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방에서는 일요일이 제일 힘들다.
30분 동안 햇볕을 보며 맘대로 떠들 수 있는 운동 시간이 없고 면회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면회시간 자체는 10분 밖에 안되지만 방에서 나가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면회하고 들어오는 시간이 모두 한 시간 정도 되는데 이 자체가 하나의 탈출구이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어서 편하다.
방에서는 모두 양반 다리를 하고 하루 종일 앉아 있는데 그러다 보니 한 달만 지나면 복숭아 뼈 한쪽이 시커멓게 된다.
대기실에서는 가장 뜨거운 뉴스를 들을 수 있고 다른 방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대화 할 수 있다.
감방에서 다른 방 사람들과 대화를 위해 큰 소리를 내는 것을 ‘통방’이라고 하는데 엄격히 금지되어있다.
수용자 3천 명을 3백 명도 채 안 되는 간수들이 통제 할 수 있는 것은 수용자들이 감방에 갇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의견이 통일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통방은 그래서 구치소 입장에서는 극히 위험한 일이다.
또 작은 쪽지를 소지들을 통하여 옆 방에 전달 해주는 것을 ‘비둘기 날린다’라고 하는데 적발되면 정식으로 경고 스티커를 받는다.
전달책인 소지도 물론 경고를 받는다.
경고 스티커는 3번 받을 수 있다.
처음 것은 따로 징벌이 없으나 두 번째 스티커를 받으면 분류 심사과에서 고과에 반영하고 세 번째는 조사 수용 되어 징벌방에 가서 1주일 이상 혼자 있어야 한다.
징벌방은 1평도 안 되는 방에서 신문, TV는 물론 없고 개인 사물도 쓸 수 없어서 겨울에 들어가면 담요 한 장으로 지내야 한다.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징벌위원회에 회부 될 경우 가석방 심사에 올라가지 못하니 수용자들로서는 치명적이다.
가석방은 정권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DJ 때 가석방이 제일 많았다.
아무래도 대통령 본인이 옥고를 많이 치루어서 그런 것 같다.
당시에는 대개 80%만 살면 가석방을 해 주었고 60%에 나가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형법에는 형기의 3분이 1이상이 되면 가석방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요즘은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 하자는 움직임이 있고 가석방의 폭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특히 박근혜 때는 80%로 나가는 일은 드물었고 90%가 넘어야 기대를 했다.
경제 사범 중 액수가 좀 큰 사람은 거의 만기 출소였다.
그녀는 대통령 특사를 두 번 하면서 모두 재벌 총수 한 사람씩 만 해 주었다.
몇 년 전 C회장이 교도소 정문을 나올 때 오른 팔에 성경책을 끼고 나오는 사진이 신문에 크게 실렸다.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1)역시 예수 믿으면 하나님이 특사를 해 주시네. 할렐루야 !
2)감방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매일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는데 역시 하나님도 재벌의 기도부터 들어주시네. ㅠㅠ
한 방에서 몸 싸움을 포함한 신체적 접촉이 생기면 한 명씩 모두 다른 방으로 뿔뿔이 헤쳐지는데 이 것을 방이 깨졌다고 하고 그 방은 다른 사람들로 채워진다.
한 번 싸움이 나면 계속 그 방에서 싸움이 일어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년 중 가장 힘든 때는 구정이나 추석이다.
4-5일을 하루 종일 붙어 앉아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좁은 방에서 불쾌 지수가 높아지며 싸움이 잘 일어난다.
싸움의 이유는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중요하다면 중요하다.
예컨대 TV 를 볼 때 소리가 왜 그렇게 크냐 작냐, 어느 프로를 보느냐 안 보느냐로 싸운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데 왜 그리 오래 앉아 있는냐, 왜 남의 비누나 샴푸를 쓰느냐로 싸운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는데 누가 위에 놓는냐. 왜 이불 개는데 먼지를 피우느냐고 싸운다.
또 어떤 사람은 방에서 팔굽혀 펴기를 무지 열심히 한다.
당연히 공간을 더 차지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심한 운동광은 화장실 문턱을 이용하여 방에서 턱걸이까지 한다.
방에서 운동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고 교도관에게 적발되면 경고를 받지만 운동광의 운동을 멈출 수 없다.
이런 방에서는 싸움이 나기 쉽다.
무혁이 신문을 보다가 방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신교수님. 여기 머리 볶은 까만 년이 누군데 사람들이 난리요?
여자가 죽었다고 신문에 이렇게 크게 난 건 처음 보네”
방주가 신문을 보니 남아프리카의 만델라 사진이 나와 있었다.
만델라가 흑인이라서 남녀 구별과 나이 구별이 잘 안 되었던 것이다.
“음, 이 사람은 남아프리카 대통령을 했던 ‘넬슨 만델라’라는 사람이네.”
“헉, 그럼 이 사람이 남자란 말이요?”
방주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근디 이 사람이 뭐 땜시 유명한가?”
“음,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민주화 투사지.
김구선생이나 이승만박사처럼 나라의 독립을 위해 평생 싸운 분이고 세계 인권 운동의 상징 같은 분이야.
아, 그리고 이 분이 감옥에 좀 오래 있었지.”
“호, 그럼 우리 선배님이시네. 몇 년이나 있었는가?”
“27년.”
“와! 쪼매 있었네. 대단한 분이시구만.”
만델라의 호칭이 ‘년’에서 ‘분’으로 즉각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