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한 번 가다듬은 도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 말씀을 들으니 저도 힘이 납니다. 예수 선생님의 말씀은 먼저 에데사 왕국으로 퍼지게 되며 그 나라 사람들이 선생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유대 땅보다 더 많은 신도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제가 곧 그 나라에 가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에데사는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 엘리아셀 님도 말씀하셨지만, 그 나라의 왕과 선생님이 주고받은 서신을 제가 여러분께 읽어 드리려 준비했습니다.”
도마가 안주머니에서 양피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에데사의 왕, 아브가르 우카마는 예루살렘에 계신 나사렛 예수께 문안드립니다.
나는 선생의 병자를 고치는 놀라운 능력에 대해 여러 번 들었습니다.
특별히 약초나 마약을 쓰지 않고 장님에게 앞을 보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더러운 악령을 몰아내고, 오랜 고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고쳐 주며, 심지어는 죽은 자를 다시 일으키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알고 있습니다.
선생께서 이런 놀라운 일들을 하는 것은 선생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이에 나는 선생께서 하루속히 에데사로 오셔서 나의 병환을 치료해 달라는 서신을 보내는 바입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선생을 박해하고 조롱한다고 들었소이다. 나는 크지는 않지만 오랜 전통과 많은 주민이 살고 있는 훌륭한 도시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선생께서 오셔서 나의 병을 고쳐 주시고 나의 선생이 되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에데사의 땅, 아브가르 우카마>
<나를 보지도 않고 믿는 에데사의 왕은 큰 복이 있습니다. 왕께서 나를 부르셨으나 나는 먼저 이곳에서 나의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 후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 올라간 후 다시 올 것이며 그때 내 제자 중 한 사람을 보내서 당신의 병을 치료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사렛 예수>
도마가 서신을 읽은 후 다시 조심스레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 서신들은 제가 한 부씩 그대로 필사했고 선생님의 지장도 찍었습니다. 에데사의 왕은 선생님이 부활한 소식을 듣고 믿음이 더욱 깊어져 하루속히 제자 중 한 사람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가서 선생님의 말씀을 전하고 왕의 병을 치료하고자 합니다. 사도님들의 기도와 여기 모이신 신도님들의 성원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오겠습니다.”
도마가 앉은 후에도 박수 소리가 잠시 계속되었다. 요한이 다시 중앙으로 나와 앞줄에 조용히 앉아 있는 젊은이를 보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분이 계십니다. 야고보 님의 형제 유다 님이십니다.”
야고보의 형제라면 예수님의 또 다른 동생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키가 크고 조금 마른 듯한 인상의 젊은이에게 쏠렸다.
“예수님의 종인 유다가 인사드립니다. 긍휼과 사랑과 평강이 여러분에게 더욱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야고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형제는 사도라고 불리지 않았으며 스스로 ‘종’이라 칭했으나 그 권위가 사도들보다 결코 낮지 않았다. 유다가 인사만 하고 자리에 앉았다. 요한이 모임을 정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나누신 질문과 의견들이 서로에게 무척 유익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사랑하는 여러분의 영혼이 잘됨같이 모두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합니다.”
왼쪽 벽에 붙어 있는 작은 램프가 껌뻑거리기 시작했다.
따스한 우유 물에 목욕을 마치고 마사지까지 받으니 여독이 많이 풀리는 듯했다.
거울 앞에 선 헤로디아는 연분홍색 드레스를 입어 보았으나 눈가에 주름을 감추기 힘든 얼굴에 이제는 별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루브리아와 같이 맥슨 의원을 만나러 곧 나갈 텐데 아무래도 품위 있는 진한 회색의 드레스가 나을 듯했다. 옷을 갈아입고 화려하게 번쩍이는 엄지손톱만 한 오팔 귀걸이를 늘어뜨리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헤롯왕이 기다리지만 않으면 로마에서 2~3년 머물며 원로원의 젊은 의원들과 안면을 익히고 사교생활을 하고 싶은데 참으로 아쉬웠다.
그들도 헤로디아가 어릴 때부터 황제의 궁에서 자라며 귀여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녀를 무시할 수 없을 텐데 세월만 자꾸 지나고 허리에는 요즘 안 보이는 살이 찌고 있다.
맥슨 원로원 의원은 30여 년 전 잠깐 사귀었던 사람인데 마침 그의 아들이 루브리아의 경호를 맡은 맥슨 백부장이라고 한다.
시녀장이 들어와서 루브리아가 도착했고 가마가 준비되어 있다고 알렸다.
맥슨 의원의 집은 로마 시내에서 가장 부촌인 아벤티누스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입술이 두껍고 피부가 검은 가마꾼 노예 8명이 앞뒤에서 4명씩 굵은 팔뚝으로 가마를 가볍게 들고 미끄러지듯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역시 옷을 바꿔 입기를 잘했다. 옆에 앉은 루브리아가 연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것이다.
황제의 의중이 게멜루스에게 기울어져 있으니 구태여 루브리아를 칼리굴라와 맺어 줄 이유도 없었다.
루브리아도 그런 느낌을 알아서인지 밝고 명랑해 보였다. 마차가 아벤티누스 언덕으로 올라가니 티베리스강이 아래로 구불거리며 흘렀고 폼페이우스 극장도 강변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로무스 대장은 아직 로마에 도착 안 하셨지?”
“네, 아빠는 4~5일 후에나 오실 거예요. 제가 먼저 도착하면 맥슨 의원님께
꼭 인사드리라고 하셨어요. 마침 왕비님도 잘 아셔서 다행이에요.”
“응, 그래. 내가 루브리아보다도 어릴 때 나를 많이 쫓아다녔어. 호호. 맥슨 의원도 꽤 괜찮은 남자였지.
그래도 그 사람하고 결혼할 수는 없었어. 할아버지 헤롯 대왕께서 신랑감을 정해 주셨으니까.
나중에 또 그 사람하고 이혼하게 되었지….
결혼은 정말 운명적인 것 같아. 사실 나는 로마의 귀족과 결혼해 로마에서 살고 싶었어.
다시 한번 산다면 꼭 그렇게 할 거야. 지금은 조금 늦었겠지?”
루브리아가 순간 ‘아직도 별로 늦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아무 대답을 안 했다.
가마가 언덕길을 몇 번 돌아 올라 큰 저택 앞에 멈추었다. 왕비와 루브리아가 내리자 젊고 키가 큰 문지기가 대문을 열고 그들을 맞았다.
정원의 우거진 숲에서 새들이 요란하게 지저귀었고 집안에서 맥슨 의원이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