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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36 화 ★ '저승에 내려 가셨다가'

wy 0 2019.04.01

 

 

Y 대학 교정은 어제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얕은 산들이 제법 겨울의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도서관 잔디밭에 2층 높이로 서 있는 둥그런 시계는 문교수와 약속한 오후 3시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서준은 연구실 3층으로 급히 올라가 문교수의 방을 찾았다.

 

‘재실’이라고 써있는 문을 두 번 두드리자 흰머리가 늘어난  문교수가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자리에 앉은 후 신방주의 안부를 먼저 전하며 곧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문교수는 방주가 못된 꽃뱀에게 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니케아 호수 밑에서 얼마 전 발견된 고대 성당은 그 후에 언론에는 별로 나오지 않는군요.

 

물속에 잠겨 있어서 발굴도 어렵겠지만 아무래도 이집트에서 2천년만에 빛을 본 도마복음 같은 엄청난 사건은 아니겠지요?”

 

서준의 질문에 문교수가 빙그레 웃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 지금도 사도신경은 외울 수 있지?”

 

“네, 그럼요.”

 

갑자기 웬 '사도신경' 하면서 서준의 기자 본능이 고개를 들었다.

 

“한번 외워보게.”

 

주일 학교 시간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면서도 문교수의 눈을 보니 농담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오히려 엄숙한 느낌마저 들었다. 

 

서준이 헛기침을 가볍게 하고 외우기 시작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안경 너머로 문교수의 눈이 지그시 감겨 있었고 서준이 나머지를 천천히 계속 외웠다.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사나 소설을 쓸 때 이렇게 아는 것을 그대로 쓰면 얼마나 쉬울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멘’ 소리가 나면서 문교수의 눈도 떠졌고 잠시 두 사람의 눈동자가 부딪혔다.

 

“얼마 만에 다시 외우는 건가?”

 

“글쎄요. 요즘 교회를 안 나가서 적어도 2~3년은 되었을 겁니다.”

 

“사도신경을 어려서부터 외우면서 어떤 생각을 했었나?”

 

“글쎄요, 무슨 생각을 했다기보다 기독교의 기본 교리니까 무조건 외웠지요.

 

아,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처음에 ‘저리로서’ 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한동안 그냥 외웠는데 나중에 누가 ‘거기로부터’ 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우편에서부터겠지요.

 

주기도문도 옛날에는 ‘나라가 임하시오며’ 를 ‘나라이 임하시오며’ 로 조사를 다르게   쓴 채로 오랫 동안 외웠던 것 같습니다.”

 

이런 말들을 하다보니 서준은 살약간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에서 기억나는 것들이 겨우 어색한 조사와 부사 정도였다.

 

문교수가 거의 백발인 앞 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ㅎㅎ, 나도 처음 외울 때 그랬어.

 

교리 중의 교리인데 조금 이상해도 물어볼 수가 없어서 그냥 넘어갔지.”

 

지금 생각해도 ‘나라가’가 ‘나라이’가 된 것은 미스테리야.

 

오래 전에는 조사의 구분이 없이 모두 ‘이’로 사용했다는 설과, 외국 선교사의 한글솜씨라는 설도 있는데 여하튼 이렇게 오래 동안 외웠을거야.

 

사실 좀 어이가 없는 일이지…”

 

그의 솔직한 말에 서준은 문교수와 공범이라도 된 듯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얼마 전에 사도신경의 새 번역이 나왔네.

 

’저리로서’를 ‘거기로부터’로, 그리고 ‘교통’이라는 단어를 ‘교제’로 바꾸었지.

 

하지만 아직도 자네가 외운 예전 번역이 더 익숙할거야.”

 

“네, 그렇군요. 사실 ‘교통’이라는 단어도 뜻은 이해 했지만 좀 어색했어요. ”

 

문교수가 책상 위에 있는 보온병을 가져와 뜨거운 물을 서준의 잔에 부어주었다.

 

“블랙 가루 커피와 생강차 밖에 없네. 뭐를 하겠나?”

 

“눈도 쌓이고 쌀쌀한데 생강차가 좋겠습니다.”

 

가루 커피 막대보다 두 배쯤 큰 녹색의 생강차 봉지에는 호두, 아몬드, 대추가 함유 돼있다고 써있었고 ‘점선을 따라 찢어주세요’라는 표시를 따라 쉽게 개봉되었다.

 

가루 분말의 강한 생강 냄새가 코 위로 퍼져 올랐다.

 

작은 스푼으로 잘 저은 후 오랜 만에 마시는 따끈한 생각 차는 어릴 때 먹던 약효 좋은 한약처럼 느껴졌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생강차를 한 모금 마신 문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외우는 사도신경은 사실은 중요한 한 구절이 빠져있지.”

 

그의 말에 서준이 뒤로 기댄 자세를 약간 앞으로 세웠다.

 

“사도신경의 원본에는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바로 앞에 ‘저승에 내려 가셨다가’라는 말이 있네.”

 

“그런가요? 저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장로교가 처음부터 그 대목을 뺏기 때문이지.

 

한국교회가 ‘기독교서회’를 통해 처음 찬송가를 펴낼 때 찬송가 뒤에 사도신경을 넣었는데 그 때부터 그 부분이 빠진거야.

 

장로교의 시조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예수께서 죽으신 다음에 파묻히시고 그 다음에 저승에 내려가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수 없었다” 고 기록했는데 한국의 장로교가 왜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는지 모르겠네. ”

 

서준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사도신경은 원본이랄 수 있는 3C의 ‘로마신경’에서 지금의 사도신경이 완성될 때까지 6백년 이상이 걸렸는데 처음에는 세례 문답용으로 사용되었지.”

 

“사도신경은 12사도들이 만든 것이 아닌가요?”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었지.

 

사도신경을 12구절로 나누어서 그러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부분은 베드로가 썼고, 그 다음 ‘그 외아들~’ 은 요한이 썼다며 쓴 사람 이름도 나와 있고, 유다 대신 도마가 두 번 쓴 걸로 되어 있는데 역사적 사실은 아니네.

 

서준은 니케아 호수 속의 성당에 대한 질문이 왜 사도신경에 대한 설명으로 길게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듯 문교수가 서준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니케아 호수 밑 성당에 사도신경에 대한 새로운 버전이 있는 것 같아.”

 

“와, 대박!  도마복음 못지 않네요. 

 

그건 누가 쓴 건가요?”

 

서준이 자세를 곧추 세우며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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