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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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275화 ★ 추가 고발

wy 0 2024.03.31

 성전 뜰에는 12시를 기해 대규모 도살이 집행되고 있었다.

어린 양과 염소들의 울음 소리가 온 성전에 끊임없이 울렸고, 그들의 피 냄새가 여기저기서 코를 찔렀다.

몰려드는 순례객으로 잔뜩 쌓인 제물들의 목에서는 피가 계속 떨어졌다.

제사장들은 그 피를 큰 그릇에 담은 뒤, 제단에 뿌리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부터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잠을 별로 못 잔 가야바는 피곤했지만 쉴 수가 없었다.

그의 귀에는 합창단의 찬미가도 시끄럽게 들렸다.

좀 쉬었다가 나중에 하라고 하세요.”

성전 의식을 진행하는 하얀 머리의 제사장에게 지시했다.

노래 소리가 멈추자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봄이라 변덕이 심했지만 바람도 불고 때아닌 비가 쏟아질 성싶었다.

대제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마나헴이 성전을 한 바퀴 돌고 와서 가야바에게 말했다.

, 또 누가 문제를 일으키나요?”

아닙니다. 이방인의 뜰에서 모든 일이 질서정연하게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제물 판매 수익이나 환전 매출이 작년보다 훨씬 많을 듯합니다.”

듣기 좋은 말에 가야바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실은 제가 고향에 집안일이 좀 있어서 모레쯤 잠깐 다녀올까 합니다.”

, 그래요. 여러 가지로 수고 많았어요.

이제 돌아오면 정식으로 성전 경비대장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대제사장님.

그리고 이번에 나사렛 예수는 잘 처리되었는데 느닷없이 바라바가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냥 놔두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가야바 마나헴 collage.png

, 총독이 특사를 했는데 막는 방법이 있나요?”

내일 풀려나기 전에 다시 다른 건으로 고발하면 됩니다.”

추가 고발을 하자는 말인데, 무슨 건으로?”

대단한 죄목을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제 부하가 목을 심하게 다쳤는데 바라바가 한 것으로 하면 일 년은 더 감방에 가둘 수 있습니다.”

증인이 있나요?”

,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야바가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 그런데 유월절 기간에는 고발을 못하게 되어 있는데.”

, 그러니까 오늘 해 떨어지기 전에 제가 고발 서류를 제출하겠습니다.

지난 번 재판 때 보셨듯이 그 놈은 풀려나면 아주 위험합니다.”

대제사장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한낮인데도 날은 계속 어두웠고 찬미가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헤로디아는 총독 관저에서 빌라도의 부인 프로클라와 마주 앉아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가 부탁하기도 전에 바라바가 오늘 아침에 특별사면을 받은 덕분에, 젊은 여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고를 덜하게 되었다.

루브리아에게도 체면이 섰고, 바라바를 로마에 다녀와서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은근히 가슴이 뜨거워지며 하얀 포도주가 술술 잘 넘어갔다.

얼굴이 검은 해방 노예가 볶은 계란을 은 식기에 가득 담아 왔다.

양파를 조금 섞은 계란이었고, 작은 그릇에 캐비아가 따로 담겨 왔는데, 같이 먹으니 술안주로 그만이었다.

페르시아에서 나오는 캐비아는 수입 금지 품목이었지만, 워낙 로마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탓에 은밀히 유통되고 있었다.

한 가지 기분이 안 좋은 것은 아무리 꾸미고 노력을 해도, 프로클라의 젊음에서 뿜어 나오는 아름다움을 따라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오늘따라 조금 우울해 보이긴 했지만, 남자들은 그런 것도 매력으로 생각할 것이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해요

서신에 왕비님에 대한 말씀을 안 써서 그 부분을 추가하려고요.”

서신을 받아 든 프로클라는 붉은 춧농 봉인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뜯고는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가 자신이 쓴 부분을 읽었다.

<추신: 이 서신을 전하는 분은 헤로디아 왕비님이십니다. 제가 유대 땅에 있으면서 여러모로 신세를 많이 지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이렇게 칼리굴라 각하에게 소개 말씀도 해주시고.”

헤로디아의 목소리가 상냥했다.

천만에요. 어려운 서신을 전달해 주시는데 제가 감사하지요.

언제 떠나실 예정이신가요?” 

프로클라가 계란을 한 입 먹으며 물었다.

내일 오전에 출발하려 합니다

그래서 얼굴도 뵐 겸 직접 왔어요

카프리 섬에 먼저 가서 황제 폐하께 인사드리고 로마에 갈 예정이에요.

폐하께서 제가 어려서부터 예뻐해 주셨는데 안 들르면 섭섭해 하실 거예요. 호호

이 정도 말했으면 황제 폐하께 빌라도 총독에 대해 잘 말씀드려 달라고 한마디 할 만도 한데 프로클라의 얼굴은 계속 침울했고, 다른 근심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오늘따라 안색이 좀 어두우신데.”

, 실은 오늘 아침에 유대인 한 사람이 십자가 처형을 당했는데, 그 사람이 좀 마음에 걸려요.”

그녀의 하얀 피부가 투명해 보였다.

나사렛 예수 말이군요

, 그 사람이 꿈에도 나타났다고 하셨지요?”

, 제가 말씀 드렸지요

그리심 산에 나타나서 총독께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어요

꿈 얘기도 할 겸 꼭 한 번 꼭 만나고 싶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헤로디아가 픽 나오는 웃음을 삼켰다.

제가 이른 아침에 궁으로 잡혀 온 그 사람을 만났는데, 전혀 신경을 안 쓰셔도 되요.

헤롯왕께서도 처음에는 소문을 듣고 조금 걱정하셨는데, 만나본 후에는 안심하셨어요.”

프로클라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볶은 계란을 한 수저 떠서 입으로 가져왔다.

그가 세례요한의 환생이라거나 엘리사의 환생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다 허무맹랑한 소리예요.

초라한 모습에 그리심 산까지 갈 힘도 없이 보였어요. 호호.”

이 말을 하고 보니 슬며시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각났다.

아까 헤롯왕이, 묶여 있던 예수에게 하늘에 구름을 불러와 보라고 했었는데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진 것이다.

혹시 그의 기도는 몇 시간 후에 효과가 나오는 걸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벌써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프로클라가 입을 열었다.

캐비아와 같이 먹으니 계란 맛이 참 좋네요.

기름도 올리브유를 쓴 것 같아요.

여기 감람산에 게세마네라는 곳이 올리브기름으로 유명하다는데 오신 김에 점심을 아주 드시고 가시지요.”

아니에요. 내일 떠날 준비를 하려면 좀 바쁠 것 같아요.

이 술만 다 마시고 일어나겠습니다.”

시녀가 칼리굴라에게 전달할 서신에 엄지손톱만 한 붉은 봉함 인장을 붙여서 다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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