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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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285화 ★ 출소

wy 0 2024.05.05

감옥 문이 하루에 두 번 열리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더욱이 한 사람의 죄수를 위해 열린 안토니아 요새 정문의 풍경도 아까와는 사뭇 달랐다.

 

화창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파란 하늘에 새소리도 가볍게 들리고,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야자나무 그늘 밑에, 크고 화려한 가마가 서 있었다.

 

그 뒤로 성전 경비대 복장을 한 경호원들 십여 명이 주위를 돌아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마 안에서 헤로디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10시가 안 되었나?”

 

, 왕비님. 해시계가 아직 10시 조금 전입니다."

 

시녀 장이 가마의 얇은 보라색 커튼에 가린 그림자를 향해 공손한 자세로 대답했다.

 

이럴 때는 참 시간이 안 가네.

 

좋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언제 하루가 지나는지 모르게 가버리는데. 호호.”

 

헤로디아 왕비가 옆에 앉아 있는 루브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별 대답이 없는 그녀에게 왕비가 검붉은 대추야자를 손으로 직접 건네주었다.

 

이거 하나 먹어봐. 아주 달고 쫀득한 게 맛있어.”

 

, 감사합니다. 왕비님.

 

베다니 지역의 대추야자는 로마에서도 찾는 사람이 많아요.”

 

, 맞아. 그래서 이번에 나도 많이 가지고 가지.

 

쉽게 상하지 않기 때문에 가면서 먹기도 좋고.”

 

대추야자를 한입 천천히 먹는 루브리아의 얼굴에 계속 그늘이 졌다.

 

루브리아, 사람은 다 태어날 때 타고난 운명이 있는 거야.

 

루브리아는 한 가족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정말이지 나도 처음 결혼할 때는 내가 곧 이혼하고 헤롯 안티파스와 이렇게 유대 땅에 살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어.”

 

왕비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 후 계속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여자의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같이 사는 것이 최고인데 내 운명은 그런 행복을 타고나지 못했지.

 

솔직히 그런 여자들을 보면 참 부러워.”

 

왕비가 가볍게 한숨까지 쉬며 루브리아의 크고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이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눈이 앞으로 어떤 운명의 사건을 바라보게 될지 헤로디아는 순간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왕비님!”

 

시녀 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토니아 요새 정문 옆에는 사라와 네리가 새벽 때 기다리던 같은 장소에서 정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이 완전히 열리며 아까는 보이지 않던 바라바의 걸어 나오는 모습이 사라의 눈동자에 천천히 비치기 시작했다.

 

사라가 달려나가 바라바와 허그를 했고, 그 동작이 저만치 떨어져 있는 루브리아와 헤로디아의 시야에 연극의 한 장면처럼 들어왔다.

 

루브리아의 크게 안도하는 표정이 곧 바라바를 만나지 못하는 씁쓸함으로 변했다.

 

, 이제 확인했으니 떠나도록 하자.”

 

왕비가 손을 내밀어 가마의 옆을 가볍게 두 번 두드리자 시녀 장이 커튼을 닫은 후 가마를 출발시켰다.

 

사라의 눈에 가마가 멀어지는 모습이 보였고 반대편에 서 있는 바라바는 사라를 보고 웃었다.

 

고생 많았지. 바라바 오빠, 얼굴이 많이 빠졌네.”

 

나보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더 힘들었을 거야.”

 

바라바는 루브리아의 안부를 물으려다 말을 바꾸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별일 없지?”

 

그녀가 얼른 루브리아의 소식을 전했다.

 

루브리아 언니는 눈이 나았어요.”

 

, 예수 선생님이 고쳐주었구나.”

 

바라바의 표정이 밝아졌다.

 

, 그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말해 줄게요.

 

우선 감람산으로 가서 아몬 오빠와 헤스론 오빠부터 만나요.

 

새벽에 여기서 기다렸다 돌아갔는데 이렇게 다시 나온 건 아직 몰라.”

 

하하, 내 얼굴을 보면 깜짝 놀라겠구나.

 

그래 거기부터 갔다가 호텔로 가자.”

 

바라바의 발걸음이 가벼웠고 루브리아가 탄 마차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바라바 헤로디아 루브리아 사라 collage.png

 

 

 

 

베다니 시몬의 집에도 안식일의 해가 높이 솟았다.

 

어젯밤 늦게 마가의 다락방에서 돌아온 요한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제자들은 벌써 반 이상 뿔뿔이 흩어졌고 베드로와 도마도 내일은 갈릴리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요한은 썰렁한 복도를 지나 예수 선생이 거처하던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선생의 체취가 남아 있는 방은 어둑하지만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유월절 만찬을 위해 집을 나설 때 모든 정리를 하신 것이리라.

 

요한은 선생이 혼자서 묵묵히 율법서를 읽으시던 낮은 책상에 앉아 눈을 감았다.

 

선생이 만찬을 하시며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던 모습, 식사하시며 포도주와 빵을 나누어 주시던 광경 등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선생이 그날 한 말이 생각났다.

 

*‘여러분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세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은데 그렇지 않으면 말했을 거예요.

 

내가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가 가서 거처를 마련한 후 다시 와서 여러분을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여러분도 있게 하겠어요라고 하신 말씀이었다.

 

요한은 그날도 이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장의 연결이 잘 안 되었고 어쩌면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기억나는 대로 써본 것이다.

 

천천히 읽어 보니 그날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선생이 곧 어디를 가신다는 생각에만 빠진 듯싶었다.

 

그래서 선생이 아버지의 집에 가서 제자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한 후 우리를 영접하러 다시 오신다.’라고 이해했는데 그게 아닌 듯했다.

 

문맥을 잘 살펴보면 예수 선생님은 우리를 영접하러 여기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아서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선생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아버지 집에 가게 되는 것이다.

 

다른 문장을 예로 들어보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집에 가면 부엌에 빵이 많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말했을 거다.

 

내가 빵집에 가서 빵을 사가지고 갈 것이다라는 문장에서 부엌에 빵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는 빵집에 가서 빵을 사 오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선생은 제자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고 다시 오기 위해 가시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 한구석은 오히려 썰렁해졌다.

 

곧 선생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선생이 가신 길을 따라 가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생각이 대강 정리되자 이번에는 어젯밤 다락방에서 마가가 선생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가보고 싶다고 한 기억이 났다.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선생이 체포된 후 경비대를 가까이 따라가다 붙잡힐 뻔했는데 상당히 용감한 젊은이였다.

 

요한도 곧 선생의 무덤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니고데모 님의 친구 아리마대 요셉 님의 별장에 있는 가족무덤이었다.

 

*요한복음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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