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판결.jpg

                                                                                  

바라바 265화 ★ 세상에 없는 왕국

wy 0 2024.02.25

 가야바 대제사장에게 끌려간 나사렛 예수는 미리 준비된 증인들 앞에 섰다.

그중에는 유대교 율법학자와 원로들도 있었다.

이마가 좁고 얼굴이 검은 증인이 외쳤다.

저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지을 수 있다 했습니다.”

가야바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 증인의 말이 사실이오?”

예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뒤에서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나도 들었는데 그건 그런 뜻이 아닙니다.

나사렛 예수는 늘 은유나 비유를 써서 말하는데, 뭐든지 잘못한 일이 있으면 회개해서 적어도 사흘 안으로 바로잡으라는 의미였어요.”

가야바 대제사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방금 발언한 사람을 보니 행색이 어느 집 하인 같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면 위증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막 호통을 치려는데 그 옆에 산헤드린 의원 니고데모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리마대 요셉의 얼굴도 그 뒤에 보였다.

가야바가 생각을 바꾸고 일어서서 예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핼쑥한 얼굴을 한 예수는 포박 당한 손을 앞으로 한 채 눈을 감고 서 있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해서 말해 보시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요?”

가야바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또렷하게 들렸다.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고 선생의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소. 이제 여러분은 인자가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오.”

이 말을 들은 가야바의 큰 입이 기쁨으로 벌어졌고, 곧 입고 있던 대제사장 튜닉의 앞섶을 찢기 시작했다.

이 참람한 말을 모두 들었지요?

더 무슨 증인이 필요하겠습니까?”

죄인의 신성모독이 입증되면 재판관은 유대교 경전인 미쉬나에 따라 옷을 찢어야 했다.

[크기변환]1shutterstock_2429700717.jpg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가 들렸고 가야바는 예수의 죄를 확정했다.

신성 모독죄는 사형이었다.

하지만 사형집행을 하기 위해 빌라도 총독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유대교 내부 문제로 그가 허락을 해줄지 자신이 없었다.

성전 경비대가 예수의 상체를 밧줄로 포박하고 빌라도에게 데려가기 위해 대문을 나섰다.

새벽이 어렴풋이 밝아 오고 있었다.

가야바를 필두로 산헤드린 의원 대부분과 서기관들도 그 뒤를 따라 나섰다.

 

땅바닥에 쓰러져 흐느껴 울던 베드로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큰소리 뻥뻥치면서 선생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감옥에라도 가겠다고 했던 그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맹세를 지키기는 커녕 그를 아느냐는 계집종의 질문에 겁부터 집어먹었고,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른 척 했다가 나중에는 철저히 선생을 부인한 것이다.

이제라도 다시 되돌아가서 그렇다 내가 그분의 수제자 베드로다. 그분을 풀어주고 나를 잡아넣어라.’라고 말해 볼까 생각하는데 대문이 열리며 고개를 숙이고 나오는 선생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베드로는 방금 생각했던 것과 달리 얼른 길가에 있는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포승줄로 묶인 선생의 힘없는 발걸음이 그를 슬프게 했고 안주머니 속의 단도를 손으로 꽉 쥐어 봤지만, 몸만 부들부들 떨릴 뿐 발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를 끌고 가던 경비대원 한사람이 빨리 걸으라며 갑자기 선생의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그의 고개가 들리며 베드로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베드로가 그렇게 느낀 것이리라.

그는 선생의 시선에 자기가 안 보이기를 바랐다.

비겁한 겁쟁이 베드로, 배신자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베드로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나왔다.

해가 뜨려는지 동쪽 하늘이 벌겋게 물들며 선생의 행렬을 어둠에서 조금씩 보여주고 있었다.

 

 

빌라도 총독은 안토니아 탑과 연결된 궁전에 있었다.

예전에 헤롯대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지은 화려한 거처였다.

사형수 예수를 앞세운 가야바가 궁전 정문 앞에 서서 빌라도 총독을 즉시 만나야 한다고 보초에게 말했다.

산헤드린 의원 여러 명과 재판을 목격했던 원로들, 그리고 서기관들이 따라왔다.

유월절이라 가야바 일행은 이방인의 거처에 들어갈 수 없었다.

자칫 부정을 타게 되면 유월절 음식을 못 먹고 축제를 즐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총독도 그것을 알고 있으니 곧 정문으로 나올 것이다.

빌라도는 조금 전 일어나 목욕탕에서 향유로 몸을 씻고 면도를 새파랗게 한 얼굴에 향수를 뿌렸다.

그의 귀에 아침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탑의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죄수 한 명을 포박해 끌고 온 가야바가 면담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는 이 광신적이고 한심한 유대인들이 새벽부터 몰려든 모습에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상대를 안 해주기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모였고, 가야바의 체면을 봐서라도 그럴 수 없었다.

유월절 기간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잠시 후 빌라도가 붉은색 망토를 걸치고 호위병들과 함께 정문에 나타났다.

대제사장님, 이렇게 일찍 무슨 일입니까?”

그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사형수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 사람은 나사렛에서 온 예수인데 선량한 시민들을 선동하여 성전에서 환전상과 상인들의 기물을 파손했습니다.”

그건 유대인의 율법대로 처리해야지요.”

빌라도가 건성으로 대답하며 앞에 묶여 있는 죄인을 슬쩍 보았다.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본 성싶었는데, 매우 지치고 마른 얼굴에 눈이 쑥 들어간 불쌍한 중년 남자였다.

가야바는 빌라도 총독이 이렇게 말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자는 카이사르에게 바치는 세금을 온전히 인정치 않고 스스로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라 주장합니다.”

빌라도가 그제서야 예수를 향하여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빌라도의 질문에는 조롱기가 묻어 있었다.

그렇소. 하지만 내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총독은 이 말을 듣고 자기의 예측이 맞았다고 생각하며 고개까지 끄덕였다.

유대인들끼리 하나님 놀이를 하면서,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을 죽이려 하는 것이다.

여기에 공연히 끼고 싶지 않았다.

나사렛에서 왔다면 갈릴리 지역 아니오.

마침 그쪽을 다스리는 헤롯 안티파스 왕께서 지금 예루살렘에 계시니, 그분께 보내어 심문을 하도록 하시지요.”

, . 알겠습니다.”

가야바는 헤롯왕이 세례요한을 박해하고 죽인 것을 생각하고 일단 순순히 그러기로 했다.

또 예수에 대해 헤롯왕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도 언뜻 났다.

그렇게 이 세상에 없는 왕국의 왕은, 이 세상에 있는 유대의 왕 헤롯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State
  • 현재 접속자 13 명
  • 오늘 방문자 227 명
  • 어제 방문자 445 명
  • 최대 방문자 832 명
  • 전체 방문자 218,739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