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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9화 ★ 가톨릭의 놀라운 변신

wy 0 20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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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진교수가 예배당 강단에 올라 섰다가 “오늘은 도저히 설교를 못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하고 다시 내려온 것은 Y신학 대학의 탑뉴스였다.

 

그의 설교는 학생들뿐 아니라 Y 대학 인근에 사는 주민들도 많이 참석해서 예배당이 늘 꽉 찼다.

 

문교수는 무조건 믿으라는 말보다 신도들에게 신앙적인 질문을 통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해답을 찾는 설교를 했다.

 

기독교의 시대적 변천을 짚어 가며 지금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에게 예수님은 누구인지, 우리는 그를 어떻게 따를 수 있는 지가 그의 중심 질문이었다.

 

또 문교수는 - 이 세상에서 종교는 왜 이렇게 혼란스럽고 서로 대립하는 세력이 되었는가?

 

한편으로는 사랑과 평화를 그토록 부르짖고 가르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죽음과 파멸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인류에게 해결책은 있는가? - 라는 주제를 교양학부 학생들에게 첫 학기의 과제물로 주었다.

 

여기에 대한 교회의 대답은 이미 나와 있다.

 

기독교만이 참 종교이고 유일한 생명과 구원의 길이기 때문에 세상 끝까지 전도하여 모든 인류를 기독교인으로 만들면 해결 된다는 것이다.

 

문교수는 이런 식으로 설교를 할 수는 없었다.

 

2천년 전 세상 끝은 스페인이었고, 그들이 알던 우주의 지식과 유대의 역사를 바탕으로 정리한 기독교의 정체성은 이제 21세기 인간이 납득하고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럽이나 미국의 기독교 인구 감소는 회복 불능 상태인데 크고 아름다운 교회나 성당이 신도가 없어서 마켓이나 심지어 이슬람 사원으로 탈바꿈하는 곳도 허다하다.

 

아직 명맥을 유지하는 대도시 교회는 신도 수가 예전의 반도 안 되고 그나마 거의 70대 이상이다.

 

교회 행사 중 유아 세례나 결혼식은 자취를 감추었고 한 달이 멀다하고 까만 옷을 입고 참석하는 장례식이 대부분이다.

 

아직도 간혹 인기있는 목회자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교회가 있지만 로버트 슐러 목사가 이끌던 크리스탈 교회가 재정난으로 파산 선고를 한 것은 미국 기독교의 내리막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도 이미 10여년 전을 정점으로 기독교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기독교 내부에서도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자성론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으나 뚜렷한 대책이나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기독교가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 기독교인들의 삶이 설교 내용과 다르기 때문이고, 심심치 않게 터지는 교회의 재산 분쟁이나 성추문이 화약고 역할을 하였다.

 

또 이슬람 지역 선교를 무리하게 하다가 귀한 생명을 잃는 것을 순교라고 한다면 일반 국민들에게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이 자체적으로 정화되고 자제되면 기독교가 다시 부흥하여 3-40년 전의  전성기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문교수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이제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머지 않은 장래에 한국의 기독교도 유럽이나 미국 못지않은 위기에 처할 것이다. 

 

이미 교회에 나오는 젊은이들의 숫자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갈릴레오와 뉴턴, 다윈에 대해 교과서에서 열심히 배웠는데,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 이브를 꼬신 뱀이야기,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듣고 문자 그대로 믿기는 점점 더 어려워 지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위기를 이미 감지하고 기독교 내부에서도 자체적으로 '창조과학' 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이 문자 그대로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을 동원하여 지구 생성이 과학적으로 6천년 밖에 안되었고, 에덴동산은 현재 이락의 어느 지방이고, 진화론의 허점을 공격하는 등 지금도 나름대로 이와 관련된 서적과 주장이 가끔 나오지만 이 전보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동안 문자 그대로 믿었던 2천년 전의 기독교를 21세기의 이해 가능한 언어로 바꾸는 것이 기독교의 장기적 생존 전략이다.

 

문교수는 무엇보다 자신의 삶의 진정성을 유지하고 신학자로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없애기 위해 이러한 기독교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루기로 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신앙의 문제를 적당히 계속 넘기면 인생의 다른 신념들 마저 점점 희미해지고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목사님들 중에는 자신들도 속으로는 믿지 않는 이야기를 일요일마다 예배당에서 해야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전통 기독교는 배타성이 강하다. 

 

유대 부족신으로 출발한 야훼신의  복수하고 질투하는 모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마틴 루터의 개혁으로 큰 상처를 입은 가톨릭 교회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카톨릭은 교황 요한 23세가 시작한 제2차 바티칸 공회를 분수령으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라는 교회 중심주의와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를 상당 부분 포기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쩔 수 없이 듣지 못 했어도 하나님을 진실로 찾고 하나님의 은혜로써 자기 양심에 귀를 기울임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애쓰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라고 선언 한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포괄주의’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사실 오래 전에도 있었다.

 

AD 473년 알즈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한 것은 오직 그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저주하며 ‘그리스도는 누구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았다’ 고 선언했다.

 

카톨릭의 포괄주의 못지 않은 폭 넓은 교리가 그 당시에는 정통교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 교회의 교리는 중세에 이르러 오히려 철저한 배타주의로 바뀌어 1215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교회 밖에는 전혀 구원이 없다’ 고 그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 후 몇 번의 변화를 거쳐 1965년 카톨릭 교리가 다른 종교를 포용하는 정책으로 다시 전환한 후 세계적으로 가톨릭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바뀌었고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1985년도 인구 센서스 발표에 당시 한국의 가톨릭은 약 180만이었고 개신교는 약 650만이었다.

 

20년 후인 2005년에 가톨릭은 520만, 기독교는 860만으로 가톨릭 인구가 개신교에 비해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가톨릭의 획기적인 포용정책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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