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세겜을 출발한 바라바와 사라는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갈릴리 가버나움 시내로 들어왔다.
사라를 먼저 집 앞에 내려주고 아버지 가게에 도착한 바라바는 집을 떠난 지 1년은 되는 느낌이었다.
가게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갔는데 이상하게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긴장한 바라바가 좌우를 돌아보니 한쪽 구석 소파에서 아버지가 앉아서 졸고 계셨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다가가서 그 앞의 소파에 살며시 앉아도 기척을 못 느끼셨다.
머리를 앞으로 숙이셨고 코 고는 소리까지 가늘고 규칙적으로 들렸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난 후 바라바가 조심스레 아버지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바라바가 어렸을 때 이 두터운 손으로 아들의 손을 포근히 감싸고 회당을 데려다주셨다.
아버지가 자신의 손을 꼭 쥐시던 느낌을 생각하며 이제는 노인이 되어 주름과 검버섯들이 흩어져 있는 손등을 다시 가만히 쓰다듬었다.
“바라바야, 이제 돌아왔구나.”
아버지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먼저 나왔고 그 후 눈을 슬며시 뜨셨다.
“어, 이게 꿈이 아니었나? 네가 진짜 왔네.”
“제 꿈을 꾸고 계셨어요?”
“그래, 네가 쿰란 동굴에서 악한에게 붙잡혔다가 간신히 탈출해서 왔다고 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하하.”
아버지가 입가에 침을 닦으며 웃으셨다.
“쿰란에서는 빌립 선생님 만나서 시키시는 대로 일 잘했어요.”
“음, 그래. 등산 솜씨를 발휘했구나. 선생님 건강은 어떠시니?”
“연로하시지만 아직 거동에 큰 불편은 없으세요. 아버지 안부 전해드렸고요.”
“그만하시면 다행이구나….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늦게 왔니?
사라가 중간에 한번 다녀가긴 했었지만….”
아버지가 잠에서 완전히 깬 눈으로 바라바를 쳐다보았다.
“아, 네….
마침 유월절이라 예루살렘에 들러서 축제도 구경하고 친구들도 만나느라 날짜가 금방 지나갔어요.”
바라바가 적당히 둘러대었다.
“음, 너도 들었겠지만 나사렛 예수가 이번 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는데, 그때 너도 거기 있는 듯해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네, 죄송해요. 빨리 오려고 했었는데….”
바라바가 더 이상 얘기를 안 하자 아버지가 슬쩍 물었다.
“사라와 계속 같이 지냈니?”
“네, 그럼요.”
대답하고 보니 물어보신 의도와 다른 답변인 성싶었다.
“사라도 지금 같이 왔겠지?”
“네….
아, 그리고 빌립 선생님이 이 은목걸이를 제게 선물로 주셨어요.”
바라바가 목에 차고 있는 목걸이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음, 그분이 주신 거면 예사 것이 아닐 거다.
잘 간직하고 다녀라.”
“네. 에세네파에서 오래전 만든 귀한 목걸이라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일어나 작은 단지에서 석청을 한 스푼씩 타서 꿀물을 만드셨다.
“이거 네가 지난번 헤르몬산에서 따온 석청인데 좀 마셔라.
짧지 않은 여행이었는데 꽤 피곤할 거다.”
“아직도 그게 남아 있네요. 감사합니다.”
바라바는 쌉쌀하고 달콤한 석청 물을 천천히 마셨다.
“세례요한 선생이 헤롯왕에게 목숨을 잃고, 이번에 나사렛 예수까지 빌라도에게 처형되어서 우리 에세네파의 사기가 많이 떨어진 것 같구나.”
“예수 선생도 우리 에세네파인가요?”
“직접 연결은 안 될지 모르지만, 세례요한 선생의 제자였으니까 우리는 다른 선지자들보다 친밀감을 많이 느낀다.
요한 선생도 에세네파에서 공동생활은 안 했지만, 그 뿌리가 같다고 볼 수 있지.”
바라바가 석청 물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버지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 요즘 놀라운 소문이 돌고 있는데, 나사렛 예수가 처형 후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서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났다는구나.”
“그럴 수가 있나요?”
바라바가 반문하면서 속에서 반가운 마음이 솟구쳤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와의 인연은 생사가 교차된 순간이었다.
“예수의 제자들 여러 명이 그를 직접 봤다고 하는데….
이상한 점은 말하는 사람에 따라 약간 주장이 다른 듯하더라.”
“무엇이 다른가요?”
바라바의 상체가 아버지 쪽으로 기울었다.
“음,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예수 선생이 영혼으로 살아나서 그를 처음 봤을 때는 누군지 몰랐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도 그대로 살아나서 십자가에 못 박혔던 자국도 있다고 하네.”
“그를 본 사람들의 말이 그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원래 소문이란 것이 한 사람 건너면 말이 달라지기 쉬운데 이런 경우는 더 그렇겠지.
처음에는 그가 영혼으로 살아났다는 말이 많았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육으로 살아났고 그 육은 알아볼 수 있으나 신비한 능력이 있는, 그러니까 벽도 막 통과하는 그런 육체로 변화했다는구나.”
“네, 저도 한번 보고 싶네요.
근데 영으로 살아났다면 좀 그럴듯한데 육체로 살아났다는 말은 믿는 사람이 많이 있을까요?”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도 군대 열병식 중 하늘로 그대로 들어 올려져서 신이 되었다고 믿듯이 육체가 바로 신적 존재가 된 경우도 있긴 하지.”
“그래도 로물루스는 그 전에 죽지 않았는데 나사렛 예수는 죽었다가 살아난 거니까요.”
“음, 사람들이 잘 믿지 못해서 그런지 살아난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먹었다는 소문도 있더라.
아침도 같이 했다는데, 아침 반찬에 구운 생선이 있었는지도 모르지.”
“아, 구운 생선 소리를 들으니 먹고 싶네요.”
“그래. 어시장에 가서 생선 좀 사다가 구워 먹자.
나사렛 예수의 제자들이 어부가 많은데 그들이 잡은 싱싱한 생선일 수도 있겠지.”
“네, 제가 어차피 조금 있다 사라네 집에 가봐야 하니까 그 옆 가게에서 사올게요.”
“응, 그래. 여하튼 지금 소문이 널리 퍼지고 사람들이 믿는 것으로 봐서는 예수 선생이 곧 세례요한 선생의 위상을 뛰어넘을 것 같구나.
어쩌면 신이나 천사의 수준으로도 올라갈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되면 그가 언제부터 그런 신격이었는지가 또 논쟁의 대상이 되겠지.”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바라바가 궁금한 듯 물었다.
“음, 그러니까 그분이 메시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언제부터 그랬는지를 사람들이 정해야 하는데 여러 의견이 나오게 될 거야.
최근부터 말하면 다시 살아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신격이 된 건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비둘기가 나타나면서 그런 건지, 혹은 이미 엄마 뱃속에서 잉태할 때부터 그랬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거다.”
“아, 그런 논쟁이 있을 수 있겠네요.”
바라바는 오랜만에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가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