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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325화 ★ 생선을 먹는 나병 모녀

wy 0 07:28

  

잘 구워진 생선 두 마리를 골라서 사라는 앞문에 있는 나병 환자 모녀에게 가 보았다.

 

그들은 사라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

 

아마 조금 전 딸이 와서 엄마에게 곧 생선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전에도 한 번 빵을 건네준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 보면서 음식을 주기는 처음이다.

 

병든 사람에게 생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고 태도에 품위까지 느껴졌다.

 

언뜻 보기에 입과 코부분은 거의 정상인과 차이가 없는 듯싶었다.

 

눈 위로는 검은 천으로 가렸으나 나병에 걸리기 전에는 미인 소리를 들었을 것 같았다.

 

어린 딸은 생선을 받아서 허겁지겁 먹느라고 얼굴에 검은 천이 벗겨지는 것도 몰랐다.

 

일고여덟 살 정도의 귀여운 얼굴인데 왼쪽 눈썹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마치 눈썹에 장난으로 흰 물감을 들인 듯했는데 그것이 병의 시초라고 들었다.

 

양손은 씻지를 못해서 지저분했고, 회색 옷도 여기저기 찢어지고 더러운 얼룩이 있었다.

 

사라는 미사엘에게 들은 말도 있고 소녀의 얼굴을 보니 용기가 났다.

 

우리 집에 가서 목욕도 하고 식사도 좀 더 하세요.”

 

소녀의 엄마가 생선을 먹다가 깜짝 놀란 듯 동작을 멈추었다.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게 보였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더러운 병든 사람인데 말씀만으로도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그 병은 쉽게 전염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어요.

 

사양하지 마시고 같이 가요. 따님이 참 이쁘게 생겼네요.”

 

엄마와 딸이 얼굴을 마주 보았고 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생선 마저 드시고 우리 집 뒷문으로 오세요.

 

지금 생선이 여러 마리 있는데 나 혼자 다 못 먹어요.”

 

사라가 또 한 번 권유했다. 손을 잡고 같이 갈까, 생각했는데 그럴 용기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곧 가겠습니다.”

 

엄마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사라가 집으로 돌아와서 생선 몇 마리를 양념을 발라 화덕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가만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두 모녀가 들어왔다.

 

사라는 그들을 먼저 목욕탕으로 안내했다.

 

어렸을 때 아빠가 사준 진한 회색 옷을 딸에게, 엄마에게는 작아서 못 입는 조금 두꺼운 옷을 입으라고 놓고 나왔다.

 

목욕을 마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온 모녀의 모습은 대단히 빛나 보였다.

 

특히 검은 천을 벗은 엄마의 얼굴은 전혀 환자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눈썹도 그대로고 피부도 어디 한군데 진물이 나거나 문드러진 곳이 보이지 않았다.

 

사라는 우선 모녀를 식탁에 앉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선 몇 마리와 하얀 빵을 내왔다.

 

맛있는 냄새에 사라도 시장기를 느꼈다.

 

, 어서 많이 드세요.”

 

사라가 빵을 먼저 한 입 먹자 모녀도 허겁지겁 음식을 입속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먹은 후 소녀가 엄마에게 목이 마르다고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굶주림이 가시자, 갈증을 느낀 것이다.

 

사라가 얼른 물을 큰 병으로 가지고 왔다.

 

물을 마신 다음 생선을 다시 맛있게 먹는 소녀의 모습을 엄마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나병 환자들은 누가 그들에게 접근하면 큰 소리로 나는 더러운 병자입니다라고 외쳐야 했다.

 

만약 그것을 소홀히 해 다른 사람과 접촉하게 되면 곧바로 공동묘지 근처에 있는 나병 환자 수용소로 잡혀 들어간다.

 

한 번 들어가면 바로 옆, 무덤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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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눈먼 자, 나병 환자, 자식 없는 자들을 죽은 사람으로 간주했고 그들도 그렇게 알고 죽은 듯 살아간다.

 

이 두 모녀도 집에서는 쫓겨났으나 아직 증상이 심하지 않아 시내에서 붙잡혀 추방되지는 않은 성싶었다.

 

미사엘 님에게 들은 바로는 나병은 어느 날 피부에 작은 부스럼 같은 것이 생기는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신경을 별로 쓰지 않는다.

 

아프거나 간지럽지도 않아 서서히 피부가 갈라지기 전까지는 대부분 그것이 나병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한다.

 

하지만 곧 손톱이 빠지고 눈썹이 하얗게 세면서 부스럼 딱지에서는 진물이 나기 시작한다.

 

심해지면 손가락이 문드러지고 눈도 보이지 않는다.

 

나병 환자들은 절대 낫지 않는 절망의 늪에 빠져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지금 두 모녀의 모습은 딸의 눈썹을 제외하고는 별로 눈에 띄는 병의 표식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식탁 위의 생선과 빵이 거의 다 없어지자, 엄마가 입을 열었다.

 

사라 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빌겠습니다.”

 

어머! 제 이름을 아시네요.”

 

, 사무엘 님도 몇 번 뵌 적이 있고 실은 그분의 장례식에도 참석했어요.

 

그때는 아직 우리 아이가 눈썹이 이렇게 되기 전이었지요.”

 

마르고 혈색이 없는 얼굴이지만 그녀의 눈은 깊이 있게 반짝거렸다.

 

, 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저의 아버지를 잘 아셨나요?”

 

아니요. 건너편 공원 뒤 회당에서 예배 때 몇 번 뵈었어요.

 

가게에 한번 오라고도 하셨고 따님 얘기도 하셨어요.

 

그 말씀이 생각이 나서 제가 이 집 앞문에 어느새 앉아 있나 봐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가 계속 이어나갔다.

 

제 이름은 한나이고, 이 아이는 니나라고 합니다.

 

저는 회당에서 매주 봉사활동으로 어린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어요.”

 

그 말을 들으니 두 모녀가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사라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런데 이런 말씀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한나 님은 얼굴이 환자 같지 않네요.”

 

그녀가 잠시 망설이더니 왼손가락을 펴 보였다.

 

새끼손톱이 빠져 있었는데 그것을 본 니나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당황한 사라에게 니나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환자가 아니에요. 저와 같이 있으려고 일부러.”

 

놀라서 바라보는 사라에게 한나가 보일 듯 말 듯 슬픈 미소를 짓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니나와 같이 있기 위해서 손톱을 뽑았지요.

 

어차피 곧 저도 환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괜찮습니다.”

 

사라는 마음이 울컥해서 뭐라 말을 이을 수 없었고, 두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이제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너무 폐를 많이 끼쳤네요.”

 

두 모녀는 사라가 만류할 사이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욕탕에 벗어 놓은그들의 옷을 가지고 나갔다.

 

밖에서 태워 버릴 생각이리라.

 

두 사람을 보낸 후 사라의 뇌리에 한나의 슬픈 미소가 계속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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