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 호텔 로비 한구석에 사라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어쩐지 얼굴이 밝아 보이지 않았다.
바라바와 호란에게 변호사 사무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한 후 사라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바라바가 물었다.
”가낫세 변호사가 알렉산드리아에 무슨 일을 하러 갔을까… 두 달씩이나….”
“글쎄…. 그리스인들과 무슨 법률적인 다툼이 있는지도 모르지.”
“음, 여하튼 이제 변호사를 통해서 동료들을 석방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네.
마침 페르시아 국경 지역에 로마군으로 자원하면 죄수를 가석방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는데 그 방법은 어떨까?”
바라바의 말에 사라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로벤이나 다른 동료들이 그렇게 하려고 할까?
그동안 로마군과 싸우다 갑자기 전향하는 건데….”
“일단 풀려난 후에 로마군에서 빠져나오면 안 될까요?
안토니아 감옥에서 탈주하는 것보다는 쉬울 것 같은데….”
호란의 말이 끝나자 종업원이 카모마일 차를 가지고 왔다.
“내가 신경을 써서 그런지 속이 안 좋아서 이 차를 시켰는데 같이 나누어 마셔요.
빈 잔을 두 잔 더 갖다주세요.”
사라가 키가 큰 종업원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두 잔이면 일 인분 요금이 추가됩니다.”
종업원의 말에 호란이 얼른 물었다.
“한 잔은 서비스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나는 안 마실 거니까 한 잔만 가지고 오세요.”
종업원이 사라지자 호란이 바라바를 보며 계속 말했다.
“여하튼 안토니아 감옥에서 일단 나오는 것이 급선무니까 로마군으로 지원해서라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음, 그래. 감옥에 더 오래 있다가는 그 안에서 건강을, 아니 목숨을 잃을 동료들도 있을 거야.”
바라바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란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니 지금 사마리아에서 자체 경비대를 조직하고 있다고 해도 빌라도 총독이 함부로 대병력을 동원하여 토벌하지는 못할 거예요.”
사라의 눈이 반짝이며 호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왜냐하면 나바테아 왕국이 유대 국경에 군사력을 집중시키고 있는데 로마군 주력 부대를 빼서 사마리아로 진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군사행동이지요.
그뿐 아니라 2년 전 성전 금고 사건으로 유대인이 수백 명 학살당했을 때 티베리우스 황제가 총독에게 경고했다는 소문이 있어요.
함부로 인명을 살상치 말라고….”
“아, 나도 그런 소문은 들은 기억이 나요.”
“그래서 사마리아 상황을 어느 정도 총독부에 알려준다고 해도 당장 큰 변란은 아마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로마군으로 지원도 하게 하고 바라바 형님이 약속한 대로 정보도 제공한다면 틀림없이 곧 석방될 수 있을 겁니다.”
“호란 씨 말을 들으니까 희망이 생기네요.
변호사가 사무실에 없었던 게 돈 안 쓰고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로벤이 고생하는 거 생각하면 빨리 나와야 하는데….”
종업원이 빈 잔 하나를 가볍게 바라바의 앞에 놓고 물러갔다.
“자, 카모마일 차를 이 잔에 두 사람이 나눠 마셔요.
바라바 오빠부터….”
“저는 안 마시겠어요.
아까 종업원에게 안 마신다고 했으니 그 말을 지켜야지요.”
“어머, 정말 대단해요.
당연히 나누어 마실 것으로 생각한 내가 부끄럽네요.”
“그래도 로마군으로 지원한 후에 도주하는 것은 안 지켜도 됩니다.”
바라바도 웃으며 사라가 따른 카모마일 차를 한 입 마셨다.
“그런데 호란 씨는 어제도 육식을 안 하던데 에세네파는 왜 채식을 주장하나요?”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지요.
우리 쿰란 지역에서 수도 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90살 넘게 사시는 분이 많고 간혹 백 살이 넘는 분도 있어요.
병은 어떤 사람들을 공격한다고 생각하세요?”
사라가 얼른 대답을 못 했다.
“병은 대부분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과 좋지 못한 음식을 먹는 사람을 공격합니다.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행복해지려면 건강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에세네파는 선지자들의 글에도 나오지만, 동물의 피를 안 먹는 것은 물론 그들의 살도 먹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 식생활이라고 믿는 거지요.
아담과 이브처럼 사람은 처음에 과일, 씨앗, 채소 등만 먹었던 채식 문화의 시대가 있었는데 그 후 동물을 사냥하며 짐승을 길러서 잡아먹는 육식 문화의 시대로 바뀐 거예요.”
“그래요. 아담과 이브 다음에 카인과 아벨의 제사 때 육식이 나오지요.”
사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바를 쳐다보았고 호란의 설명이 이어졌다.
“육식의 관습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동물을 노예처럼 가두어 기르다, 먹고 싶을 때 죽여야 합니다.
사실은 이런 동물을 잘 기르기 위해 어떤 때는 사람이 동물의 노예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힘들 때도 있지요.”
“네, 그런데 생명을 죽이는 면에서는 채식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씨앗이나 채소도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생명체니까요.”
“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적은 생명체들에게 가장 적은 피해를 주면서 사는 것이 인간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생명체를 위해 최선의 방법이라 믿는 겁니다.
더욱이 열매나 과일 등은 식물이 스스로, 동물의 먹이로 제공하는 음식이지요.
어떤 동물도 그들의 몸을 인간에게 스스로 제공할 생각은 없을 겁니다.”
“음, 호란 씨 말을 들으니 나도 한번 채식을 해봐야 할 것 같네요.
바라바 오빠도 아버님이 에세네파의 장로님이신데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아버지는 생선은 좋아하시는데 그것도 안 되는 건가?”
“생선을 먹는 것이 소나 양보다는 좋지만, 에세네파에서는 대부분 안 먹지요.
여하튼 이런 음식의 중요성을 알고 한 사람, 한 집안이라도 작은 채식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 주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달라지겠지요.
지금 사라 님도 벌써 좀 달라지셨잖아요.
그리고 이런 일은 강요해서는 안 돼요.
할아버지도 제가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도록 기다리셨어요.”
“그래요. 나도 그동안 생선을 많이 먹었는데 이제 좀 줄여야겠네요.
사실 음식문화도 습관이니까 습관은 습관으로 고칠 수 있을 거예요.”
“나도 오늘 저녁에 양고기구이를 먹으려 했는데 일단 생선으로 바꿔야겠어.”
바라바도 옆에서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