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가 바라바 오빠라 생각하고 그가 서 있는 골목 입구로 뛰어가려는 순간 턱수염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며 붙잡았다.
대머리가 왼손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잡은 채 오른손으로 품 안에서 날카로운 단도를 꺼내 들었다.
“이놈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돌을 던져!”
대머리의 목소리가 분노로 떨리며 한 걸음씩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 입구로 향했다.
입구의 사내가 손을 슬쩍 움직이는 듯했는데 ‘획’ 소리와 함께 대머리의 이마에서 또 한 번 딱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더 세게 맞았는지 왼손으로 이마를 덮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턱수염의 얼굴이 굳어지며 사라를 잡은 손을 놓고 단도를 뽑아 들었다.
돌멩이를 던진 사내가 골목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오자 주저앉아 있던 대머리가 갑자기 몸을 날려 그를 덮쳤다.
사라의 눈에 단도가 허옇게 번적이며 젊은 사내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동시에 옆으로 몸통을 돌린 그가, 찔러 오는 대머리의 오른 팔목을 세게 후려치니 단도가 땅에 떨어졌다.
당황한 대머리가 칼을 주우려고 구부리는 순간 젊은 사내의 무릎이 대머리의 턱을 올려 쳤다.
‘윽’ 소리와 함께 대머리가 공중으로 붕 떠서 떨어졌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턱수염이 사라를 앞으로 끌어당기며 단도를 그녀의 목에 대었다.
젊은 사내가 계속 다가오자 소리를 질렀다.
“거기 서! 가까이 오면 이 여자의 목을 그어 버리겠어.”
사라의 목에 차디찬 칼날이 닿았고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사내는 아무 말 없이 슬며시 미소를 짓더니 그냥 돌아서 가기 시작했다.
사라의 목에서 단도가 살짝 떨어지는 순간 사내가 갑자기 돌아서며 손을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휙’ 소리와 ‘딱’ 소리가 사라의 머리 바로 위에서 크게 들렸다.
‘억’ 소리와 함께 사라의 목을 감고 있던 턱수염의 팔이 풀리는 순간 사라는 젊은 사내 쪽으로 몸을 피했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사라가 젊은 사내를 가까이서 보니 이제 소년티를 막 벗은 듯했으나 눈동자가 반짝이며 단단한 인상이었다.
“천만에요. 어서 제 뒤로 서세요.”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턱수염이 달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끝이 동그랗게 휜 단도가 허공을 가르며 젊은이의 얼굴을 베어 나갔다.
많이 휘둘러 본 솜씨였다.
젊은이가 서커스를 하듯이 허리를 뒤로 꺾자 단도가 왼뺨을 머리카락 차이로 스쳐 나갔다.
“나는 면도 안 해도 되는데….”
얼굴을 손으로 만지면서 젊은이가 말했다.
“칼 모양을 보니 시카리파로구나.
당신들과 더 이상 싸우기 싫으니 오늘은 그만합시다.
“너는 어디서 온 놈이냐?”
이마가 벌겋게 부어오른 턱수염이 단도를 겨누며 물었다.
젊은이가 잠시 대답을 망설이더니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열성당의 바라바 님 밑에 있는 사람이오.”
사라가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음, 어째 만만치 않다 했더니….”
턱수염이 대머리와 얼른 눈짓을 교환했다.
“열성당 놈이라니 이번 만은 우리가 참기로 하겠다.
앞으로는 다시 우리와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두 놈이 체면을 더 이상 구기지 않고 물러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이 골목 안으로 사라지자 젊은이와 사라도 큰길로 같이 나왔다.
“큰일날 뻔하셨어요. 마침 지나가다 비명을 들어서 다행입니다.”
“네, 너무 고마워요. 그런데 정말 열성당에 있나요?”
젊은이가 슬며시 웃으며 옆에서 걷는 사라를 바라보다 눈이 동그래졌다.
“어, 이 목도리를 어디서 봤더라.
아! 바라바 형님이 하고 왔던 목도리네.
혹시 바라바 형님을 아세요?
저는 쿰란 에세네파의 ‘호란’이라고 합니다.”
젊은이의 눈동자가 다시 반짝였다.
“어머, 그러시구나. 바라바 오빠에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나는 ‘사라’라고 해요.”
그녀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아, 저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열성당 사무엘 님의 따님이시지요.”
“네, 그래요. 바라바 오빠가 말했나요?”
“네. 지난번 쿰란에 오셨을 때 사라 님 재판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사라는 바라바 오빠가 자기 얘기를 그렇게 했다는 사실에 흐뭇했다.
“지금 바라바 님이 예루살렘에 계신가요?”
“그래요. 나하고 같은 호텔에 있어요. 지금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너무 잘 되었네요. 바라바 형님을 만나러 내일은 갈릴리로 떠나려 했어요.”
호란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헤롯 왕궁을 돌아가는 큰길이 마침 떠오른 보름 달빛에 낯같이 밝아왔다.
호란은 키는 크지 않지만, 꼭 다문 입술과 균형 잡힌 몸매가 다부진 모습이었다.
잠시 말없이 걷다가 사라가 입을 열었다.
“바라바 오빠를 만나러 온 걸 보니 무슨 중요한 일이 있나 봐요.”
“네, 꼭 상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호란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무슨 일인지 더 이상 묻지 않고 사라는 화제를 돌렸다.
“호란 씨는 어떻게 그렇게 돌팔매질을 잘해요?”
“쿰란 골짜기에서 자라다 보니까 어려서부터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토끼를 잡다가 나중에는 나뭇가지에 앉은 새도 떨어뜨렸어요.”
“그랬군요. 아까 놈들의 이마에 큰 혹이 생겼을 거예요. 호호.”
“네, 일부러 아주 세게 던지지는 않았어요. 그랬으면 두 사람 다 못 일어났지요.”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은 듯한 호란이 더 듬직해 보였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총총걸음으로 산헤드린 재판소 앞을 통과했다
사라는 불과 몇 달 전 여기서 벌어졌던 재판과 루고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생각나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곧 아빠의 얼굴이 떠오르며 글로버 선생의 말씀대로 자신의 몸안에 아빠의 피와 살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며 발걸음이 어느새 호텔 정문에 이르렀다.
“식당으로 가요. 아마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사라의 예상대로 식당으로 들어서자 구석 자리에 앉아있는 바라바의 모습이 보였다.
바라바도 사라와 같이 들어오는 남자에게 시선을 주다가 활짝 웃는 얼굴이 되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호란 동생이 여기 웬일이야?”
바라바와 호란이 반갑게 포옹을 한 후 자리에 앉았다.
사라가 조금 전 호란이 도와준 일을 설명했고 바라바가 그를 대견한 듯 바라보았다.
“정말 큰일 날 뻔했네. 그놈들이 시카리는 틀림없을까?”
“네, 칼 모양과 휘두르는 솜씨가 그런 것 같아요.
패거리가 더 있을까 봐 그 정도로 끝냈어요.”
“응, 잘했네. 빌립 선생님은 안녕하시지?”
호란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고개가 숙여졌다.
“할아버지는 열흘 전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바라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