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판결.jpg

                                                                                  

바라바 272화 ★ 십자가 처형

wy 0 2024.03.20

 느릿느릿 걸어가는 예수의 머리는 점점 더 앞으로 숙여지고 있었다.

쓰러지듯 비틀거리면 그때마다 뒤에 있는 병정이 채찍을 휘둘렀다.

사람들이 서로 수군거리며 예수를 비난하는 소리도 들렸다.

지난 일요일에 당나귀를 타고 성내에 들어 온 것부터 좀 이상하다 했어.”

그보다 성전에서 갑자기 채찍을 휘두를 때 난 벌써 이렇게 될 줄 알아봤어.”

, 그래도 혹시 몰라.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무슨 엄청난 일이 일어날지도

그래서 끝까지 따라가 보는 건데. 또 실망하게 될 거 같아.”

예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상점거리를 지났다.

자갈 포장길이라 병정들의 군화 소리가 더 크게 저벅거렸다.

아침이지만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나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죄인을 구경했다.

그 중에는 예수가 자신들의 병을 못 고쳤다고 분노하는 절름발이와 앉은뱅이들의 저주 소리도 들렸다.

어떤 나이 먹은 불구자가 목발로 예수를 때리려고 나오다가 롱기누스에게 저지당했다.

그는 쉰 목소리로 악을 썼다.

, 이 사기꾼, 거짓말쟁이야.”

예수의 걸음이 멈칫하다가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얼마 더 못 가고 십자가를 진 채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라의 귀에 예수 선생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뒤에서 채찍으로 쳐도 더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마침 군중 속에서 얼굴이 검고 건장한 중년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죄인을 아는 사람인 듯 보였다.

그와 눈이 마주친 롱기누스가 그에게 예수 대신,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도록 했다.

예수가 가까스로 혼자 일어나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일행은 다윗의 성문을 지났고, 나지막한 비탈길을 느리게 올라 처형장에 도착했다.

온통 돌무더기와 가시나무들만 보이는, 황량하고 낮은 언덕이었다.

골고다의 뜻이 해골이듯이 낮은 바위 사이로는 버려진 뼈들이 보였고 하늘에는 독수리가 벌써 몇 마리 날고 있었다.

반역자들이 십자가에서 처형되면 대개 들개나 독수리의 밥이 되었다.

동쪽으로는 안토니아 요새와 성전 벽도 상당히 가까이 올려다 보였다.

높지 않은 언덕이었지만 주위에 계곡이 있어 먼지 섞인 회오리바람이 불었고 어디선가 썩은 냄새도 올라왔다.

십자가 처형이 잔인한 이유는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가 엄청난 고통 속에서 며칠씩 살아 있기 때문이다.

못 박힌 손발의 출혈은 치명상이 안 되고 결국 죄수는 스스로의 몸무게로 인해 질식사하게 된다.

숨을 쉴 때마다 두 발로 기둥을 밀어서 처진 몸을 들어 올려야 허파가 팽창과 수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 세로대에는 아래 부분에 작은 발판이 붙어 있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는 바위 사이에 미리 세워놓은 십자가 세로대가 몇 개 보였다.

이제부터 죄수와 처형 병사 외에는 더 이상 그 쪽으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사형수 두 명과 병사들이 미리 도착하여 세로대 옆 낮은 바위 위에 앉아 예수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 이제 여러분은 여기서 기다리시오.”

롱기누스의 굵직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술 냄새도 같이 풍겨 왔다.

맥슨이 그와 눈이 마주쳤으나 롱기누스는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근무 중이라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맥슨이 거기까지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루브리아는 며칠 전 요한과 같이 예수 선생의 방에 들어갔던 기억이 났다.

크고 맑은 눈으로 선생은 우리 모두, 서로를 불쌍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선생이 눈이 불편한 나의 고통을 나누어 갖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 저분의 고통은 상상할 수도 없을 뿐더러 누가 나눌 수도 없는 것이다.

설령 잡혀서 죽을 것을 각오했고, 또 밤새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 해도, 참혹한 고통과 세상의 조롱뿐인 마지막 순간은 분명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날 선생이 한 말 중 맞는 것은 루브리아가 그를 다시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는데 이 자리에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루브리아는 자기도 모르게 선생을 위해 짧은 기도를 올렸다.

병사 하나가 십자가 가로대를 준비되어 있던 세로대 옆에 편평하게 놓았다.

병사는 곧이어 예수의 몸통을 누인 다음 두 팔을 쭉 당겨서 가로대에 올렸다.

두 명의 병사가 동시에 양 팔 위에 올라탔고 또 한 병사가 10센티미터 정도의 대못과 큰 망치를 들고 왔다.

[크기변환]1shutterstock_604789439.jpg

하늘은 아름답게 파랬다.

