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 형님이 떠난 후 할아버지는 쿰란 공동체의 후계를 노리는 사람들의 격렬한 비난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에세네파 전체 회의를 열어서 황금 성배를 지키지 못한 것은 빌립 장로의 책임이라고 성토했고, 충격을 받은 할아버지가 회의 도중 쓰러지셨어요.”
눈시울이 붉어지며 호란이 설명을 계속했다.
그들은 에세네파가 사막이나 골짜기에 은둔해서 기도 생활만 하는 것에 불만을 나타내며 예루살렘에 진출해 교세를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도 요한이 갑자기 참수당한 것도 빌립 장로가 전혀 헤롯왕과 정치적인 교류가 없기 때문이라 비난했고 심지어는 로마 총독 빌라도와 관계를 개선해 유능한 에세네파 젊은 신도를 로마에 진출시키는 방안도 제시했다.
소위 개혁을 주장하는 몇 사람의 선동에 회의 참석자 반 이상이 넘어갔고, 현재 에세네파는 크게 분열된 상태라는 것이다.
“음, 지난번 내가 선생님을 뵐 때도 그런 사람들 때문에 걱정은 하셨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다니….”
바라바의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았다.
“할아버지도 뭔가를 느끼셨는지 쓰러지기 며칠 전 저를 부르셨어요.
만약 어떤 위급한 일이 발생하면 바라바 형님을 만나서 황금 성배를 같이 찾아오라고 하셨어요.
그래야 에세네파가 하나로 다시 뭉칠 수 있다고 하시며….”
“황금 성배가 어디 있는지는 내가 확실히 알아요.”
사라가 얼른 끼어들었다.
“저도 소문으로는 사마리아에서 최근 나타났다고 들었어요.”
황금 성배는 미트라교에 있다는 설명을 사라가 자세히 하기 시작했다. 바라바는 빌립 선생님과 쿰란에서 식사하던 생각과 그분의 자상하고 인자한 모습이 떠올랐다.
손으로 목 근처를 만지니 그분이 주신 은목걸이가 옷 위로 만져졌다.
지금쯤 갈릴리에 계신 아버지도 이 소식을 듣고 걱정하고 계실 것이다.
“안토니아 감옥의 우리 동료들을 빼내기 위해 내일 변호사를 만나는데 그 후에 같이 사마리아로 가도록 하자.”
바라바가 호란에게 말했다.
“네, 고맙습니다. 근데 미트라교에서 성배를 쉽게 내놓지는 않겠지요.”
호란의 말이 끝나자 식당 종업원이 바라바가 시킨 생선찜 요리 2인분을 가지고 왔다.
“아, 정신이 없어서 1인분을 더 시키는 것을 잊었네.”
“아니에요. 저는 채식만 하니까 샐러드하고 여기 나온 빵으로 충분해요.”
“아, 참. 그렇지. 그럼 이 빵은 호란이 다 먹어.”
바라바가 빵 바구니를 그의 앞에 놓았다.
잠시 말없이 식사하다가 사라가 바라바에게 글로버 선생을 만난 이야기를 했다.
그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로마에 가서 필로 선생을 만나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내심 루브리아 언니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이리라.
“로벤은 건강하게 잘 있나요?”
사라가 화제를 돌렸다.
“응, 살이 좀 많이 빠졌더군. 곧 석방될 희망으로 버티는 것 같아. 그런데 다른 동료 중 2~3명이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고 해. 서둘러야겠어.”
“그래야겠네. 내일 변호사 만나러 요한 님이 같이 가신다고 했으니까 바라바 오빠는 안 가도 될 것 같아. 드나드는 사람도 워낙 많은 곳이라 걱정도 되고….”
‘글쎄…. 그렇긴 한데 요한 님께 미안하네. 내 안부도 전해 줘. 그럼 내일 나는 호란이와 안토니아 지하 감옥에 계신 이삭 님을 만나지.”
“그래요. 변호사에게 경비가 많이 들더라도 빨리 진행해 달라고 할게.”
입안 가득히 빵을 먹으며 호란이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노란빛이 번뜩이는 금으로 만든 독수리였다.
“어머, 이렇게 정교하게 만든 금 독수리가 있네.”
