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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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14 화 ★ 감방의 하루 일과

wy 0 2019.01.10

 

 목욕을 대강 끝내고 보니 주위에 몸을 닦을 수건이 없었다.

 

난감한 나머지 수건을 빌리려고 목욕탕 문을 조금 열자마자 그 사이로 노란 수건을 잡은 손이 쑥 들어왔다.

 

"이거 오늘 아침 빨은 수건인디 사장님 쓰시오.

 

여기는 호텔이 아닝께."

 

잠시 후 방주가 나오니 방에 TV가 켜 있었다.

 

조금 전 들어 올때는 눈에 띄지도 않았는데 요즘 감옥에 TV까지 있구나 생각하며 자신의 자리에 슬며시 기대 앉았다.

 

TV 에서는 요즘 한참 유행인 먹방 프로가 나오고 있었다.

 

이름이 꽤 알려진 퉁퉁한 남자 요리사가 탕수육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노란 튀김에 부글부글 끓는 고기가 화면 가득했다.

 

"대표님, 채널 돌리시오. 저런 거 보면 신경질 만 느는디..."

 

"그래도 '6시 내 고향' 보다는 이게 낫다."

 

무혁의 불만에 손철이 한마디 했다.

 

"지금 생방송으로 나오는 건가요?"

 

방주가 손철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후 3시에 ‘6시 내고향’이 나올리 없지. 

 

여기는 7시 뉴스 한 번 빼고는 모두 녹화 방송이요.

 

"채널이 몇 개 있나요?"

 

"일반 방송과 여성 방송 합해서 2개, 내용은 비슷하고 드라마는 같은 것을 2~3주 차이로 내보내지.

 

뉴스는 평일엔 KBS, 토요일엔 MBC, 일요일은 SBS인데 뉴스 생방송도 시작한 지 몇 달 안 되었소.

 

그의 말을 듣고 있던 김을수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10년전보다 지금은 살 만해.

 

그때는 교도관들이 가끔 폭행에다 반말지거리하고 신입 신고식도 세게 했지.

 

지금도 반말하는 옥졸은 가끔 있지만..."

 

‘옥졸’이란 말에 방주가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목에 긴 칼을 쓰고 앉아 있는 김갑수의 모습을 떠올리니 옛날 춘향이가 있는 감옥과 잘 어울렸다.

 

"신교수가 눈치 챘겠구만. 나는 이번이 두 번째요."

 

전에는 왜 들어 왔는지 물을까 하다가 그냥 고개 만 끄덕였다.

 

TV 에서는 군만두가 노릇하게 지져지는 화면이 나오고 있었고 모두 아무 말 없이 TV 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성 싶었다.

 

방안에 시계가 없어서 무혁에게 시간을 물었더니 손가락으로 벽 아래 한 쪽을 가리키는데 거기 손목시계 하나가 파란 플라스틱 집게에 걸려 있었다.

 

"4시에 TV 꺼지고 5시에 폐방 점검이오."

 

"인원 점검인가요?"

 

당연한 말을 물어본 것 같았다.

 

"그러지. 여기는 대가리 수 맞추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니께.

 

그동안 없어진 놈 없나, 아파서 누워 있는 놈 없나, 싸워서 다친 놈 없나.ㅎㅎ"

 

김을수가 애국가가 나오는 TV 를 손가락으로 눌러 끄며 방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 하루 일과는 아침 6시 반 아침 점검으로 시작하지.

 

우리는 6시에 일어나서 이불 개고 세면하는데 신교수 혹시 코 많이 고시나?"

 

"별로 안 곱니다."

 

세 사람의 얼굴이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다행이네. 그저께 나간 영감은 따발총도 쏘고 수류탄도 터뜨려서 나는 전쟁 영화 꿈 만 꾸었소.

 

 아침 배식이 6시 45분에 시작 되고 8시 또 한 번 점검."

 

"6시 반에 했는데 8시에 또 하나요?"

 

"8시는 일과 시작 점검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 ‘출력’하는 사람들은 이때 방에서 나가지."

 

"아, 그렇군요. 이 방은 출력 안 하나요?"

 

"우리는 미결수라 원하지 않으면 출력 안하지.

 

11시 반에 점심 배식, 5시에 폐방 점검, 5시 반에 저녁 배식, 9시에 취침. ㅎㅎ"

 

그의 웃음에 콧바람 소리가 섞여 나왔다.

 

"신교수, 우선 여기서 구입 할 물건들을 알려 줄테니 영치금이 들어 오는대로 구매하시오."

 

무혁이 얼른 방주에게 메모지와 검정 볼펜을 건네주었다.

 

"잘 때 까는 침랑, 수건 2장, 손목 시계, 내복, 운동화 이런 것들이 당장 필요하고 액수로 한 10만원이면 될 거요.

 

수용복은 관에서 지급하는 것 말고 좀 더 좋은 것을 사 입을 수 있는데 5만원.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해 미결수만 사 입을 수 있지."

 

방주의 시선이 세 사람이 입고 있는 똑 같은 누런 옷으로 향했다.

 

"춘추복까지는 괜찮은데 동복은 관에서 주는 것이 좀 얇아서 사복을 사 입는 사람도 많아요.

 

최순실이 입었던 연한 하늘색 옷이 바로 그건데 겨울 전에 나갈 거면 신경 쓸 거 없고..."

 

무혁이 옆에서 거들었다.

 

"신교수님이 언제 나갈지는 그 뭐냐, 성추행 사건을 쪼매 더 자세히 얘기 하시면 대표님께서 아주 정확히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오.

 

며칠 전에 나간 영감님도 구속 적부심에서 나간다더니 딱 그렇게 되아 부렀소.

 

요즘 성추행은 억울한 경우가 많은디... 혹시 상대방이 미성년자는 아닌가?"

 

무혁이 안경 너머로 호기심 많은 눈동자를 반짝였다.

 

어제 오후 경찰서 유치장으로 서준이 찾아 왔었다.

 

그 동안 선희를 만난 이야기를 하면서 며칠 내에 처벌 불원서를 받아 낼테니 감옥 구경 한다 생각하고 내일부터 2~3주만 고생하라며 위로해 주었다.

 

동창 중에 변호사 하는 친구와도 연락을 하고 있고 며칠 내에 구치소로 면회를 오겠다고 했다.

 

"상대가 대학생인데 만으로 20살이 넘었는지는 잘 몰라요.”

 

방주가 교회 이야기를 빼고 대강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음, 그럼 그 오빠라는 놈이 합의금을 요구 했을 것인디?"

 

"아버지께 요구했는데 주시지 않았지요."

 

"그건 잘 하셨소. 주기 시작하면 계속 당하니께. 본인이 결백한디 줄 수도 없고..."

 

무혁이 김을수에게 물었다.

 

"돈 준게 없으면 무고로 맞고소 하는 게 맞지라?"

 

김대표가 입술을 쑥 앞으로 내민 동작을 3-4초 유지하면서 큰 눈동자를 좌우를 몇 번 빠르게 굴린 후 입을 열었다.

 

"내가 사무장 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재판은 안 할 수록 좋은 거야.

 

일단 맞고소 한다고 위협하면서 고소를 취하 하도록 하거나 처벌 불원서를 쓰게 해야지.

 

가장 빨리 나가는 길은 구속 적부심 전에 합의서를 제출하는 건데 그래도 가능성은 50% 정도 밖에 안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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