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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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107화 ★ 우리 시대의 성자

wy 0 2019.12.07

 

 

두 달 후 방주의 1심 재판 결과가 무죄로 나왔다.

 

키스를 했다는 자수서를 제출한 것이 오히려 재판에 도움이 되었다.

 

요즈음 #미투 열풍이 불고 있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자정능력을 회복하는 바람직한 캠페인이지만 옥석을 구분해야 한다는 판결문이었다.

 

검찰도 항소를 하지 않았고 방주가 구속 되었던 43일간 하루에 10만원씩 430만원을 국가에서 보상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신장로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축하를 해주었다.

 

신방주목사가 그런 짓을 했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며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찬양했다.

 

하루에 10만원이면 썩 좋은 대우는 아니지만, 숙식을 제공 받고 그만하면 괜찮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

 

방주는 예상 밖의 좋은 결과에 안도하면서도 교회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법정 구속은 안되더라도 집행 유예나 벌금이 나와서 유죄가 되면 자연스럽게 교회를 떠나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기독교 신문에서 방주의 무죄 선고를 비교적 크게 다루었다.

 

방주가 고전 음악감상실 ‘필하모니’에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어려서부터 생각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거나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음악을 듣는 습관이 있었다.

 

얼굴을 아는 DJ에게 ‘푸르트뱅글러’ 지휘, 베를린심포니의 연주로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신청했다.

 

작년 여름 선희와 베로나에서 만나던 날 서준과 여기서 먼저 잠깐 만났던 기억이 났다.


‘성경에 예수님 할아버지 이름이 다르다’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던 그의 얼굴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처음부터 가슴을 때리는 팀파니 소리가 천천히 울리며 푸르트벵글러의 브람스 1번이 흐르기 시작했다. 

 

대중 가요도 그렇지만 음악은 느리게 연주하기가 더 어렵다. 

 

자칫 잘못하다가 음악이 처지고 맥이 없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찬란한 카라얀보다 푸르트벵글러의 천천히 연주하는 브람스가 더 경이롭다.

 

브람스가 처음 구상을 시작하여 20여년 후에 완성한 교향곡 1번은 베토벤10번이라는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보다 더 직선적으로 터지듯, 휘몰아치는 운명의 물결을 저만치 떨어져 관조하는 브람스의 1악장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서준의 모습이 보였다.

 

방주가 손을 들었고 서준이 다가와 앞자리에 앉았다.

 

“이 음악 듣고 있을 지 알았어.”

 

언젠가 서준에게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 해주었다.

 

머리가 복잡하고 고민이 많을 때, 자신보다 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 브람스의 음악에는 자신을 푸근히 품어주는 감동의 깊이가 있었다

 

“바쁜 사람 나오라고 했네.”

 

“천만에, 무죄 판결을 축하 해 줘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방주가 대답대신 입가에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신목사님, 한가지 물어볼게. 목사로서 남녀의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서준의 질문에 방주의 속눈썹이 바쁘게 몇 번 깜박거렸다.

 

“남녀간의 사랑은 지순한 신앙과 맥이 통하겠지.

 

인간의 지극한 사랑을 파고 들면 결국 종교적 단계에 도달하지 않을까..

 

사랑을 할 때 가장 순수해지고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니까…

 

예수님도 그런 경험이 있으셨겠지.”

 

“예수님은 결혼을 안 하셨잖아?”

 

“그건 확실히 알 수는 없어.

 

당시 신체 건강한 랍비는 나이가 20살이 넘으면 대부분 결혼을 했지.

 

물론 그 분의 결혼에 대해 성경에 아무 기록이 없어서 결혼을 안 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야.

 

만일 예수님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당시의 관습상 오히려 성경에 언급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럼 어느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인이라고 생각하나?”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지.

 

성경에 베드로가 제자들 중 맨 앞에 있듯이, 막달라 마리아가 여성들 중 맨 앞에 기록되고, 십자가 처형 때나 무덤에 찾아 갈 때도 막달라 마리아가 제일 앞장 섰었네.

 

막달라 마리아는 처음 갈릴리부터 유대 지방까지 시녀처럼 예수를 따라 다녔는데, 당시의 유대지방의 관습으로는 결혼하지 않은 여인이 남자와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

 

하지만 그녀가 부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물론 없네.“

 

“어느 신학자는 예수님이 동성애자였다는 주장도 했지?”

 

“맞아.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였지.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가 남자라는 주장인데, 이런 퀴어 신학은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도 동성애로, 또한 백부장과 하인의 관계도 동성애로 보고 있네.

 

당시에 그리스나 로마에 동성애가 상당히 성행했던 것은 사실이지.”

 

서준이 곧 바로 질문했다.


“성경 어딘가에 동성애자를 죽이라는 말이 있지? “


“레위기에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라는 말이 나오네.”


“성경을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는 사람들도 이런 지시를 따를 수는 없겠지.”


“물론이지. 요즘은 동성애자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축제를 벌리는 세상인데..

 

레위기도 오래 전 문서지만 그렇다고 동성애를 지지할 수는 없겠지.”

 

브람스 1번의 4악장이 시작되면서 이윽고 구원과 평안을 암시하는듯한 멜로디가 나오기 시작했다.

 

신비한  flute독주로 시작하여 부드러운 첼로 합주로 이어지는, 작은 거인 브람스가 찾은 자유와 기쁨의 향연이다.

 

방주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시대의 성자(聖者)는 어떤 분들일까…


어쩌면 자기 자신의 종교에서 출발하여 다른 종교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다시 새로운 안목으로 자신의 종교를 이해하는 분들이 아닐까.

 

이를 테면 종교를 넘나들며 이해하고 실천하는 인도의 간디나 한국의 다석 유영모선생 같은 분들이겠지.   

 

즉 통종교(通宗敎)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시대의 영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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