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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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64화 ★ 나비 쫓아다니는 아리스토텔레스

wy 0 2022.03.23

루브리아의 눈은 지난번과 별 변동이 없었다.

 

시력도 비슷하게 보였고 시야도 좁아지지 않았다.

 

탈레스 선생은 루브리아에게 지난번 말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 돌아왔을 때 플라톤의 아카데미에 플라톤은 없었어요.

 

시실리아의 수도 시라쿠스의 젊은 총독에게 초대받아, 학문을 가르치러 막 떠났지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아카데미와 경쟁 관계였던 이소크라테스의 아카데미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 학교의 지나친 정치적 성향의 교육방침이 싫어서 1년 만에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플라톤은 없지만, 그의 학교로 들어옵니다.

 

이후 그는 18년간 플라톤 아카데미에 머물게 되는데,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오고 2년 후에 시실리아에서 돌아옵니다.”

 

. 드디어 두 위대한 철학자들이 만나게 되는군요.”

 

그렇지요.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20살의 청년이었지만 논리학이나 자연과학에서는 스승에 못지않았지요.

 

이후 몇 년간 플라톤의 아카데미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릴 때 친구 필립 2세가 마케도니아에서 권력을 잡자 그를 방문합니다.

 

이때 필립 왕의 아들인 알렉산더가 태어났는데, 왕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남긴 말이 재미있습니다.

 

<친구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내게 아들이 태어났단다.

 

나는 신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내게 아들을 주어서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내 아들을 태어나게 해주었기 때문이지.

 

내 아들이 자네에게 배우면 앞으로 나보다 더 큰 일을 많이 할 테니까.>

 

, 필립 왕도 대단하네요.”

 

, 그렇습니다. 이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씁니다.

 

그중 제5정의에 관하여에서 이소크라테스를 비판하는데, 당시 80세인 이소크라테스는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지요.”

 

역시 이소크라테스 학파의 정치 지향적인 학문을 비판했겠지요?”

 

, 그렇습니다. 그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사상에서도 어느 정도 갈라져 나가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이루기 시작합니다.

 

플라톤은 관념을 모든 진실의 기반으로 여기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을 중시하고 자연을 중시해서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물리학과 생물학이 바탕이 됩니다.”

 

, 그런 차이가 있군요. 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이런 질문을 할 때 루브리아의 눈은 반짝였으며 전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 그는 해 볼만한 정부의 형태를 군주제, 귀족정치, 공화정으로 구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개인의 이익이 전체의 이익보다 앞서면 이 형태들은 전제정치, 과두정치, 민주정치로 각각 바뀌며 이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지요.

 

플라톤도 여론에 의한 민주정치에 대해 비판적이었지요?”

 

,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슷하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절대 이상사회를 꿈꾸기보다 최선의 체제는 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용기를 무모함과 비겁함의 중간으로 규정하지요.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서 플라톤이 80세로 세상을 떠납니다.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후계자로 지명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플라톤의 조카였지요.

 

37세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장소를 떠나 고향으로 가서 어릴 때 친구들과 같이 아카데미를 열게 됩니다.”

 

루브리아가 물을 한 모금 마셨고 탈레스의 말이 계속 되었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에서 가르치기도 했지만, 자유롭게 여행을 하면서 식물학과 동물학에 대한 엄청난 연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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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섬에서는 2년간이나 체류하면서 조류 135, 해양생물 105종을 조사했습니다.

 

또 이 섬에서 사는 특이한 나비를 잡으러 열심히 쫓아다니느라 별명이 나비 쫓는 사람이라고도 불렸답니다.”

 

그분이 정신없이 나비를 쫓아다니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네요.”

 

, 아마 가끔 넘어지기도 했겠지요.

 

얼마 후 필립 왕이 당시 13살이던 자기 아들 알렉산더의 선생을 널리 찾고 있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많은 사람이 지원하는데 당시 93살이던 이소크라테스도 그중 한사람이었지요.”

 

, 그분도 대단하시군요.”

 

, 필립 왕이 자기 아들이 태어났을 때 말한 대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선정합니다.

 

그는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친구의 요청을 수락하지요.

 

선택에서 탈락한 많은 후보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아첨꾼 취급합니다.

 

디오게네스는 자기가 저녁 식사를 하고 싶을 때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필립 왕이 하랄 때 한다.’라고 사람들이 비난했다고 합니다.

 

.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난을 위한 비난은 비슷한 것 같네요.”

 

루브리아가 미소를 지며 말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당시 40살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에게 지식의 기초를 가르치고, 그를 위해 청소년기의 수면, 호흡에 관한 책도 씁니다.

 

3년 후 필립 왕이 아테네를 공격하러 떠나며 16살인 알렉산더를 왕의 섭정으로 임명합니다.

 

그러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생의 자리를 내놓고 떠나게 됩니다.”

 

, 그럼 실제로 알렉산더를 가르친 건 얼마 안 되는군요.”

 

. 이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남쪽에 큰 아카데미를 열고 강의를 하며 동시에 여러 책을 집필합니다.”

 

, 그분의 종교관은 어땠나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의 섭리는 우주 전체적으로 있다고 생각했고, 개개인을 위한 개별적인 신은 인정치 않았습니다.

 

또 영혼은 인간에게만 있는데 그 영혼의 궁극적 목적은, 지식을 통해 능동적 지성과 결합하는 것이고, 능동적 지성을 영혼의 모임으로 보고 신격화했지요.”

 

, 또 좀 어려워지는군요.

 

여하튼 의사인 탈레스 선생님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안 받으실 수가 없었겠네요.”

 

.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플라톤 선생도 좋아합니다.”

 

오늘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예수 선생님 기억하시지요?”

 

그럼요, 곧 여기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렇게 알았었는데 예루살렘으로 바로 가셨대요.

 

그래서 한번 가서 만나볼까 하는데 여행이 별 무리는 없겠지요?”

 

, 좀 걱정은 되네요.”

 

, 그래도 가서 효과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혹시 아버지가 물어보시면 괜찮다고 말씀 좀 해주세요.

 

그런데 제 눈과 같은 증상의 사람이 완쾌된 경우가 별로 없나요?”

 

, 쉽지 않습니다. 현상 유지만 되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루브리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서 세운 학당 리케이온에서 행복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그의 아들인 니코마코스가 정리한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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