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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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97 화 ★ 결혼 행진곡

wy 0 2019.11.02

 

 광장처럼 넒은 한누리 교회 입구에는 수요예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었다.

 

강남 고급 아파트 중심에 위치한 교회로서 신도들도 대부분 부유층이고 저명 인사도 많았다.

 

교회 건물은 세운지 10년도 안되었는데 교인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본당을 새로 짓기 위해 근처 부지를 매입하고 대대적인 건축헌금을 하고 있었다.

 

준기가 교회 정문에 도착하여 사방을 조심스레 둘러보며 서 있은 지 5분쯤 지나자, 키가 크고 선글라스를 낀 젊은 여성이 다가와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손준기씨, 저를 따라오세요.”

 

그녀가 교회 안으로 먼저 들어갔고 사람들 틈에 섞여 서너 사람 뒤로 준기가 따라 들어갔다.

 

고딕식 건물로 천정이 높은데다 화려한 스테인 글래스에서 길게 새어 들어 오는 저녁 햇빛이 중세 가톨릭 성당처럼 엄숙한 느낌이었다.

 

중앙 설교대 뒤에 있는 대형 파이프 오르간에서 귀에 익은 찬송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준기가 어려서 열심히 불렀던 ‘만세 반석’이라는 찬송이었다.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게 효험 되어서 정결하게 하소서. 

빈손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

 

준기가 속으로 찬송을 부르며 선글라스를 따라 교회의 뒷문으로 나왔다.

 

골목길에 대기하고 있던 선탠이 되어 있는 링컨 콘티넨탈이 미끄러지듯 다가왔고 준기를 먼저 뒷좌석에 태웠다.

 

운전석에는 청와대 경호원같이 생긴 건장한 청년이 준기를 백미러로 잠시 바라보았다.

 

적막이 흘렀고 서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자동차가 성수대교를 지나 장충단 공원을 돌아서 남산 순환도로로 향했다.

 

화사한 봄을 알리며 활짝 피고 있는 진달래 색깔을 보고 싶어서 자동차 유리창을 내리고 싶었으나 작동이 되지 않았다.

 

잠시 후 남산 중턱에 파란 유리 성처럼 버티고 서있는 H호텔이 보이자, 자동차가 경사가 심한 골목길로 내려갔다.

 

이태원으로 향하는 구불거리는 길을 몇 번 돌더니 평범해 보이는 2층집 차고로 슬며시 들어가며 문이 닫혔다.

 

검은 양복을 입은 젊은이 두 명이 양쪽에서 차문을 열었고 선글라스 여성이 준기의 핸드폰을 압수한 후 집안으로 들여 보냈다.

 

피아노 소리가 은은히 들리는 현관을 지나니 널찍한 거실에는 김승태 변호사와 선희가 음악을 들으며 소파에서 와인을 마시다가 준기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목한 가족 모임처럼 느껴졌다.

 

“네가 준기로구나. 못 본지 10년이 넘었지.

 

길거리에서 보면 못 알아 보겠네.”

 

김변호사가 점잖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 자리를 권했다.

 

“선희를 납치한 이유가 뭔가예? “  준기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납치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오랜만에 남매가 같이 모였는데. “

 

그의 말이 끝나자 옆에 앉은 선희가 거들었다.

 

“큰 오빠 말씀이 맞아. 내가 자진해서 온 거야.”

 

“큰 오빠라니,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사람을... “

 

김승태가 재미있다는 듯이 와인 잔을 오른 손으로 들고 씩 웃었다.

 

벽 한쪽으로 고급 양주를 진열 해 놓은 장식장이 있었고,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이 차렷 자세로 그 앞에 서 있는 것이 비로서 눈에 띠었다.

 

준기의 눈길을 의식했는지 승태가 검은 양복에게 나가라고 가볍게 손짓을 했다.

 

“우리 준기는 와인보다 양주를 좋아할 것 같아. “

 

누런 도자기 로얄 살루트 한 병을 승태가 바에서 직접 가지고 와서 한 잔씩 따랐다.

