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겜의 누보네 집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세벨 부교주를 만나서 큰 헌금까지 했으나 별 성과는 없었다.
나오미의 행방은 묘연했고 미리암을 찾아올 좋은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카잔은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것이 초조했고 온통 미리암 생각뿐이었다.
그녀의 귀여운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며 그냥 이세벨을 만나 모든 것을 알리고 당장 미리암을 데려오고 싶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미리암의 가정교사 사벳이 들어왔다.
누보가 사벳에게 황금 성배에 대해 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그녀는 늘 침착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누보와 카잔을 도왔다.
“어제저녁 황금 성배를 드디어 가까이 볼 수 있었어요.
미리암을 가르치고 있는데 두 분 다 외출을 해서 몰래 침실에 들어가서 봤지요.”
누보와 카잔이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어요.
그냥 순금으로 만든 아기 머리만 한 성배인데 정면 중앙에 ‘모세의 성배’라는 글씨만 고대 히브리말로 쓰여 있었지요.
그래서 그냥 나오려다가 성배에 담그는 물로 청약수를 만든다는 생각이 문득 나서 그 안에 물을 부어 봤어요.
그랬더니 성배 바닥의 색깔이 변하면서 어떤 지도가 나타났어요.”
“무슨 지도인가요?”
누보가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사벳이 주머니에서 양피지를 꺼내 두 사람 앞에 펼쳐 보였다.
“제가 바닥에 보이는 지도를 그대로 그린 그림이에요.
그리는데 손이 떨려서 혼났네요.”
지도는 쿰란 지역을 그린 것이었다.
사막에 강이 흐른 자국인 ‘와디’가 길게 그려 있고 어느 산의 입구가 보이는데 거기서 끝나 있었다.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은 어느 산인지 알 것 같았다.
“황금 성배는 에세네파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쿰란 지역이 그려져 있군요.
사람들의 추측대로 이 산 어딘가에 그들의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예요.”
누보가 그의 생각을 말했다.
“음, 이 지도만 가지고는 이 산이 어느 산인지 알아도 보물을 찾기는 어려울 거야.
쿰란 지역은 언덕과 계곡 사이로 수많은 동굴이 널려 있어서 평생을 돌아다녀도 자세히는 다 못 볼 테니까….”
카잔이 누보의 희망적인 생각을 꺾어 놓았다.
“아, 나머지 지도만 있으면 보물을 찾고 열성단을 재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텐데….”
누보가 말을 하고 속으로 아차 하며 사벳의 눈치를 살폈다.
“저는 누보 님이 열성단원이라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녀가 싱글거리며 계속 말했다.
“처음 우리 집회에 참석하러 왔을 때 제가 몸수색을 했잖아요.
그때 열성단 패를 보았어요.”
“아, 그때 알았군요. 열성단 패를 본 적이 있나 봐요.”
“네, 실은 제 아빠가 열성단이셨어요.
가말라 유다 님 밑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시다가 안디옥에 주둔한 로마군단이 쳐내려오는 바람에….”
“아, 그렇군요. 그럼 전장에서….”
누보가 질문을 끝내지 못했다.
“네, 세포리스 지역의 열성단이셨는데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었지요. 항복한 열성단을 거의 다 처형했는데 십자가 2천 개를 세웠어요.
그중 한 개에 달려 돌아가신 것 같은데 시신을 확인하지는 못했지요.”
사벳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곧 카잔이 입을 열었다.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네요.
당시 갈릴리의 가말라 지역에서 열성단이 일어나 세포리스같이 큰 도시도 접수하고 그 기세가 대단했지요.
유대 지역에 주둔한 로마군만으로는 그들을 제압할 수 없었어요.
만약 시리아 총독 바루스의 로마군단 이만 명이 내려오지 않았으면 마키비 장군처럼 가말라 유다가 독립을 이룬 장군이 되었을 거예요.
티베리우스 황제가 로마에 반역해 열성단과 협조한 세포리스 주민들도 모두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려서 그렇게 십자가에 많이….”
사벳이 얼른 눈가에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말했다.
“누보 님의 열성단 패를 보고 속으로 반가웠어요.
열성단의 본부가 있는 갈릴리에서 오셨으니까 뭔가 중요한 임무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저는 미트라 교인이지만 열성단과는 협조를 하고 싶어요.”
“아! 그래서 처음부터 우리 일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셨군요.”
누보가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표한 후 자기의 임무는 사마리아 지역의 열성단을 재건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사벳이 감탄의 눈길을 그에게 보냈다.
신이 난 누보가 지난번 왔던 바라바 님이 앞으로 전국 열성단의 당수가 될 거고 갈릴리 지역은 열성단의 세력이 이미 크게 확장되고 있다는 설명을 더 해주었다.
“앞으로 우리 미트라교의 방위군과 열성단이 협력하면 사마리아를 로마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거예요.
황금 성배의 나머지 지도가 어디 있을지 제가 계속 찾아볼게요.”
“지금 미트라교 방위군이 몇 명이나 되지요?”
카잔이 물었다.
“조직적으로 훈련받은 인원이 천 명이고 앞으로 두 배로 늘릴 계획입니다.
이번에 누보 님이 주신 헌금으로 백 명은 곧 더 보충될 거예요.”
“음, 그 정도로는 유대경비대와 로마군이 쳐들어오면 막기가 어려울 텐데….”
이른 시일 내에 적어도 3~4천 명은 확보해야 할 거예요.”
“네, 카잔 형님, 지금 요남과 여로암이 은밀히 열성단으로 모은 인원이 약 백 명은 되니까 이 추세라면 앞으로 반년 안에 2천 명은 확보될 겁니다.”
“그래도 좀 부족해요. 지금 유대 땅에 주둔한 로마군이 내가 알기로는 약 오 천명이고 성전 경비대가 약 이천인데 그중 반만 연합군으로 만들어도 삼천은 넘을 거야. 그것도 반년 안에는 쳐들어오지 않아야지.”
“그 안에는 뭐 괜찮겠지요.
연합군을 만들어 움직이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니까요.”
“음, 그건 그렇지만….”
카잔의 목소리가 계속 무거웠다.
“만약 그 안에 위급한 일이 있으면 갈릴리의 나발에게 지원을 받아야지요.
적어도 5백 명 정도는 즉시 도와 줄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리고 카잔 님께 말씀드릴 일이 하나 있어요.”
사벳이 화제를 돌렸다,
“요즘 미리암이 좀 달라졌어요.”
“왜요? 어디가 아픈가요?”
카잔이 급하게 물었다,
“그건 아닌 것 같고… 자기 눈 색깔이 왜 부모와 다른지 궁금해해요.”
“지금 알면 상처받을 텐데….”
“오히려 잘된 것 아닌가요? 어차피 알아야 할 일인데….”
카잔의 마음이 걱정과 흥분으로 흔들리며 요동했다,
“다녀왔습니다”
유리가 양손에 시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중앙시장에서 싱싱한 채소와 소고기 많이 사 왔어요.”
유리는 요즘 신부 수업으로 요리를 엄마에게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