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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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281화 ★ 제자들의 회한

wy 0 2024.04.21

절망과 공포의 시간이 지나자 부끄러움과 회한이 그들의 가슴에 밀려왔다.

 

겟세마네에서 예수 선생이 체포되자 겁에 질려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 몇 명이 다시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

 

그들이 메시아라 믿었던 나사렛 예수가 골고다에서 비참하고 무력하게 십자가에 달렸다.

 

거기에는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거의 없었고 막달라 마리아와 갈릴리에서 따라온 여자들만이 선생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어제저녁 선생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던 큰 대야가 그대로 바닥에 놓여 있었고, 달빛은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안을 길게 비추었다.

 

식탁 위에 타다 남은 초 몇 개에 요한이 불을 밝혔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기에도 민망한 침묵의 시간이 잠시 흐른 후 베드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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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일 놈이요

 

어제 선생의 말씀대로 닭 울기 전에 그분을 배반했소.

 

골고다 처형장에도 가지 않았고

 

고개를 푹 숙인 그에게 시몬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오죽하시면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냐는 말씀을 십자가에서 하셨겠어요.”

 

그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 흘렀다.

 

제자들은 살기 위해 비겁하게 도망친 자책감이 커질수록 예수 선생의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에 가슴이 메어왔다.

 

얼마나 우리를 원망하셨을까.

 

골고다로 가시는 길에도 제자들은 보이지 않고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졌다니.

 

거기서도 우리를 찾으셨을 텐데.”

 

마태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뜻이 바로 이거였나요?

 

곧 우리 곁을 떠나신다고 하시며 우리는 거기 올 수 없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나는 악몽을 꾼 것 같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말을 마친 마태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고 시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있어요.

 

어젯밤 겟세마네에서 그들이 우리를 다 잡을 수 있었는데 도망가게 놔둔 것 같아요.

 

베드로 님은 경비원의 귀를 칼로 쳤는데도 현장에서 체포되지 않았고요.”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요.

 

아마 선생님만 체포하면 우리 같은 사람은 아무 힘도 용기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요.

 

사실이 그렇고요.”

 

마태가 맞장구를 치는 데 잠자코 있던 요한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다 아시고 그들에게 우리를 보내주라고 하셨어요.”

 

다 아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베드로가 물었다.

 

실은 이런 일을 대비해서 제가 변호사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요.”

 

요한이 그동안 가낫세 변호사를 만난 이야기를 간단히 해주었다.

 

, 그러니까 그 계약서에 우리 제자들의 보호 항목도 따로 들어 있었다는 건가?”

 

, 변호사는 우리라도 보호를 해줘야 돈을 돌려주지 않는 명분이 생기겠지요.”

 

! 그럼 선생님은 우리가 안 잡힐 것을 아셨구나.

 

그래서 모두 도망간다고 하셨고.

 

닭 울기 전에 내가 그런 짓을 할 것도 아셨으니까.”

 

새로운 사실에 모두 아무 말도 못 하는데 요한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결과적으로 우리가 선생님을 이용해 신변을 보장 받은 거예요.

 

그래서 성전 경비대가 우리를 체포하지 않은 거지요.”

 

어제 만찬 때 반 이상 타들어 간 초들에서 촛농이 흘러내려 식탁으로 살짝 번져 있었다.

 

제자들의 마음이 더욱 처연해졌고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여하튼 이제 다 끝났으니 나는 이삼일 후 갈릴리로 돌아가겠소.

 

구레네 시몬이나 여성 제자들 얼굴을 볼 면목이 없소이다.”

 

베드로의 흰머리를 힘없이 흔들리는 촛불이 간신히 비춰주고 있었다.

 

 

 

 

디저트를 싸가지고 이층 카잔의 방으로 들어가며 오반이 말했다.

 

어머, 저도 이 방에 있었어요.

 

역시 카잔 님과 미리암은 보통 인연이 아니에요. 호호

 

그의 말이 맞긴 맞는 듯했다.

 

사촌 동생은 어디 갔나 보네요?”

 

. 잠깐 나갔는데 곧 들어올 거예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카잔의 말에 오반이 디저트를 탁자 위에 펴놓은 후 맞은편 의자에 다리를 모으고 얌전히 앉았다.

 

미리암님은 그럼 지금 세겜 시내에 혼자 계시나요?”

 

사촌 동생과 같이 있어요

 

방값이 여기보다 싸고 크기는 두 배에요.”

 

무화과 디저트를 손으로 집어 먹으며 그가 말했다.

 

혹시 식당 종업원 두스가 소개한 집인가요?”

 

, 맞아요. 카잔님은 머리도 좋으신 것 같아요. 호호

 

“네, 근데 제 머리로 이해 못 하는 게 하나 있어요.”

 

그게 뭔가요?”

 

미리암님은 대제사장 경호실에 근무하면서 무슨 재주로 돈을 그렇게 많이 모으셨나요?”

 

카잔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경계의 빛이 띠었다.

 

, . 원래 미리암의 집이 큰 부자였어요.”

 

그랬군요. 하하.”

 

카잔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린 후 누가 방문을 조용히 두드렸다.

 

“어머, 사촌 동생이 왔나 봐요. 디저트를 내가 많이 먹어서 어쩌나.”

 

괜찮을 거예요.”

 

문이 열리며 여로암이 들어왔고 그 뒤를 어떤 여자가 하얀 면사포를 쓰고 따라 들어왔다.

 

, 카잔님의 사촌 동생이 여자였나요?”

 

. 미리암님도 아는 여자예요. 흐흐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오반이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났다.

 

여로암이 곧 그 뒤로 가서 어깨를 눌러 다시 앉혔다.

 

묘령의 여인이 카잔 옆에 앉더니 얇은 면사포를 올렸다.

 

, 유리. 그의 입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이름이 새어 나왔다.

 

그녀와 카잔을 번갈아 쳐다보는 오반의 눈에 두려움이 묻어나왔다.

 

여로암이 그의 의자 뒤에 서서 오른손으로 긴 갈색 가발을 확 잡아 올렸다.

 

짧은 검정 머리가 드러났고 귀고리가 앞뒤로 크게 흔들렸다.

 

민망하고 속절없는 시간이 마침내 막을 내리고 유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무라듯 말했다.

 

여기로 이렇게 숨는다고 당신을 마나헴 님이 못 찾을 것 같았나요?

 

이제 지은 죄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지요. 이 자를 묶으세요.”

 

, 유리 님

 

여로암이 침대 밑에 미리 준비한 밧줄로 그의 몸통과 손발까지 꽁꽁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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