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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30 화 ★ 니케아 공의회 비망록

wy 0 201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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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이지신’ 이라는 말은 동양 고전에 나오는 말이지만, 과거를 돌아보며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격언은 기독교의 역사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문익진은 AD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있었던 일과 그 후 전개 된 상황을 21C 광장에 간단히 올리기로 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니케아 공의회 그리고 아리우스, 아타나시우스 등의 이름은 기독교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익숙하다. 

 

약 1700년 전 니케아 공의회에서 황제의 권위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 발표 했으나 논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후 60년간 계속되는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의 새로운 싸움의 시작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얼마 후 마음을 바꾸어서 반대파 즉 ‘예수님이 하나님은 아니다’ 쪽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성부, 성자, 성령이 한 하나님이라고 믿는 삼위일체는 기독교 교리의 근본이고 이것은 가톨릭, 동방정교, 개신교의 공통된 믿음이다. 

 

이슬람은 이 교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시작하는데 하나님은 아버지가 없으니 아들도 없고 기독교는 일신교가 아니라 다신교라 비판한다.

 

기독교의 뿌리 깊은 논쟁은 ‘성부와 성자가 본질상 완전히 같으냐, 그렇지는 않으냐’ 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치열하게 싸운 사람은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인데 먼저 아리우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필요하다. 

 

그는 250년경 리비아에서 태어나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해 기독교 사제가 되었다. 

 

아리우스는 당시 저명한 신학자이자 인기 있는 설교가였는데 그의 사상 체계의 근본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초월성이었다. 

 

따라서 아버지가 아들을 창조했으며 아들은 피조물이며 시작이 있고 하나님만이 시초와 기원이 없다고 주장했다.

 

즉 아들을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진정한 하나님은 아니고, 만물이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 같이 아들 역시 아버지의 본질 및 속성과 동일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요컨대 아들은 모든 다른 피조물을 무한히 초월한 존재지만 본질상 하나님은 아니란 주장이다. 

 

여기에 대해 평생을 투쟁하며 반대한 사람이 아타나시우스였다.

 

그는 296년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그의 스승 알렉산더 감독과 함께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몰아내는 데 앞장 섰다. 

 

그러나 곧 상황이 역전되어 감독직에서 축출되고 다섯 차례에 걸쳐 16년의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아타나시우스는 신학자라기보다 신실한 목회자였다. 

 

그의 최대 관심은 인간의 구원이었고 이를 위해 말씀이 인간이 되었고 죽으셨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가 보기에 아리우스는 구원의 확실성이 약했다.

 

아들이 하나님과 본질상 동일하지 않다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불가능하고,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며 지혜이며 능력이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둘이지만 그 신성의 단일성은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이다’ 라고 주장했다.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정면 충돌은 320년경 알렉산더 감독이 교회 회의를 소집하여 아리우스를 정죄함으로 시작되었다.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알렉산더 감독은 이집트와 리비아 감독들의 동의를 얻어 아리우스를 알렉산드리아에서 추방해 버렸고 당시 20대 중반의 아타나시우스가 그를 도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지지하는 감독들에게 편지를 보내 반격을 시작했다. 

 

두 파의 싸움이 치열해지자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종교 문제 자문관인 호시우스를 보내 두 파의 화해를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황제는 325년 니케아에서 감독들의 총회를 소집하게 된다. 

 

이 것이 3백여명의 감독들이 참석한 역사상 최초의 세계적인 교회 회의였다. 

 

이 회의의 최대 쟁점은 그리스도 성자의 본질이 성부 하나님과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여기서 황제의 종교 고문이었던 호시우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했고, 그가 알렉산더 감독을 만난 후 황제에게 보고한 비망록이 남아 있다.

 

“폐하, 지금 로마제국 시민들은 그들이 믿는 예수가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주장보다는 하나님이라고 믿음으로써 구원 받고 위로 받고 싶어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결정이 폐하의 위상과도 직결됩니다.”

 

호시우스는 이미 아타나시우스 편에 서기로 마음을 굳혔으며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 세상에는 동등한 위치의 주님이 두 분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 주님은 바로 로마 제국의 황제이시고 또 한 주님은 종교계를 대표하는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지금 열리는 종교 회의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위상이 하나님과 같아지면 황제 폐하께서도 신의 반열에 같이 오르시게 됩니다.”

 

귀를 기울여 듣고 있는 황제에게 호시우스의 말이 계속되었다.

 

“또한 이미 기독교가 공인되었으니 보이지 않는 종교의 끈으로 로마제국을 하나로 묶으려면 훌륭한 인간 예수보다는 하나님 예수가 한층 더 강력할 것입니다.”

 

황제가 아리우스파의 주장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들의 주장은 만약 아들인 그리스도 예수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라면, 기독교가 다신교가 되는 것이고, 예수에게 나타난 위대한 인간성이 신성으로 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호시우스의 설명을 들은 황제는 예수를 신과 동격으로 결정했다.  

 

다분히 정치적인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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