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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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249화 ★ 죽든지 살든지

wy 0 2023.12.31

 바라바는 사형이 내일이라도 집행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자신의 몸과 마음이 싸늘히 가라앉아 사그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희망에 부풀어 곧 풀려난 후 로마에 가려고 한 자신이 우스꽝스러웠다.

 

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두 자신의 탓이었다.

 

처음부터 열성당을 만들 때 위험을 각오하고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번에 사라를 구하기 위해 재판장에 온 것도, 그래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것도 온전히 본인의 판단이고 책임이었다.

 

물론 일이 이렇게까지 될지는 몰랐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건 우연히 일어난 일이건 지금의 상황은 바뀔 수 없다.

 

루브리아가 왕비에게 자신의 구명운동을 하겠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앞둔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는가? 또는 해야 하는가

 

십자가형을 받을 텐데, 그러면 피를 많이 흘려 죽거나 늘어지는 몸통을 지탱하지 못하고 숨이 막혀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루브리아에게, 그리고 아버지께 유서라도 남겨야 하는가?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었다.

 

바라바는 며칠 전 올리브 산 텐트에서 본 밤하늘의 별이 떠올랐다.

 

그 별빛 사이에서 바라바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인자하게 웃으시며 항상 바라바를 지극히 사랑하신 어머니.

 

지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으나 저세상에서는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른다.

 

아니, 유일한 가능성이 있는 곳은 오직 저세상뿐이다

 

벽에 걸린 횃불의 석청이 또 거의 떨어진 듯, 불꽃 네 개 중 한 개가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 한 개의 불꽃이 이방에 있는 네 사람중 한 사람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아직은 5050이니까 절망하지는 말아요.”

 

이삭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라바가 대답이 없자 그가 계속 말했다.

 

나도 처음에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는 특별 사면될 가능성이 별로 없었소. 

 

그 후 니고데모 의원이 프로클라 여사에게 탄원서를 계속 제출해서 사형집행을 면했지만, 그 한 달간은 참 힘들었어요.

 

거의 잠을 못 자고 면회 온 사람이 나를 못 알아볼 정도로 말랐으니까.”

 

, 그러셨군요.”

 

바라바의 쉰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밖에서 발걸음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뛰고 그 소리가 문밖을 지나가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간혹 문이 덜컥 열리면 심장이 마비되는 듯했지요.

 

도저히 마음을 내가 안정시킬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모든 생명이 살고 싶어 하는데 인간인 나도 그랬지요.

 

그전에는 나이가 많아 움직이기 힘들거나 병이 깊어서 고통이 심한 사람들을 보면, 저러고 사느니 죽는 게 나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 사람들도 고통을 면하고는 싶지만 죽기는 싫은 거예요.”

 

이삭이 숨을 한 번 고른 후 계속 말했다.

 

그전에는 나도 내 의지나 생각이 제법 강하다고 생각했었소. 

 

하지만 사람이 얼마나 약하고 깨지기 쉬운 접시 같은지 그때 알았지.

 

죽음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그동안의 나 자신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어요.

 

철학이나 예술도 생명이 위태로울 때는 모두 지푸라기가 돼 버려요.

 

그때 하나님께 매달렸지요.

 

아니 그 방법 외에는 없었소. 

 

살려 달라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그랬더니요?”

 

바라바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오히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게 되더군요.

 

죽든지 살든지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는 그 전에 생각 못 한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속에 생겨났어요.”

 

죽든지 살든지요?”

 

, 나를 데려가시는 것도 나를 살리시는 것도, 그분께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뜻이 있을 테니까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항복이랄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잠자코 듣고 있던 요남이 끼어들었다.

 

그건 사형을 면해 지금 살아계시니까 할 수 있는 소리예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승자의 여유로운 자기변명일 수도 있고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먹지 못하고 제때 치료를 못 받아서 죽어가는데요.

 

그 사람들이 언제 하나님을 찾고 그런 순종하는 마음이 생기겠어요

 

배가 항상 고파서 그런 생각이 날 수가 없어요.

 

저는 카멜 수용소의 실상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나 뜻 같은 게 있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아요.”

 

요남이 의외로 이삭의 말을 강하게 반박했다.

 

, 자네의 말이 이해가 되네

 

솔직히 나도 대답할 말이 없어

 

왜 그런 일이 있는지 모른다고 할 수밖에

 

모른다고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억울한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가지요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믿으시면 바꾸도록 해야지요.”

 

벽에 붙은 횃불이 요남의 얼굴 그림자를 크게 흔들며 지나갔다.

 

오로지 힘으로만 할 수 있어요.

 

겉으로는 하나님이니 율법이니 뭐니 많이 따지는 사람들이 속으로는 힘과 돈에 더 약해요

 

저도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회당에 열심히 다녔어요.

 

제 지정석이 있어서 자릿세도 매년 꼬박꼬박 냈고요

 

제가 보기엔 우리 어머니처럼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못 봤어요

 

그런 분이 어떻게 수용소에서 그렇게.”

 

요남의 목소리가 떨리며 중단되는 듯하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런데 얼마 전 산헤드린 일반특사로 나간 가야바의 친구 타원은 겨드랑이에 율법서 두루마리를 끼워 들고 감옥 복도를 유유히 걸어 나가더군요.”

 

, 나도 보았어.”

 

살몬이 거들었다.

 

타원이 여기 2년 반 동안 있으면서 얼마나 율법서에 감명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마치 그만이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표시같이 보였어요.

 

수많은 죄수가, 또 그의 가족들이 같은 율법서를 묵상하며 간절히 특사를 기원했지만, 하나님은 오직 예루살렘에서 손꼽히는 부자만 풀어주시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고 기도의 응답이 나타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나쁘거나, 터무니없는 위선자들이에요.”

 

모두 아무 말이 없자 요남이 바라바에게 시선을 돌렸다.

 

죄송해요. 바라바 님이 지금 너무 힘드신데 제 말만 했네요.”

 

아니야. 충분히 무슨 말인지 알겠어

 

만약 내가 생명이 연장된다면 카멜 수용소에 꼭 같이 가 보고 싶네.”

 

그 말을 하고 보니 바라바는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듯싶었다.

 

요남 바라바 collage.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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