 

“자 오랜 만에 만난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단숨에 잔을 비운 승태와 준기의 눈동자가 마주쳤고 승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준기야, 내가 질문하나 할게 맞혀봐라.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니 아니면 동정녀 마리아가 낳은 하나님의 아들이니?”

 

얼른 대답을 못하는 준기를 보며 승태가 계속 이어나갔다.

 

“유대인들이 기다린 사람은 다윗의 자손인데 알고 보니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 그것도 외아들로 밝혀졌다.

 

설령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다윗 왕의 핏줄이라 해도 요셉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너도 김영중의원의 피가 있다 해도 오늘 날까지 이 가정을 키우고 지켜온 내가 이 집안의 외아들이란 말이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거칠어졌다.

 

“예수님이 재림 하셨는데 누가 와서 ‘당신은 다윗의 핏줄이 아니니까, 구세주도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오. 

 

다시 그냥 하늘로 올라가시오’ 하면 얼마나 억울하시겠니?”

 

김승태의 얼굴이 분노로 벌개지면서 눈에는 눈물이 약간 고였다.

 

손등으로 눈을 슬쩍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장식장에 놓여있는 CD플레이어의 음악을 바꾸었다.

 

귀에 익은 결혼행진곡이 생뚱맞게 울려 나왔다.


-바 밤바 밤~ 바 밤바 밤~ 바 밤바 바 밤바 바 밤바 밤~

 

“누가 만든 곡인지도 모르고 수많은 신부들이 이 곡에 맞추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입장하지.

 

바로 히틀러가 존경한 독일의 위대한 작곡가 바그너의 작품이야.

 

바그너3.jpg

 

그의 비극적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결혼 행진곡인데 나는 이 곡을 들으면 눈물이 나.

 

여주인공 '엘자'가 죽음으로 끝나는 결말을 모르고 신부들이 이 곡에 맞춰 행진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가장 숭고한 사랑은 결국 죽음으로 끝나야 하는 거야.

 

알겠니 준기야?”


“박은하가 만든 결혼행진곡, 나도 알아요.”

 

“박은하가 아니라 바그너, '리하르트 바그너' 란다. 준기야.

 

흠, 만약 2차 대전에서 독일이 이겼으면 세계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유대인 6백만을 학살한 인종 청소는 지구의 인류를 좀 더 우수한 품종으로 바꿔야 한다는 히틀러의 진화 휴머니즘에 근거했어요.

 

당시 독일의 많은 기독교인이 지지 했던 것처럼, 나는 언젠가는 그의 생각이 재평가 받는 날이 올거라 생각해.

 

아무튼 우리 선희는 어제 밤에 이 곡에 맞추어 예행 연습을 아주 잘 했단다.

 

아, 그 전에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지.

 

준기 네가 성경에 나와있는 휴거를 믿고 뱀을 들어올리는 능력이 있다며?"

 

김승태가 갑자기 깔깔거렸고 그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난 선희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었는데 얼마 전 시사 잡지에서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지.

 

심히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했더군.

 

그때 계시처럼 떠오른 생각은, 예수님이 다윗 왕의 자손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나도 선희와 결혼하면 아무도 나의 정통성을 부인 할 수 없다는 거였어.

 

어때? 네가 생각해도 그럴듯한 발상이지?

 

나는 피가 안 섞였으니까. “

 

“당신은 자신을 예수님이라 생각하는군요.”

 

“그건 확실치 않지만 첫 날밤에 선희가 향유를 내 발에 붓고, 그녀의 긴 머리로 닦아줄 거야.

 

느닷없이 핏줄이라고 나타난 것들에게 재산을 뺏기는 것이 십자가에 달리는 고통보다 힘든 것은 알고 있겠지?”

 

“당신은 예수님이 아니라 로마 병정의 사생아요! “

 

손준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두 명이 즉시 거실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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