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같이 잡혀 온 열성당원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들도 사형을 면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몇 명쯤 되나요?”
“열 명은 넘을 겁니다.”
바라바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그들에게는 아마 교수형을 선언할 텐데 감형은 가능할 겁니다.
궁금하면 내가 간수에게 알아보라고 부탁할까요?”
“네.... 저의 사형 집행은 수요일까지는 안 할 테니까 그들도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지는 않겠지요?”
“그럼요. 빌라도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요.
적어도 유월절 기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감형이 되면 무기 징역이 되나요?”
“네, 무기 징역이 되었다가 손을 잘 쓰면 몇 년 안에 또 형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5년은 최소한 있어야 나올 수 있습니다.”
“아, 5년도 말이 5년이지 짧은 기간은 아니네요.”
“그럼요. 20대 초반의 한참 나이에 큰 타격이지요.”
“그래도 60대 초반보다는 낫지요.”
이삭이 끼어들었다.
“네, 일생에 한 번 맞는 매라면 초반에 맞는 게 물론 낫겠지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짧게 있는 것보다 좀 오래 있는 편이 좋은 면도 있어요.”
“어째서요?”
요남이 얼른 물었다.
“글쎄, 자기 위안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의 삶이라도 보람있게 지내려면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해야겠지.
그런데 반년 정도의 짧은 형을 받고 들어온 사람은 그날부터 하루하루를 마치 없애야 할 원수인 양 달력에서 지워나가기 시작하네.
이 안의 힘든 삶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생각 외에는 머리 속에 없어.”
“네, 저도 예전에 3달 형을 받았었는데 그날부터 달력에 하루하루 엑스자를 그려 지워나갔지요.
처음에는 자기 전에 지웠는데 차차 점심 먹고 지우고 나중에는 일어나자마자 지웠어요. 헤헤.”
“그래, 그렇게 지우면 그날들이 그야말로 네 삶에서 없어지는 거야.
수명이 3달 단축되었다고나 할까….
반면에 2~3년 있게 되면 사람들이 여기서 해야 할 일을 계획하며 하루를 보람있게 보내려 하더군.”
“아니, 요남아. 너 여기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니?”
살몬의 질문에 요남이 태연히 대답했다.
“네, 여기는 이번이 처음 맞아요.
예전에 다른 곳에는 있었지요.
그래도 저는 3달 형과 2년 형 중 고르라면 당연히 3달 형을 택하겠어요.”
“그래, 그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니….
그래서 하나님은 발로 사랑을 하신다는 말이 있는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운명이나 고난을 하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는 거지.
사자가 새끼들을 교육할 때 강하게 키우기 위해 언덕에서 발로 쳐서 굴러 떨어지게 하는 그런 사랑이지.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발로 한다는, 모든 고난은 내 정신을 깨우기 위한 하늘의 선물로 생각하는 거다.”
요남이 갑자기 허리를 비틀며 몸을 좌우로 크게 움직였다.
“지금 하나님의 발을 피하는 연습하는 거예요.
저는 그런 선물 받고 싶지 않습니다.”
“요남아, 네가 하나님의 발을 피하면 피할수록 나중에 더 크게 얻어 맞는다.”
살몬이 얼른 군밤을 한 대 때리며 말했다.
“손으로 맞는 것도 싫어요.”
요남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사라는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어제 종일 새벽부터 마차를 타서 피곤도 했지만, 미사엘 님과 누보를 만나 깃발을 곧 가져갈 수 있으리란 생각에 긴장이 좀 풀린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흐린 것이 비가 올 것 같았다.
역시 갈릴리 지역이 예루살렘보다 비가 자주 와서 나무나 풀들이 파릇파릇하고 생기가 있었다.
일주일 정도 비워 놓은 집이지만, 그새 여기저기 먼지가 쌓였다.
간단히 청소하느라 아버지가 주무시던 방에 들어간 그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반갑게 맞아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사라 잘 잤니?’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아버지는 사라를 부를 때 그냥 사라라고 하지 않고 꼭 ‘우리 사라’라고 하셨다.
나이가 먹어 철이 좀 들면서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알기 시작했다.
집안 정리를 좀 하고 사라는 요셉 아저씨를 만나러 집을 나섰다.
앞문으로 돌아가니 얼마 전에 본, 얼굴을 검은 수건으로 가린 나병 환자 모녀가 있었다.
사라를 본 어머니의 눈동자가 반가움에 반짝였다.
수건에 가린 나머지 얼굴이 웃고 있는 듯했는데, 갑자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다가가서 한 마디 인사라도 할까 하다가 발길을 돌렸다.
나중에 과일이라도 건네주며 하는 것이 나을 듯했다.
가게로 들어서니 요셉 아저씨가 혼자 조각상들을 정리하고 계셨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
“아니, 사라 아니니? 바라바도 같이 왔니?”
“아니요. 오빠는 일이 아직 덜 끝나서 며칠 있다 올 거예요.”
“음, 그렇구나. 내가 심부름시킨 일은 잘 했는지 모르겠네.”
“네, 잘 했겠지요.”
“그러지 않아도 지금 이 작은 비너스 상을 보면서 바라바를 생각하고 있었다.”
“정교하고 아름답네요. 누구 작품이지요?”
“4백 년 전 그리스 조각가 리시푸스의 작품인데 지난번에도 하나 어렵게 구했는데 바라바가 누구에게 팔았다.
이번에는 웬만하면 그냥 보관하려 한다. 바라바 엄마가 참 좋아하던 조각가라….”
요셉 아저씨의 눈에 습기가 어렸다.
“아, 그러시군요…. 아저씨 건강은 좋으시지요?”
“이제 예전 같지는 않네.
근데 네 눈이 좀 빨갛구나. 어디 아프니?”
사라가 음식을 잘 못 먹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설명을 했다.
“그렇구나. 근데 잘못하다가 오해받기 쉽겠다.
갈릴리에서는 빨간 눈 귀신 들었다고 사람들이 피할 수 있다.”
사라는 집 앞문에 있던 나병 환자가 그래서 당황했던 것을 그제야 알고 웃음이 나왔다.
“왜 웃니?”
“아니에요. 다른 생각이 좀 나서요.”
“우리 바라바는 건강히 잘 있지?”
“네, 잘 있어요.”
사라가 억지로 밝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