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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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동 달빛 2 : 해맑은 꽃내음을 한 사발 마시고나니 물 젖은 눈가에 달빛이 내려앉는구나.

wy 0 2020.02.16

고운동 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번은 아우랑 함께 지리산에 올랐다가 삼신봉에서 고운동으로 간 적이 있었다. 대충 두 시간이면 갈 것 같아서 물도 다 마셔버렸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산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산죽이 얼마나 자랐는지 내 등산화를 휘어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길은 몇 년 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덫에 걸려 죽은 멧돼지도 보았고 산죽에 점령당한 죽은 길도 보았다

 

그때 알았다.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길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일곱 시간 정도 헤맨 끝에 고운동에 도착했다. 탈진 상태가 된 나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믿었던 사랑을 찾아왔는데 이별을 통보받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 꿈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나타나 지친 나에게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 아름다운 곡조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사라져버렸다. 너무나 아쉬워 머리를 쥐어짰지만 그 음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아쉬운 얼굴로 부스스 일어나는데 머리맡에 삐뚤빼뚤 그려진 악보가 있는 것이었다. 잠결에 긁적거려 놓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산신령이 간밤에 노래를 던져 놓고 간 거라고 믿었다

 

비록 네 마디만 던져 주었지만 나는 그걸 귀한 보물이라 여겨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력이 받쳐 주질 못해 2년을 보내고 나서야 노래를 완성할 수 있었다.

노래를 발표했지만 알리는 방법이 없었다. 방송이라도 타야 고운동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그게 뜻대로 되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운동의 신음 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들어 고운동으로 향했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겨울의 찬바람이 가슴을 할퀴고 들풀의 울음소리가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날따라 달이 어찌나 크고 밝은지 너무 황홀하여 눈물이 다 맺혔다. 왠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달빛은 그동안 내가 보았던 고운동 달빛 가운데 가장 슬픈 달빛이었다

 

참고 참다가 터진 눈물처럼 달도 슬픔이 차올라서 눈물을 쏟는 거라고 생각했다. 달은 알고 있었다. 고운동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을. 그래서 고운동의 운명을 지켜보며 날마다 눈물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저기에 빨간 깃발이 꽂혀있고 산을 파헤친 흔적이 보였다. 쓰러진 나무들이 보이고 신음하는 계곡물 소리도 들렸다

 

내 몸 한 부분이 잘려나간 것처럼 괴로웠다. 그리고 이 나라가 원망스러웠다. 산은 얼마나 아팠을까? 뒤늦게 노래를 완성하긴 했지만 나는 나의 느림을 원망했다. 하지만 내가 조금 일찍 노래를 만들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새는 일찌감치 떠났고 꽃들은 향기를 잃었거늘.

도대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다 양수댐을 만들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굴까

 

그리고 뭐가 두려워서 백성들 몰래 산을 파헤친 걸까? 전기가 부족하면 아껴 쓰면 될 일, 후손들에게 댐을 물려주는 것이 옳은지, 마음의 고향을 물려주는 것이 옳은지 그런 것도 모른단 말인가? 어떤 나라는 가난하게 살면서도 자연을 지키는데 우리나라는 잘 사는 것도 아니면서 자연을 파괴한다

 

나는 정말 우리나라 전기 사정에 대해서 알고 싶다. 왜 부족한지 말이다. 부족한데도 마구 쓰는 백성들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아껴 써야 한다는 교육을 하지 못한 나라가 잘못된 것인가

물도 그렇다. 물 부족이라면서 물을 마구 쓰는 백성들은 무엇이고 방관하는 나라는 무엇인가.

 

촘촘하게 자란 나무는 솎아주고 가지치기도 해 주고 그렇게 여럿이 함께 잘살도록 가꿔야 하는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때려 부수고 꾸미려고만 하니 누가 죽고 누가 사는 것인가? 결국 우리의 본모습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그렇게 사라졌다. 달은 날마다 뜨고 지는 거지만 달의 하루는 날마다 같지 않다

 

어떤 날은 슬픈 얼굴로 어떤 날은 기쁜 얼굴로 또 어떤 날은 피곤하여 구름 속에 숨어 지내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피곤한 달도 고운동 마을을 지날 때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빛을 뿜어대고 심지어는 잠자는 들풀을 깨워 온 산을 들풀의 향기로 물들게 하였다. 고운동은 그런 곳이었다.

 

오늘도 달은 고운동을 지나가겠지만 예전처럼 웃는 일도 없고 눈물 흘리는 일도 없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고운동을 지나간다. 우리는 그렇게 고향 하나를 잃어버렸다. 양수댐 만드는데 오천 억 들었다고? 그 돈의 수백 배를 쏟아 부어도 사라진 우리들의 고향, 고운동은 되살릴 수 없다.

 

대통령은 백성들을 보호해야 하는 머슴일 뿐, 왕도 아니고 왕인 척해서도 아니 된다. 백성이란 무엇이냐? 이 나라의 강도 백성이고 산도 백성이고 바람과 공기도 백성이다. 그리고 이 나라에 내리는 비와 눈도 백성이고 나무와 물고기와 짐승도 백성이다

이 가운데 사람은 맨 마지막 백성이니 다른 백성들을 먼저 위하고 사람은 그 다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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