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 선생이 사라의 눈을 들여다보며 계속 말했다.
“사라 양은 아빠를 많이 닮았나요?”
“네, 제가 웃는 모습이 아빠와 비슷해요. 코와 입도 닮았고요.”
“엄마를 닮은 데도 있겠지요.
대개 부모를 조금씩 닮고, 어떤 사람은 모습이 달라도 성격이나 행동이 비슷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아빠, 엄마, 오셔서 저를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의 몸이 아빠, 엄마의 몸이기 때문인데 그분들은 안 계셔도 그들이 건강하실 때의 몸이 우리 안에 현존하고 있지요.
그분들을 부를 때 우리는 모두 한 몸인 것을 알게 돼요.
그래서 사랑과 자비가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와 연결되는 모든 사람들도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러한 사랑을 받고 보내면 우리의 가슴에 변화가 일어나요.
기도가 진정으로 작용하는 힘이 거기서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변화의 힘이 제 마음을 평안하게 하나 보네요.”
“그렇지요. 중요한 것은 서로 소통하는 힘이지요.
우리와 우리 기도를 받는 사람이 이미 연결되어 있으면 둘 사이의 소통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납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사라가 선생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고 하는군요.
우리의 몸에 하나님의 몸이 현존하고 있고 결국 모두 연결되어 하나가 되네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신 나사렛 예수 선생님처럼요.”
“그래요. 그분이 이런 진리를 확실히 먼저 깨달으셨어요.
이 진리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성령이란 이름으로 퍼지고 있는 거지요.
네리와 내가 만난 엠마오의 행인이 예수 선생이었다는 깨달음도 마찬가지예요.”
선생에게 그 행인 어떻게 생겼냐는 질문을 하려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며 요한이 들어왔다.
사라가 반갑게 인사를 한 후 그녀의 방문 목적을 말해 주었다.
“계약금을 가능한 한 조금만 주세요. 어차피 가야바와 동업하고 있으니까 그와 상의한 후 모든 일이 결정돼요.
수감된 동료들이 열 명이 넘으면 수임료를 많이 달라고 할 텐데… 소개장을 써 드리는 것보다 제가 직접 같이 가는 게 어떨까요?”
사라가 생각해 보니 그것도 좋을 성싶었다.
바라바 오빠가 현재 풀려난 몸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은 조금 꺼려졌다.
“네,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어요.”
“천만에요. 내일이라도 같이 가도록 하지요.”
요한과 사라가 사무실에서 만날 시간을 정했다.
일단 사라의 안건이 끝나자 네리가 요한에게 물었다.
“지난번 형님이 막달라에 간다고 했는데 거기서 마리아 님은 만나셨나요?”
사라와 글로버의 시선이 동시에 요한을 향했다.
“만나지 못했네. 이미 며칠 전 고향을 떠나셨어.”
“그래요? 어디로 가셨나요? 그럼, 여기는 안 오시나요?”
네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아마 앞으로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내가 올 것으로 생각해서 집에 있는 친척에게 서신을 남겨 두었더군.
그분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막달라 마리아라면 무덤에서 부활한 예수 선생을 맨 먼저 보았다는 여인 같은데 그 서신을 내가 좀 읽어 봐도 되겠나?”
글로버의 요청에 요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 내실 서랍에 넣어 놓았는데 가지고 오겠습니다.”
요한이 자리를 뜨자 네리가 선생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두 번째 부활하신 선생님을 보았나 봐요. 막달라 마리아님 다음으로…”
그녀의 서신을 기다리는 선생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곧 요한이 서신을 가지고 왔다. 글로버가 그것을 펼쳐 보았다.
<존경하는 요한 님, 그리고 여러 사도님,
저는 이제 제 고향 막달라를 떠납니다.
만약 요한 님이 저를 만나러 오신다면 이 서신을 보시겠지요.
요한 님이 예수 선생님의 어머니 마리아 님을 모시고 있어서 저를 찾으러 오실 것으로 생각하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막달라와 나사렛에서 꿈 같은 어린 시절을 예수 선생님과 저는 같이 지냈습니다.
나지막한 언덕에서 양 떼를 몰고 염소젖을 짜기도 했고 갈릴리 호수에서는 맑은 호숫가를 같이 거닐며 물고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세상과 짝을 하는 여인이 되었고 소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지요.
골고다의 비극이 있은 3일 후 왜 제가 부활한 그분을 맨 먼저 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놀라운 은혜의 순간을 제가 간직하고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날 새벽에 있었던 일을 조금 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베드로 님과 요한 님이 무덤을 떠난 후 그 자리에서 계속 울고 있었지요.
잠시 후 동산지기가 보이길래 그에게 선생님을 혹시 어디로 옮겼는지 물었는데, 그 사람이 ‘마리아야’하고 저를 부르신 순간 저는 그분이 예수님인 것을 알았어요.
예수께서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라는 말씀을 하셨고, 저는 그분을 만지려는 제 손을 얼른 거두어야 했지요.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분을, 다시 살아나신 것에 놀라워 이게 혹시 꿈인가 하고, 만져 보고 싶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제 마음은 예전에 그분을 흠모했던 추억이 먼저 살아났던 것입니다.
그 후에 제자분들께 제가 선생님을 만난 말씀을 했고 갈릴리에서도 선생님이 여러 번 나타나신 것은 모두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저는 곧바로 고향으로 올라와 혼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기도는 두 가지 의문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우선 ‘나는 그분을 몰라봤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나를 알고 내 이름을 불렀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그분은 우리가 보던 한 인간의 모습으로만 나타나시지 않겠구나’라고 깨달았지요.
동시에 그분이 나를 알고 먼저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나에게 오는 것이지 내가 그분을 알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마리아야’라고 불렀을 때 제가 ‘선생님’이라고 대답한 것처럼, 보이는 것보다 들리는 것으로 마음속의 음성인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살아야겠다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첫째 장을 읽어 내려간 글로버 선생은 입으로 길게 숨을 내쉰 후 사라와 네리를 위해서 처음부터 소리를 내어 다시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