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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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24 화 ★ '부모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입었던 옷'

wy 0 2019.02.15

 

 

"누구세요?"

 

선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택배 왔는데예~."

 

경상도 사투리, 손준기 목소리였다.

 

그녀가 현관문을 활짝 열었고 서준의 입 안에 스파게티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들어온 사람은 건장한 체구의 청년이었고 손에 무슨 상자를 들고 있었다.


"6시 반까지 배달 하기로 했는데 늦으셨네요."


"죄송합니다. 오토바이가 고장 나서예~."

 

서준이 다시 어금니를 천천히 움직이면서 물컵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잠시 후 선희가 샐러드와 마늘 빵을 식탁 위에 올려 놓았다.


"스파게티 전에 드셔야 했는데... 

 

제가 시저 샐러드를 만들까 하다가 샐러드와 마늘빵을 주문했어요.

 

사실 샐러드 만들기가 어렵거든요."

 

소리 나지 않게 긴 한숨을 내쉬고 포크로 시저 샐러드를 푹 찍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앤초비 맛이 약간 강하게 났지만 싱싱한 레터스 잎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으세요?"


"아니,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서... 스파게티는 내가 먹어 본 것 중에 최고에요."

 

그녀가 환하게 웃을 때마다 생기는 보조개가 더욱 예뻐 보였다.

 

서준은 갑자기 식욕이 넘치면서 샐러드와 스파게티, 마늘 빵 4개까지 가볍게 해치워 버렸다.

 

선희도 말없이 그와 보조를 맞추며 열심히 먹었다.

 

방주 사건 없이 이런 식사를 선희와 하면서 디저트로 달콤하고 부드러운 치즈케익을 먹은 다음 자연스레 키스를 하는 순서가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났다. 

 

"이렇게 음식을 빨리 드실 지 몰랐어요. 

 

기자 분들은 직업상 식사를 오래 하기가 어려운가 봐요.

 

 금방 치우고 디저트 가지고 올게요. 치즈케이크요."


"내가 치우는 것 좀 도와줘야 하는데..."


"아니에요. 손님이신데요. 별로 치울 것도 없어요."

 

일어나려는 서준을 선희가 손짓으로 앉히며 얼른 접시를 들고 나갔다.

 

잠시 후 커피 끓이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그녀가 손바닥보다 조금 큰 동그란 치즈케이크를 식탁 위에 올려 놓았다.

 

이렇게 성의 있는 대접을 받을지 알았으면 좀 더 큰 것을 샀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빵 칼로 가운데를 잘라서 반을 또 4등분하여 선희가 먼저 시식했다.


"저는 식사보다 디저트가 더 맛있네요.

 

블루베리 토핑한 것도 좋은데 역시 치즈케이크 자체의 맛을 즐기려면 플레인 치즈케이크가 최고지요."

 

케이크 한 조각을 뚝딱 해치운 그녀가 먼저 방주 문제를 꺼냈다.


"신목사님과 처벌 불원서 문제는 상의해 보셨나요?”

 

그러지 않아도 슬슬 어려운 말을 꺼내려던 서준이 조심스레 방주의 생각을 전했다. 

 

처벌 불원서를 고소인의 착오로 써주면 좋겠다는 말에 그녀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방주는 무죄로 나와야하고 집행 유예만 되도 목사로서의 활동은 어렵기 때문에 그러한 서류가 필요하다는 설명과, 혹시 무고죄를 걱정한다면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그 부분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밀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주라고 말씀 하셨지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어디선가 '삐' 하는 소리가 들렸고 서준이 다시 긴장했다.

 

커피가 다 되었네요. 잠시만요."

 

역시 사건의 본질에 대한 문제가 걸려있는 한 선희를 설득하는 건 어려울 듯싶었다.

 

잠시 후 선희가 헤이즐넛 향내가 풍기는 커피 두 잔을 들고 왔다.


"엄마가 좋아하시던 커피에요. 원두를 두 봉지나 사셨는데 그 다음 날..."

 

그녀가 프림과 설탕을 듬뿍 탄 후 잘 저으며 계속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무심코 한 말이 제가 그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 유언이 될 수 있다는걸 알았어요.

 

그래서 되도록 말을 따스하게 하려고 해요.

 

엄마는 그날 새벽에 잠이 덜 깬 저에게 '금방 다녀 올게' 하고 나가셨지요."

 

나이보다 훨씬 성숙한 말을 하며 선희가 하얀 커피 잔을 입에 대었다.


" 선희씨 말이 맞아요. 

 

우리는 언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지 모르면서 살고 있지요.

 

부모님과의 이별은 더욱 가슴 아픈 일이고..


'부모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입었던 옷' 이라는 말이 있지요…"

 

서준이 한 모금 마신 커피는 생각보다 강하고 쌉쌀했다.


"최선생님 말씀대로 할게요.

 

준기 오빠는 무고로 맞고소를 걱정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요."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서준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 고마워요. 선희씨.. 어려운 결심을 해줘서."


"저는 신목사님이 저 때문에 목사님을 못 하시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제가 왼뺨을 한 번 더 맞아서 무죄로 나오신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요즘 교회 목사님들이 비난을 많이 받는 것 같은데 이런 일이 언론에라도 나거나 하면 더 안 좋겠지요."

 

“그럼요, 방주가 대단히 고마워 할거에요.

 

어려운 부탁을 하러 와서 이렇게 대접 만 받고 면목이 없네요.

 

나중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뭐든지 알려줘요.”

 

선희가 배시시 웃으며 얼른 그의 말을 받았다.

 

“나중이 아니고 지금 부탁 드릴 일이 있어요.ㅎㅎ”

 

서준이 커피잔을 들다가 얼른 테이블에 다시 놓았다.


"엄마가 한때는 은막의 스타였는데 불행한 사고를 당한 것을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어요.

 

최선생님이 문화부 기자로서 엄마에 대한 기사를 내 주셨으면 해요."

 

오늘의 식사 대접이 이런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서준은 마음이 놓이면서도 실망감으로 마음 한 구석이 싸해졌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해야지요.

 

엄마가 출연 하신 영화, 같이 연기한 배우들, 영화제에서 상 받으신 것 등 이런 자료들 모아서 주면 좋겠네요.

 

그리고 결혼 생활이나 뭐 그런 사생활 이야기도 있으면 더 재미있고.."

 

말을 하고 보니 기자 근성이 자신도 모르게 나왔지만, 이런 취재로 선희와 더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다소 위안이 되었다.

 

"네, 곧 자료 정리해서 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천만에, 내가 감사하지요. 선희 양은 효녀니까 복 많이 받을거에요."

 

서준이 치즈 케이크의 뾰쪽한 끝을 포크로 잘라서 입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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