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은 주기자와 문화부 편집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주기자는 이름이 주기남이고 주간시사 5년차 기자인데, 입사 전 환경 운동가로 활동하다가 20일 동안 구속된 경력이 있었다.
문화부 데스크인 이영숙차장은 아직 회의실로 들어 오지 않았다.
주기자가 자신의 최신 핸드폰 화면을 서준의 얼굴에 들이 밀었다.
"이 얼굴 보기가 좀 민망하네. "
화면에는 박근혜가 재판정에 앉아 있는 얼굴 사진이 크게 나와 있었다.
화장기 없이 부은 눈, 흐릿한 눈동자는 돌아가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듯 초점이 없었고, 얼마 전 탄핵이 확정되어 사택으로 돌아 올 때 마치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대통령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과 너무 달랐다.
‘왜 그때 그렇게 활짝 웃었을까?’하는 생각을 하는데 주기자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박근혜가 발가락을 찧어서 아프다는 것은 사실일거야.
옛날에 지은 구치소는 화장실 문턱이 높아서 나도 발가락을 여러 번 부딪쳤어.
되게 아픈데 별거 아닌 것 같아서 말도 못 해."
면도 자욱이 구레나룻까지 이어진 퉁퉁한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주기자가 아픈 표정을 지었다.
방주도 지금 화장실 문턱에 발가락을 찧고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차장이 회의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주기자에게 물었다.
“주기남, 세계 77억 인구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믿는 종교가 뭘까?”
왜 또 나에게 묻느냐는 듯 주기남 기자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나는 종교 전문이 아니니까 최서준이가 답해라”
이차장이 한마디 하려다가 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슬람교가 제일 많지요”
“그래? 기독교가 아니고? “
이차장의 질문에 주기자가 킁~하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니, 이슬람교가 제일 많은 지가 언젠데 그래요?”
이차장의 눈이 위로 찢어지며 주기자를 쳐다봤다.
“이차장 말씀도 맞습니다.
기독교를 카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그리스정교까지 다 합치면 24억 정도로 단연 세계1위지요.
기독교라는 말이 개신교와 같은 뜻으로 쓰일 때가 많아서 늘 혼선이 있습니다. “
서준이 얼른 분위기를 무마하고 핸드폰을 보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제가 마침 세계 종교 분포에 대한 글을 쓰려고 자료를 좀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1위가 이슬람교로 약 17억인데 이중 수니파가 14억이고 2위가 가톨릭으로 12억인데 3위가 개신교가 아니고 힌두교입니다.”
“아니 그럴 리가 있나? 그건 나도 좀 이상한데?”
주기자가 동의를 구하는 듯 이차장을 쳐다보았고 서준의 말이 계속 되었다.
“이 통계는 2013년 통계인데 힌두교가 엄청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인도의 인구가 13억이 넘는데 그 중 80% 정도만 힌두교라고 봐도 간단히 10억이 넘지요.
개신교는 9억 5천만으로나옵니다.
이슬람의 급격한 확산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인구 팽창 때문입니다.
기독교 내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순위가 바뀐 것도 남미의 인구는 급격히 늘어나고, 유럽과 미국의 인구는 거의 정체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불교에 대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은데, 공산국가인 중국의 불교 인구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동남아 국가들을 합치면 5위가 될 것입니다.”
이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세계적으로 개신교보다 천주교 신자가 그렇게 더 많은지 몰랐네…
주기자도 최서준처럼 평소에 자기 분야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지."
주기자가 마른 침을 한 번 삼키고 무슨 말을 하려는데 이차장이 얼른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어제 국회 청문회에서 M후보자의 '창조과학'에 대한 믿음이 화제가 되었어.
창조과학은 성경에 나와있는 과학적 지식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인데, 대표적으로 이 세상은 BC4004년 10월 22일 만들어 졌다는 주장이지.
장관 후보자는 신앙적으로는 그것을 믿는다고 했어.
그렇다면 여성은 남성이 잠자는 사이 그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믿는 가 본 데 나는 여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생각치 않아.”
주기자가 서준을 바라보며 슬쩍 말했다.
“내가 일일이 손으로 확인은 안했지만 원래 남자의 갈비뼈가 여자보다 하나 적지 않은가?” .
이차장이 능청을 떠는 주기자의 말을 무시하고 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저도 그 뉴우스 보고 창조과학에 대해 좀 알아봤습니다.
지금은 그 발언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2백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지창조가 6천년 전이라고 믿고 있었지요.
종교와 과학이 거의 분리 되어 있지 않은 때였습니다. “
이차장이 고개를 끄덕였고 서준의 말이 계속 되었다.
“아일랜드 대주교 제임스 어셔가 1650년 당시 지구가 5654살이라는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부터 등장하는 인물들의 나이를 일일이 합산한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숫자였지요.
그렇게 역산해 보면 천지창조는 BC4004년 10월 22일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업적이였으나 이후 19세기 초에 지구의 나이와 천지창조의 시간이 획기적으로 길어지기 시작했지요.
결정적으로 미국의 과학자 패터슨이 1953년 운석의 나이를 우라늄으로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해, 지구의 나이가 약 45억년으로 밝혀졌고 이것이 현재 정설입니다.
앞으로 지구의 나이가 더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도 있고 다윈의 진화론도 누군가에게 깨질 수 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과학의 진보이고 인류 문화의 발전이지요.
달라이 라마는 신앙과 과학이 상충될 때는 서슴없이 과학을 택하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본인은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 평범한 수행승이라 했는데 그러한 열린 마음이 그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킵니다.”
이차장이 손뼉을 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문화부 데스크는 최서준이가 해야겠다.”
“아닙니다. 주선배가 계신데요.”
얼굴이 벌개진 주기자를 옆 눈으로 슬쩍 보며 이차장이 마무리를 했다.
“아니야, 주기자는 맛집 취재를 계속하는 것이 적성에 맞아.
창조과학을 신봉하는 그 장관 후보, 최기자가 만나서 인터뷰 하고 장관 말도 그대로 써 주면 멋진 기사가 되는 거야, 얄라차 !”
이차장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주기자가 목소리를 낮추어 서준에게 말했다.
“저 여자 갈비뼈가 나보다 한 개 더 많아서 제 정신이 아니네.
음, 우리 마나님도 잘 만져 보면 갈비뼈 숫자가 나보다 하나 더 많을지도 몰라”
문화부 데스크에 대한 언급으로 서준이 미안해 할까 봐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는 주기자가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