호란이 사라의 손바닥 위에 살며시 놓는데 무게가 묵직했다. 눈에는 작은 에메랄드가 박혀 있었다.
“그거 변호사 비용으로 쓰세요. 솔로몬왕의 궁전에 있던 건데 에세네파에서 물려받은 거예요.”
사라는 독수리 깃발이 생각나서 공연히 가슴이 철렁했다.
헤로디아 왕비의 쌍두마차는 로마로 향한 일직선 도로, 아피아 가도를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앞에는 호위병들이 타고 있는 마차가 선도했고 뒤로는 탈레스 선생과 유타나를 태운 마차가 바쁘게 따라갔다.
헤로디아는 황제를 만나서 모든 안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자신이 스스로도 자랑스러웠다.
헤롯왕이 좋아서 입을 헤벌리고 웃는 광경이 그려졌다.
이제 곧 빌립의 땅을 흡수한 후 예루살렘 지역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헤롯왕의 통치하에 놓이게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확실한 소득은 황제의 속마음이 어떤지를 알게 된 것이다. 노인은 친손자 게멜루스를 후계자로 생각하며 그가 20살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게멜루스와 엮어 주기에는 루브리아의 나이가 조금 많았다.
아무래도 뒤에 따라오는 마차에 실린 100달란트 중 적어도 반은 게멜루스를 주는 것이 좋을 성싶었다.
왕비가 옆자리에 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루브리아에게 말했다.
“카프리섬이 역시 경치는 최고야.
내년에 또 같이 가도록 해 보자. 이번처럼 폐하께서 또 루브리아를 잡으려고는 안 하시겠지. 호호.”
“네, 처음에는 꼼짝없이 한 달간 있을 뻔했어요. 사실 폐하께서 고독하신 듯해서 저도 옆에서 같이 있고도 싶었지만….”
누구의 명령이라고 거역을 하랴.
노인이 한 달간 더 있으라고 할 때 천둥 번개가 다시 치며 황제의 늙은 독수리처럼 단단한 얼굴을 밝게 비추었다.
알겠다고 대답은 했으나 그때부터 생선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가 않았다. 빕사니아라는 황제의 첫 번째 부인 조각상을 위해 이 섬에 남는 것이다.
말이 한 달이지 얼마든지 연기될 수 있을 것이고 황제가 루브리아에게 예전의 빕사니아처럼 아내 같은, 아니면 정부 같은 역할을 주문할 수도 있다.
루브리아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보며 노인이 입을 열었다.
“로무스 장군께는 내가 연락할 테니 걱정할 건 없소.”
“네. 폐하”
그녀가 다소곳이 대답했다.
자주색 옷을 입은 루브리아는 그 자태나 온순한 성격까지 50년 전의 빕사니아를 그대로 닮았다.
그녀와 강제로 헤어진 얼마 후 우연히 로마의 길거리에서 다시 만났을 때 티베리우스는 그녀 앞에 사죄의 무릎을 꿇었다.
빕사니아도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고 초연한 모습으로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루브리아는 식사를 하면서 말이 없어지고 예상치 못한 황제의 요구에 계속 마음이 어두웠다.
노인이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질문을 했다.
“아까 누군가 로마 시민권을 주었으면 하는 유대인이 있는 것 같던데… 누군가?”
루브리아는 바라바 생각이 났고 어찌 되었든 이런 기회에 그가 시민권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바라바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다,
“음… 용감한 젊은이구먼.
유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좋은데 더 큰 세상에서 배우면 나중에 더 큰일을 할 수 있겠지. 루브리아 양과는 어떤 사이인가?”
루브리아가 선뜻 대답을 못 하고 얼굴을 붉히자 노인은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그의 눈앞에는 옛날 청순하고 아름다운 시절의 빕사니아가 고민에 빠져 있었다.
황제는 이제, 빕사니아의 마음을 조금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미처 생각을 못 한 게 있네.
루브리아의 로마 집으로 조각가를 보내서 거기서 작품을 만들면 더 쉽게 빨리 만들겠군. 그렇게 하도록 하지.”
루브리아를 보며 이런 말을 하는 황제에게 아련한 젊은 날의 표정이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