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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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55 화 ★ 성서 유오설

wy 0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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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로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다시 말했다.

 

“이동구학장을 만나서 네 사퇴서를 제출했다.

 

무죄가 난다고 해서 복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비운사 불상사건 모금 운동은 우리 교단에서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거야.”

 

큰구원 교회 장로가 경기도 비운사 대웅전의 부처님 얼굴을 훼손한 사건을 방주가 나서서 복구 캠페인을 벌인 일이 엄중한 징계 감이었다.

 

“문익진교수를 만나 봤더니 네가 그 사람 밑에 있는 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패역한 일에 너도 모르게 동참 할 수 있겠더라.”

 

“문교수님이 무슨 말을 하던가요?”

 

“그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인본주의적이고 늘 자기 의를 앞 세우는 고약한 사람이다. 

 

성경이 현대 과학과 맞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수 많은 젊은이들이 시험에 들고 실족하는 것이야.”

 

“성경이 사실 과학책은 아니지요.”

 

방주가 자기도 모르게 문목사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아들의 얼굴을 3-4초 물끄러미 바라보던 신장로가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방주야, 지구가 우주에 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이 언제 밝혔는지 아니?”

 

아들의 대답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시선을 느낀 방주가 입을 열었다.

 

“아니요. 그 건 잘 모르겠는데요.”

 

“무려 3500년 전에 말씀하셨다. 

 

욥기 26장 7절 말씀이지.

 

바로 거기에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라는 말씀이 나온다.

 

땅을 공간에 다셨다는 말씀은 지구가 허공에 떠있다는 뜻이지.

 

오늘날 지구가 허공에 떠있다는 것은 모두 아는 내용이지만 성경이 쓰여질 당시 고대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지 않았겠니?

 

그들은 지구가 무엇엔가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지.

 

인도 신화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엄청나게 큰 거북이 등 위에 있다고 써 있을 정도니까..

 

인간의 과학이 언제쯤 지구가 허공에 떠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을까?”

 

살짝 회심의 미소를 띤 얼굴로 아버지의 말씀이 계속 되었다.

 

“17세기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후에야 비로서 알 수 있었다.

 

성경은 인간의 과학보다 수 천년 앞서서 지구가 허공에 떠있음을 알려 주었지.

 

욥기는 탄소연대 측정법에 따르면 무려 3500년전의 기록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니!”

 

아무 대답이 없는 방주에게 아버지의 말씀이 이어졌다.

 

“이렇게 공중에 떠 있는 지구에서 언제 화산과 지진이 나고 또 언제 큰 행성이 지구와 충돌할지 모르지만, 오직 여호와께 모든 것을 맡기면 영원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과학적 진리는 늘 변해왔고 또 앞으로도 변할 것이야.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지만 다위의  진화론도 곧 허구 임이 드러날 것이다.

 

나는 어제 밤, 네가 나오기 하루 전날에도 시편을 외우며 편안히 잘 수 있었다.

 

이 대목을 큰 소리로 읽어 봐라.”

 

아버지가 두 번째 펼쳐 준 성경은 시편 4장 8절이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라.”

 

신장로가 성경을 읽는 방주의 목소리에 눈을 감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귀에 들리는 다음 발언에 그의 얼굴이 급속히 굳어졌다.

 

“저는 죄송하지만 성경이 모두 사실이라는 ‘창조과학’을 신봉 할 수 없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부터 이 번에 나가면 아버지와 솔직한 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 한 방주의 말이 계속 되었다.

 

“과학으로 성서 내용의 정확성을 증명하겠다”는 ‘창조과학’은 종교적 언어의 특성을 잘못 이해한 안타까운 주장입니다.

 

 창세기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창조론은 무의미하며, 진화론과 기독교 신앙이 반드시 상충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근본주의자들은 미국에서도 전체 개신교인의 1/4 정도에 지나지 않고 이미 유럽 대륙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유럽의 기독교가 오늘 날 완전히 무너진 거 아니니!

 

우리나라도 그 꼴을 만들고 싶은 거냐? ”

 

목소리가 높아진 아버지의 양 미간이 일그러졌다.

 

방주는 내친 걸음에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싶었다.

 

“아버지, 저는 유럽을 기독교의 몰락으로만 생각 치는 않습니다.

 

전통적 기독교의 입장이라면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유럽은 이미 포스트모던을 지나면서 기존의 기독교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된 거지요.

 

말하자면 이제 유럽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독교가 필요한 사회입니다. 

 

유럽에서 제2의 바울과 어거스틴이 나와야 할 때입니다.

 

이제 '무조건 믿어라'의 전통 기독교는 문명 사회에서는 거의 힘을 잃고 있습니다.” 

 

방주가 목사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근본주의 성향 교파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는 문명국으로는 한국이 거의 유일합니다.

 

지금 유럽이나 미국에서 그 수준을 인정받는 신학자 중 그러한 근본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네가 문익진이에게 완전히 빠져있구나.

 

현대의 훌륭한 신학자들인 존 스토트, 데니스 레인 같은 분들의 책도 못 보았니? “  

 

“네, 그 분들은 한국의 큰 교회 목사님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훌륭한 강해 설교자들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이제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성경은 완전 무결한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 것이 기독교다.”

 

신장로의 말에 방주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솔직히 그런 ‘성서 무오설’을 오래 전 버렸습니다.

 

이제는 ‘성서 유오설’ 을 인정하는 기독교로 거듭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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