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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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329화 ★ 황제와 담판

wy 0 10:20

탁 트인 바다 경치만으로는 인간의 감탄을 며칠 이상 자아내지 못한다.

[크기변환]1카프리5.jpg

 

경치는 땅과 바다가 같이 어울릴 때 절경이 되는 것이고, 카프리섬이 그런 곳이다.

 

나폴리를 마주하고 왼쪽은 미세노 항구, 오른쪽은 소렌토 반도가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어 북풍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카프리섬 서쪽으로는 비슷한 크기의 섬들이 몇 개 나란히 떠 있다.

 

거기서는 망망대해밖에 보이지 않는데 황제는 그 섬에 게르마니쿠스의 부인과 큰아들을 반역죄로 유배시켰고, 몇 년 전에 모두 섬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칼리굴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불을 보듯 훤하다.

 

헤로디아는 엊저녁 만찬에서 노인이 한 말을 계속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의미가 느껴졌다.

 

그는 칼리굴라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대기실 문이 열리고 노미우스가 들어왔다.

 

폐하께서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올라가시지요.”

 

왕비가 계단을 올라가며 반걸음 늦게 따라오는 노미우스가 듣도록 고개를 살짝 돌리고 말했다.

 

어제저녁에 많이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노미우스 님. 일이 잘 진행되면 꼭 따로 연락드릴게요.”

 

경호실장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황제의 집무실로 들어가니 노인의 서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헤로디아, 이 옆으로 와서 전망을 좀 보시오.”

 

노인이 그녀를 헤로디아로 부를 때는 친밀감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오늘의 협상이 잘 타결될 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 그녀는 황제 옆에 다소곳이 다가섰다.

 

200미터가 넘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서 있는 독수리 모양의 빌라 주피터, 그중에서도 눈 같은 위치가 바로 여기 황제의 집무실 전망대였다.

 

바닷가 너머로 드넓게 펼쳐진 옥빛 하늘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아른거리는 햇빛이 카프리섬 오전의 풍광을 비추고 있었다.

 

아래로 보이는 바다에는 일렁거리는 하얀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 들어오고 모랫가에는 갈대 짚과 판자로 지붕이 덮여 있는 원주민들의 움막이 몇 채 보였다.

 

노인이 헤로디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내가 어린 소년 소녀들을 농락한 후 이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인다는 소문을 들어 보았소?”

 

어머, 황제 폐하!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있나요. 저는 처음 들었어요.”

 

왕비가 펄쩍 뛰었다.

 

노인 황제가 큰 수족관에 작은 물고기들과 어린 소년 소녀를 같이 헤엄치게 하며 음란한 놀이를 즐긴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절벽에서 떨어뜨린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유대에 있어서 소문이 느린 것이리라.

 

, 그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헤로디아가 가지고 온 안건부터 논의해 봅시다.”

 

노인이 집무실 중간 소파로 이동했고 양쪽에 왕비와 노미우스가 따라 앉았다.

 

어제 말했던 성명서 초안이 작성되었으면 실장이 읽어 보시오.”

 

, 폐하

 

노미우스가 안주머니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낸 후 목을 가다듬었다.

 

< 유대 지역의 평화를 위한 황제 성명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현재 유대 지역에서 유지되고 있는 평화협정을 존중하며 헤롯왕의 통치를 지지하는 바이다.

 

로마제국에 의해 40년간 유지된 이 평화 구도를 위태롭게 하는 나라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티베리우스 로마 황제 >

 

눈을 감은 채 듣고 있던 황제가 실장에게 물었다.

 

이유 여하라는 말은 왜 넣었나?”

 

노미우스가 왕비와 눈을 한 번 마주친 후 대답했다.

 

나바테아의 아리테스왕이 헤롯왕께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그 점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입니다.

 

헤롯왕의 첫 번째 부인이 아리테스왕의 딸이었습니다.”

 

노인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헤로디아를 쳐다보았다.

 

이대로 하면 되겠소?”

 

, 폐하. 감사합니다.”

 

노미우스가 양피지를 테이블 위에 펼쳐 보였고 황제가 그 위에 반지 도장을 꾹 눌렀다.

 

이로써 당분간 전쟁은 염려하지 않게 되었다.

 

이 성명서를 오늘 오후에 즉시 공표하시오. 다음 안건은 뭔가?”

 

, 폐하. 빌립 왕이 다스리던 영토에 대한 안건입니다.”

 

, 그 땅을 통치할 만한 유대인 후보는 누가 있는가?”

 

, 우선 헤롯 선대왕의 핏줄인 아그리파가 있습니다.

 

그는 유대 지역에서 여러 행정업무도 배웠고 헤로디아 왕비의 오빠입니다.”

 

, 그 사람이 있었군. 아그리파 장군의 이름을 본떠서 이름도 그대로 지었지.

 

충성심도 아그리파 장군을 닮았나?”

노미우스가 대답을 망설였다.

 

, 그걸 자네가 알기는 어렵겠지. 또 다른 후보는 누구인가?”

 

,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영토가 붙어 있다고 했던가?”

 

, 폐하. 헤롯왕은 지난 30년간 세포리스 신도시를 건설하여 지역경제를 살리고 역사적으로 민란이 자주 일어난 갈릴리 지역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고 있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노미우스 실장님, 로마에서 아그리파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 누구지요?”

 

헤로디아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가장 중요한 부분을 건드렸다.

 

정치적으로 칼리굴라 님과 가장 가깝습니다.”

 

, 게멜루스와는 어떤가?”

 

황제의 질문이 바로 나왔다.

 

별로 왕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인의 짧은 침묵이 대단히 길게 느껴졌다.

 

결과에 따라 한 지역의 통치자가 결정될 뿐 아니라 로마제국의 후계자에 대한 윤곽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 지리적으로 볼 때 헤롯왕이 같이 관리하는 것이 타당하겠구먼.

 

이 안건은 원로원 승인을 거쳐야 하니 시간이 조금 걸리겠네.”

 

헤로디아가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 노인에게 감사하려는데 노미우스가 먼저 말했다.

 

, 폐하.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유대 총독 빌라도가 그 땅을 총독이 직접 관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얼마 전 원로원에 제출했는데 동조하는 의원이 꽤 있습니다.”

 

그래? 빌라도가 왜 그런 일을 했을까?”

 

헤로디아가 분노로 눈꼬리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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