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남부 빈민가에 있는 사도들의 은신처에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처음 오는 신도들은 집 정문 오른쪽 위에 낙서같이 그려진 물고기 모양을 보고 제대로 찾아온 것을 확인했다.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물고기가 나사렛 예수에 대한 그들의 존경과 믿음을 상징한다고 들은 것이다.
무슨 그리스 말을 도형화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오늘 저녁은 정기모임이 아니고 주로 새 신도 위주의 교육을 겸한 집회였다.
50명 정도가 모인 다락방의 양쪽 벽에는 주황빛을 내며 타고 있는 램프들이 서로의 얼굴을 충분히 비추어 주고 있었다.
중간 앞자리에는 나사렛 예수의 친동생 야고보가 베드로와 요한의 사이에서 단정히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요한이 나와서 모임의 시작을 알리며 인사를 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 처음 참석한 십여 명의 신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 사람씩 자기 소개를 했고 모두 뜨거운 박수로 그들을 반겼다.
요한은 예수 선생을 따르는 새로운 모임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넣듯이 유대교의 새 부대와 같은 역할을 하며 선생의 말씀을 실천하는 생활 공동체라고 선언했다.
새 부대의 모든 가족은 서로 소유한 것을 공동체를 위해 흔쾌히 내놓으며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별이 없는 넉넉한 평등을 이루어 간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의 눈망울이 설램과 희망에 반짝이며 요한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사실 저도 세례요한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대단히 훌륭하신 분입니다. 나사렛 예수 선생님도 그분께 침례를 받으셨지요.
하지만 그분의 천국과 새 부대 예수 선생님의 천국은 크게 다릅니다. 여러분은 이 점을 잘 아셔야 합니다. 이제 야고보 님께서 나오셔서 여기에 대해 간단한 말씀을 하시겠습니다.”
힘찬 박수가 터졌고 야고보가 천천히 무릎을 펴고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희끗한 구레나룻이 무성한 얼굴로 야고보가 좌중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사람들은 그가 나사렛 예수와 피를 나눈 친동생이라는 사실만으로 이미 감격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부활하신 분의 핏줄이니 무언가 달라도 보통 사람과는 다를 것이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신도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고 바로 지금 이 다락방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 안에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해 유일한 해답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례요한 선생이 죽기 전 나사렛 예수님께 질문한 내용입니다.
‘오실 그분이 바로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나요?’ 예수 선생이 간접적으로 대답하셨듯이 당신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잠시 말을 중단하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뜬 야고보의 얼굴에 은은한 광채가 빛났다.
“그것은 바로 나사렛 예수는 하늘 아래,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 선생이 기다리던 바로 그분이 예수 선생님입니다.”
목소리를 조금 높여 이렇게 선포한 후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세례요한 선생은 우리에게 곧 천국이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선생님은 그 천국이 이미 우리에게 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회개와 회심의 다른 점입니다.
밤새 울며 잘못을 회개해도 다음 날 또 같은 죄를 짓는 것이 불쌍한 우리 인간입니다.
욕심과 교만과 어리석음이 우리의 피와 뼛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깨달아 거듭난 마음, 회심한 마음은 예수 선생의 새로운 진리를 담는 새 부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의 천국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천국이 회심한 우리의 마음에 당장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확신에 찬 설명을 조금 더 계속한 후 말씀을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요한이 다시 나와서 좌중을 돌아보며 천천히 말했다.
“야고보 님의 말씀에 많은 은혜 받으셨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질문 있으시면 무슨 말씀이든 해 주세요.”
잠시 좌중에 침묵이 흐른 후 앞자리에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일어났다.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시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엘리아셀이라고 합니다. 상당히 큰 키에 둥그렇고 혈색 좋은 얼굴의 그가 일어나자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엘리아셀이 오늘 새로 나온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예수 선생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오실 때 ‘호산나’를 외치며 따랐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며칠 후 골고다에서 무력하게 돌아가시자 엄청난 실망감에 그분을 비방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얼마 전 그분이 놀랍게도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리나 알아봤더니 그분의 부활을 처음 본 사람은 베드로 사도나 요한 사도가 아니었어요.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람인데 저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여성 제자였습니다.”
여기까지 단숨에 말을 마치고 좌중을 돌아보는 그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그때부터 저는 예수 선생님의 부활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꾸며낸 이야기라면 왜 증거로 채택될 수도 없는 나약한 여성 제자가 보았다고 했겠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여기 계신 마태 님이나 도마 님이 처음 보았다면 더 쉽게 많은 사람이 믿지 않겠어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아셀의 활기찬 발언이 계속되었다.
“저는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선생님은 얼마든지 가야바의 경비대를 피해 안락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실 수 있었지만 스스로 십자가의 형벌을 지신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시리아의 북쪽에 있는 에데사 왕국에서 선생님을 왕의 스승 겸 의사 선생으로 초청했으나 가지 않으셨어요.
바로 유월절 얼마 전의 일입니다.
에데사의 우카마 왕이 직접 선생님께 서신을 보내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던 것이지요.
예수 선생님이 그곳에 가실 수 있었지만 안 가신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고난 이후 다시 살아나실 것을 아셨기 때문이지요. 선생님이 에데사의 왕에게 쓰신 답장을 제가 보았는데 이미 그러한 내용이 쓰여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여기 계신 도마 님이 곧 그쪽으로 가셔서 선생님의 말씀을 전하고 왕의 신병을 치료해 줄 것입니다. 그렇지요? 도마 님?”
도마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뒤에서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