전에도 왕비가 무슨 일로 바라바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빨리 가서 알려야겠어요.
상당히 중요한 일 같던데….”
사라가 대추야자 상자를 닫으면서 말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말미암아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왕들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세기 17: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