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는 카이사레아에 가서 칼로스 천부장을 만나기 전에 고향으로 먼저 향했다.
집을 떠난 지 또 몇 주가 지나서 아버지가 걱정하실 것 같고 아몬과 헤스론이 열성당 조직을 잘 재건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이제 바라바의 위상은 칼로스 천부장이 인정해 주듯이 예전의 바라바가 아니었다.
로마제국이 유대를 다스리는데 가장 껄끄러운 부분이 폭력저항 세력인데 그들을 하나로 묶어 대화를 통해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고, 바라바가 그들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바라바도 그동안 나름대로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여러 일을 겪다 보니 로마와 싸워서 독립을 쟁취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이삭 님, 니고데모 님은 물론 칼로스 천부장을 만나서 시야를 넓히고 좀 더 현실적 상황에 눈을 뜬 것이다.
지도자가 지혜롭지 못하면 순박하고 죄 없는 민중들만 끝없이 고통받으며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바라바는 갈릴리 지역의 조직을 재정비할 필요를 느꼈다.
물론 로마로 떠난 루브리아를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머지않아 로마에 가면 이루어질 것이므로 그때를 기약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사라가 좀 신경이 쓰이는데 이번에 고향에서 미사엘 님과 인연을 맺도록 하면 될 것이다.
이삭 님의 말대로 하나님은 바라바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얼마 전 깨진 접시 같던 운명을 이렇게 희망으로 가득 차게 바꾸신 것이다.
칼로스 천부장과 약속한 한 달이 1주일 정도 남았으니 가버나움에서 2~3일 있다가 세겜으로 가서 사마리아에 대한 정보를 다시 정리한 후 카이사레아로 가면 될 것이다.
로벤을 비롯한 동료들은 일단 페르시아 전장에 자원하는 서류를 작성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조금 망설이는 사람도 있었으나 우선 석방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것이 바라바의 제안이라는 것을 알고는 모두 따랐다.
여하튼 로벤과 동료들을 석방시키고 에세네파의 보물인 황금 성배를 호란과 같이 찾은 후 필로 선생을 만나러 로마로 가는 순서로 모든 일이 진행될 것이고 결국은 루브리아와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앞날의 계획을 세우니 바라바의 마음이 저절로 흐뭇해졌다.
마차 옆자리에서 호란이 앞에 있는 사라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사라 님도 미트라교에서 가지고 있는 황금 성배를 직접 보셨나요?”
“나는 못 보았지만 세겜에 있는 누보가 분명히 보았어요.”
“누보라는 분은 열성당인가요?”
“음, 뭐 그렇다고 볼 수는 있지요.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좋은 사람이에요.”
호란이 안심이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가 나사렛의 외곽을 돌며 구릉지대로 올라가니 북쪽으로 은빛 광선이 길게 펼쳐져 보였다.
“아, 갈릴리 호수가 하늘에 떠 있네요. 사해보다 몇 배 큰 것 같습니다.”
감탄하고 있는 호란에게 사라가 누런 독수리 조각을 내밀었다.
“지난번 나에게 준 황금 독수리는 변호사를 쓸 필요 없으니 돌려 드릴게요.”
“아니에요. 앞으로 황금 성배도 찾으려면 여러 가지 경비가 많이 들 텐데 그냥 가지고 계세요.”
호란이 사양하면서 계속 말했다.
“누가 그러는데 로마 황실 문장이 독수리라 이것을 로마에 가지고 가면 상당히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나는 더 가지고 있기 싫어요.
독수리 가지고 다니다 하도 혼이 난 적이 있어서….”
사라가 고개를 흔들며 독수리를 호란의 손에 쥐어 주었다.
“어디 내가 한번 볼까.”
바라바가 빙그레 웃으며 금 독수리를 건네받고 요리조리 돌려보며 자세히 관찰했다.
“정말 잘 만들었구나. 에메랄드로 만든 눈이 참 이쁘네.
독수리 날개 부분도 아주 정교하고… 내가 로마에 갈 때 가지고 갈게.”
“네, 그러세요. 로마에 가서 쓰세요. 거기는 물가도 아주 비쌀 거예요.”
“그래, 고마워.”
바라바가 금 독수리를 안주머니에 집에 넣었다.
사라의 속이 뒤집어졌다.
바라바 오빠가 로마에 가서 루브리아 언니에게 주려는 것이 뻔히 보였다.
내색을 안 하려고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듯 머리를 뒤로 기대었다.
마차가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속력을 내고 있었다.
잠시 후 사라가 잠든 줄 알고 호란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라 님은 그럼 곧 결혼하겠네요.
미사엘 님이 누군지 모르지만 복이 많은 분 같아요.”
“응, 나이가 조금 많지만 아주 좋은 분이지. 열성당 일도 많이 하셨고.”
미사엘 님에 대해서 바라바 오빠가 호란에게 벌써 말한 것이다.
갑자기 미사엘 님과 그냥 결혼을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분만큼 성실하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도 찾기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를 진심으로 위하며 사랑하고 있다.
호란의 목소리가 다시 속삭이듯 들렸다.
“나이가 몇 살인데요?”
“아마 30대 중반 정도일 거야.”
“근데 아직도 결혼을 못 했어요?”
“응, 사라 아버지 사무엘 님 밑에서 열성당 활동을 하면서 감옥에 여러 번 갔었으니까 결혼할 시기를 놓친 거지.
나도 경험을 몇 번 해보니까 처음은 몰라도 또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열성당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거야.”
“그렇군요. 지금 갈릴리 지역의 열성당 단원이 전부 몇 명이나 되나요?”
“아마 2천 명 정도는 될 거야.”
“네, 그 정도 되면 웬만한 도시의 수비는 자체적으로 가능하겠네요.”
“응, 옛날 열성당이 한참 컸을 때보다는 반도 안 되는 인원이지만 유대 경비대가 쉽게 쳐들어올 수는 없을 거야.”
호란의 목소리가 조금 더 작아졌다.
“네, 그럼요. 그런데 형님이 로마에 가면 누가 임시로 대신할 사람이 있나요?”
“응, 아몬이라는 동료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부탁하려고 해. 그리고 내가 이번에 가면 어쩌면 상당히 오래 있다가 올지도 몰라.”
사라는 바라바 오빠가 이번에 로마에 가서 안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