오른팔 위에 있는 병사가 먼저 그것을 받아 예수의 손목 위에 대못을 대었다.

손에 못을 박으면 손바닥 뼈들이 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손이 찢어지기 때문에 손목 바로 위 갈라진 뼈 틈을 정확히 찔러야 한다.

대못은 끝이 가늘었다.

숙달된 솜씨의 병사가 망치를 손에 들고 천천히 위로 올렸다.

그때 어디선가 나팔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하늘에서 천군천사가 하나님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내려오는 것 같았다.

멀찌감치 떨어져 처형 순간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망치를 내려치려던 병사도 고개를 들어 위를 한번 바라보았다.

곧이어 합창 소리도 들려왔다.

성전에서 유월절 예식을 시작하며 부르는 찬미가였다.

이윽고 내려치는 망치 소리와 죄인의 비명 소리가 찬미가를 따랐다.

왼팔 위에 앉아 있던 병사도 망치를 받아 쥐고 같은 동작을 취했다.

메시아의 양팔이 십자가 가로대에 박히고 나팔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물론 하늘의 아버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침묵했다.

가로대에 못을 다 박자 병사들은 양쪽에서 예수를 일으켜 세웠다.

균형을 잘 잡아야 하기 때문에 가로대의 양끝을 병사들이 잡아 들어 올렸다.

정신을 잃은 듯 머리를 숙이고 있는 예수의 몸통을 한 병사가 붙잡았고, 양쪽에서 들어 올려진 가로대가 세로 기둥에 가져다 붙여지면서 십자가가 세워졌다.

이렇게 나사렛 예수는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렸다.

병사 하나가 얼른 그의 발을 세로대에 붙은 작은 발판 위에 올려놓았다.

발에 박는 못은 좀 더 긴 대못이었다.

병사의 망치가 하늘 높이 들릴 때 사람들은 눈을 감았고 아까보다 약해진 비명 소리가 귀에 닿았다.

찬미가 소리는 계속 들리고 있었다.

옆에서 그들의 작업을 보며 신포도주를 조금씩 마시던 롱기누스가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모양새를 확인한 후, 머리 바로 위에 죄명이 적힌 긴 나무패를 박았다.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의 양쪽에도 죄수들이 달렸다.

shutterstock_97664798.jpg

그렇게 하나님이 혹시라도 메시아라는 사내를 마지막 순간에 구해 주실까 하는 기대가 완전히 사라지자, 거기까지 따라온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머리를 흔들며 그를 조롱했다.

남은 살리면서 자기는 못 살리네.

저 사람이 유대의 왕이래.

십자가에서 한번 내려와 보면 우리가 믿을 텐데.”

루브리아가 고개를 들어 선생을 바라보았다.

가시관을 쓴 이마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렀고 힘없이 옆으로 꺾인 얼굴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어떠한 희망도 줄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선생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를 본 사람은 곧 내 아버지를 본 사람입니다.’

참으로 민망한 말이 아닌가.

그의 하나님은 이렇게 비참하고 무능하단 말인가.

십자가 위 하늘에는 독수리가 몇 마리 더 날며 원을 그리고 있었고, 점점 바람도 거칠게 불기 시작했다.

이때 그녀의 눈에 예수 선생의 얼굴이 조금 움직이는 듯 보였다.

아니 움직였다.

가시관에 덮인 고개를 천천히 세운 후 힘겹게 눈을 떠 누구를 찾는 듯했다.

그의 반쯤 감긴 눈이 루브리아의 눈과 마주쳤고 선생의 차분한 목소리가 루브리아의 귀에 생생히 들렸다.

나를 위해 기도해 줘서 고마워요.”

그녀의 눈이 커졌고 순간 회오리바람이 언덕 쪽에서 불며 루브리아가 !’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언니, 왜 그래요?”

사라가 급히 물었다.

맥슨도 가까이 다가왔다.

바람에 가시가 날아 온 것 같아.

 얼굴과 눈에도 들어갔어.”

사라가 그녀의 얼굴을 보니 왼쪽 이마에 아주 가는 바늘 같은 가시가 몇 개 박혀 있었다.

손으로 급하게 떼어 내었으나 눈에 들어간 것은 그럴 수 없었다.

이제 들어가셔야겠어요.”

맥슨이 강요하듯 말했다.

루브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왼눈을 감은 채 돌아섰고, 사라가 팔을 잡고 부축했다.

네리가 사라에게 자기는 좀 더 있다가 들어가겠다는 눈짓을 보냈다.

 

 

 

State
  • 현재 접속자 12 명
  • 오늘 방문자 333 명
  • 어제 방문자 553 명
  • 최대 방문자 832 명
  • 전체 방문자 218,400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