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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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37 화 ★ '사도신경' 아쉬움

wy 0 2019.04.05

 

빌라도1.jpg

 

문교수가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주위에 누가 있었을까? ”

 

“글쎄요.. 12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없었지요?”

 

“4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르네.

 

요한복음에만 제자들 중 요한이 있었고 4복음서 모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지.”

 

“아, 그럼 막달라 마리아가 쓴 건가요?”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녀와 관계가 있을 거야.

 

어쩌면 예수님의 수제자는 12제자 중 한 사람이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가 아닐까.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그녀가 맨 처음 보았으니까...”

 

서준도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배울 때 그렇게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네,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지려는데 ‘내 몸에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지요.

 

요한복음인가요?”

 

“맞아. 어렸을 때 교회에 열심히 다녔구만.ㅎㅎ

 

여하튼 새로운 형태의 사도신경이 나온다면 이것은 기독교 2천년 역사상 가장 엄청난 일이 될 거야.

 

지금 영국의 폴 로빈슨 교수님이 발굴 중이니까 나에게 곧 연락이 올 걸세.”

 

문교수가 서준의 생강차에 뜨거운 물을 조금 더 부어 주며 계속 말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사도신경은 아쉽게도 그 안에 예수님의 삶이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죽으시고’의 한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세상에서의 삶이 빠져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정말 나시고 바로 죽으셨네요.

 

예수님은 30년 이상 지구상에서 사셨는데.”

 

‘지구상’이란 말이 어쩐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사도신경은 3위일체가 최종 완성된 칼케돈 공의회(AD451)에서의 결론, 즉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모두 완벽하다’는 선포에도 부합되지 않지.

 

그래서 장로교의 칼빈 같은 대단한 분도 이 문제에 어느 정도 부담을 느낀 것 같아.”

 

서준이 손목시계를 보니 3시30분을 넘기고 있었다.

 

“내가 바쁜 사람에게 너무 이야기를 길게 하고 있구만.”

 

“아닙니다. 저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30분마다 시계를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오늘은 회사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퇴근할 거라 시간도 많습니다.”

 

“다행이네. 옛날 교회 주일학교 학생을 만나서 그런지 내가 말이 많아지는군.

 

칼빈은 ‘제네바 교리 문답’에서 사도신경이 예수님의 생애를 전혀 기록하지 않은 이유를 문답식으로 설명했다네.

 

<질문: 왜 사도신경에는 예수님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생애를 단숨에 뛰어 넘나요?”

 

대답: 여기에서는 다만 우리의 구원에 관련된 것만을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칼빈은 이 정도로 정리하고 말았지.”

 

생강차를 한 모금 마시고 서준이 평소에 궁금한 질문을 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처형하기 주저했다고 성경에 나오는데 여하튼 그의 이름이 사도신경에 나오니 대단한 인물이 되었어요.”

 

“나도 빌라도에 대한 설명을 좀 하려고 했는데 이심전심이군.

 

사도신경의 가장 큰 문제가 예수님의 생애가 통째로 빠져있는 것이라면 가장 큰 오역은 바로 빌라도 부분이네.

 

즉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의 원문 'sub Pontio Pilato'를 직역하면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라는 뜻이지.

 

라틴어 전치사 'sub'을 사람 이름 앞에 사용하면 그 사람 치세에, 그 사람 아래에서 라는 의미로 볼 수 있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라고 번역했지.

 

이 구절은 기독교 발전 과정 중 예수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반대파들의 주장에 맞서 “예수는 실존 인물이며 언제 십자가 수난을 받았는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구절이지.

 

누가 그를 죽였고 누구의 책임인지를 밝히는 구절이 아니라네.

 

이 부분은 한국 개신교가 잘 못 번역한 것이라 볼 수 있지.

 

라틴어 원문은 언제 그 일이 있었는지 시기를 말하고 있을 뿐인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로 번역하였기 때문이네..

 

심지어 2세기 무렵 중동의 일부 지역에서 사실은 빌라도는 좋은 사람이었다며, 빌라도와 빌라도의 아내까지 성인급으로 높이는 어이 없는 일도 있었지.

 

그러나 빌라도는 성경에서 처럼 유대인들에게 우유부단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무자비한 통치를 한 잔인한 사람이었네.

 

굳이 추측을 하자면 나자렛 예수를 이단자, 신성 모독자로 생각한 유태인들과, 선동의 소지가 있는 불온 분자를 없애려는 본디오 빌라도의 생각이 일치했을 가능성이 높겠지.

 

고사성어를 빌려 말하면 '줄탁동기'라고 할까..

 

말하자면 빌라도는 전혀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유태인들이 강압해서 된 것도 아니고, 반대로 유태인들은 전혀 바라지 않았는데 빌라도가 강압적으로 처형을 한 것도 아닐 거야.

 

하지만 만약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가 아니고 ‘유태인들에게 고난을 받으사’ 로 사도신경에 쓰였다면 더 엄청난 사건이 역사적으로 생길 수도 있었겠지.”

 

“그러면 개신교에서도 이 부분을 가톨릭처럼 바른 번역으로 고치면 되지 않나요?”

 

“그게 쉽지가 않아요. 잘 못 번역 된 사도신경이 오래 동안 익숙해진데다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는 교파도 다양하고 개별 교회들이 일심동체로 움직일 의무가 없으니까..

 

간혹 올바른 번역을 하자는 시도는 있었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네.

 

몇 년 전 사도신경 새 번역이 나왔지만 여기에서도 이 부분은 수정을 하지 못했지."

 

“그렇군요.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 부활 이후 역사적 행적이 있나요?”

 

“4복음서를 포함하여 복음서라는 이름으로 발견된 문서들이 단편적인 것들을 포함하여 모두 20개 정도 되는데 그 중에 ‘마리아복음서’ 가 있네.

 

AD100~150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녀가 직접 쓴 것은 아니겠지만 그녀의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 부활 이후 그녀는 ‘갈릴리 여인들과 함께 이집트로 갔다고 하네.”

 

“아, 이집트로요?  여하튼 새 사도신경을 받으시면 저에게 꼭 먼저 알려주세요.

 

제가 저희 잡지 표지에 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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