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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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7화 ★ 사랑의 징계

wy 0 2018.12.15

 

 

거의 10년 만에 보는 방주의 아버지 신종일 장로는 흰 머리만 조금 늘었고 얼굴은 그대로였다.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길고 가는 눈, 갸름한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매가 아직도 강인한 느낌을 주었다.

 

요즘 70세 이하 할머니는 걸그룹에서 스카웃 할 정도로 젊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듯 싶었다.

 

새로 선출 된 장로와 대화를 끝낸 신장로에게 다가가 인사를 한 후 경찰서에서 방주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신장로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어떤 남자가 오늘 아침 전화를 했는데 방주 건으로 합의를 하려면 5천만원을 내일 오후까지 준비하라고 했네."

 

“전화 한 남자가 누구라고 하던가요?”

 

“피해자의 친척 오빠라 하더군.” 신장로의 목소리가 덤덤하게 들렸다.

 

방주가 꽃뱀에게 물린 것이다. 

 

“그 놈을 잡으면 되겠네요. 어디 조용한데 가셔서 말씀을 좀 나누시까요?”

 

두 사람은 교회 건너편에 있는 죽 전문집으로 들어갔다.

 

전복죽 끓이는 고소한 냄새가 서준의 코를 자극했고, 자리에 앉자마자 까만 앞치마를 두른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아버님, 오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뵈었는데 하나도 안 변하셨습니다.”

 

신장로의 얼굴에서 가느다란 미소가 흘렀다.

 

“방주에게 얘기 들었네. 자네가 '주간시사' 기자가 되었다고…

 

교회는 어디 다른 곳을 다니고 있나?”

 

“아, 네. 요즈음은 기사 마감이 주일날일 때가 많아서 잘 못 나가고 있습니다.”

 

교회 이야기가 더 나오기 전에 서준이 얼른 궁금한 질문을 했다.

 

“그래서 그 놈에게 뭐라고 하셨나요?”

 

“내가 뭐라고 말 할 사이도 없이 전화를 끊더군.”

 

“내일 또 전화 오면 녹음을 해 놓으세요. 공갈 사기범으로 혼을 내줘야 합니다.”

 

죽 두 그릇을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들고 나와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고, 장조림과 깍두기도 따로따로  잔뜩 담아 내왔다.

 

신장로가 식사 기도를 꽤 오래 하셨고, 서준은 숟가락을 잡고 대기했다.

 

그의 눈이 떠지며 거의 동시에 두 개의 숟가락이 전복 죽을 향했다.

 

서준은 계란 노른자를 죽 속으로 반쯤 집어 넣어 깨뜨린 다음 휘휘 저었다.

 

두사람의 대화가 중단되었고 새로 들어온 손님들이 신장로를 알아보고 정중히 목례를 했다.

 

죽을 먹는 쩝쩝~ 소리와 깍두기를  먹는 춥춥~ 소리가 양쪽에서 들렸다.

 

그릇을 반쯤 비운 후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서준이 말했다.

 

“요즘은 교회 음악에 드럼, 전자 기타, 신시사이저같은 악기까지 동원 돼서 제가 어릴 때 하던 성가대의 음악과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장로님이 입가를 종이 내프킨으로 닦은 후 입을 열었다.

 

“그게 요즘의 추세라니 어쩌겠나...

 

나도 처음에는 반대했는데 안 그러면 젊은이들이 교회에 오지를 않는다네.”

 

“옛날 독일 교회에서 처음으로 오르간 반주를 할 때도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악기 소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리니까 오직 인간의 목소리만 순순하게 드려야 한다고 했지요.”

 

신장로가 숟가락으로 장조림 국물을 떠서 전복죽 위에 부었다.

 

“그래도 지금처럼 너무 자극적인 음악은 젊은 세대인 저도 듣기가 좀 그렇습니다.

 

예전에 부르던 그 좋은 찬송가는 거의 안 부르고, 노래하기 쉬운 복음성가만 부르는 교회도 많은데 이러다 찬송가는 교회 박물관에서 볼까 걱정입니다.”

 

그의 말이 기특한 듯  신장로가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서준도 얼른 남은 그릇을 비우고 디저트로 수정과를 시켰다.

 

잠시 후 종업원이 죽그릇을 치웠고 서준이 본론으로 들어가 사태의 심각성을 언급했다.

 

성 폭행은 무조건 구속이고 피해자가 합의를 안 할 경우 적어도 2-3년의 실형을 받으며 가석방도 없다는 말에 신장로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렇다고 돈을 주고 합의하는 것은 범행을 시인하는 꼴이 될 뿐 아니라 상대방이 약속을 안 지키고 계속 더 많은 요구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속히 고소 당사자인 오선희를 만나 그녀를 설득 해 보겠다는 말에 신장로가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서준에게 내밀었다.

 

오선희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데 장로님이 아침에 일찍 교회에 나와 알아 본 것이다.

 

주소는 마포구 공덕동 롯데 캐슬 부근이였다.

 

“아침 10시쯤 이 번호로 내가 전화를 걸어봤네. 


메세지만 남기라고 하더군. 물론 아무 말도 안 했지.”

 

서준이 핸드폰을 꺼내 즉시 걸었다.

 

'메세지를 남겨 주세요' 하는 소리와 함께 삐- 소리가 났다.

 

“오선희씨. 나는 방주, 아니 신목사의 친구 최서준이라고 합니다.

 

신목사 문제로 급히 만나고 싶은데 이 메시지를 듣는 대로 연락 좀 바로 주세요. 부탁합니다.”

 

서준이 자신의 번호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조금 기다렸다가 연락이 안 오면 집으로 찾아가 보겠습니다.”

 

고등학생 같은 여종업원이 계피가루가 듬뿍 담긴 자주색 수정과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이 수정과를 마신 후 신장로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자네가 이렇게 자기 일처럼 도와줘서 참 고맙네.

 

우리 신목사가 친구 한 사람은 좋은 사람을 두었구만”

 

“당연히 제가 도와야지요. 


지금은 서로 바쁘지만 신목사가 미국 유학 가기 전에는 일 주일에 한 두 번은 꼭 만났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방주 아버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미국 유학을 가지 말았어야 했어. 

 

자네 지금 방주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가?”

 

무슨 말씀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서준이 눈을 깜박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목사를 엄히 경고하고 계시는 걸세.

 

방주가 유학을 가서 잘못 배운 진보적 신학 때문에 귀국한 후 많이 흔들렸지.

 

최근까지도 아슬아슬했어.  Y대학 강사도 곧 그만두게 될 거야.

 

우리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용기를 내야 하네.

 

그러니 자네도 이번 일을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리하지도 말게…

 

오래 전 유대민족을 벌 하셔서 회개하도록 하신 것처럼 이번에 신목사를 사랑으로 징계하셨는데 또 하나님이 때가 되면 모두 회복시켜 주시고 더 좋은 것으로 주실 걸세.”

 

장로님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여유 있었다.

 

서준이 무어라 할 말을 찾고 있는데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부르르 울렸다.

 

“네. 최서준입니다”

 

“야, 최서준, 너 지금 미쳤냐?  어디서 뭐하고 자빠져 있는거야 !

 

편집부와 미술부에서 ‘벤허’기사 안 넘긴다고 난리야 난리. 

3시까지 안 넘기면 기사 빠진다.”

 

문화부 데스크 이영숙차장의 화가 잔뜩 난 목소리를 앞에 앉은 신장로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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