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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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33 화 ★ 사랑의 시간

wy 0 2019.03.21

 

 

"'사랑의 시간' 영화에서 엄마가 여주인공 유정미역으로 나오지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기차 여행 중 만난 가난한 대학생 박준과 열애를 하게 되는데 나중에 박준이 판사가 된 후 재벌집 딸과 결혼을 하지만 유정미를 계속 만나요.”

 

"그 부분이 TV 드라마와 좀 다르네.

 

TV에서는 대개 안 만나는데.”

 

“네, 유정미는 대학을 마치고 전공인 바이올린을 계속하기 위해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으로 가게 되지요.

 

떠나기 전날 밤을 박준과 함께 지낸 그녀는 뉴욕에 가서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배가 불러오자 한 학기를 쉬고 아무도 몰래 출산을 해요.

 

예쁜 딸을 낳았는데 박준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키우며 바이올린을 계속 하지요.”

 

종업원이 오니온 수프를 가져왔고 선희의 설명이 잠시 멈추었다.

 

빨리 먹다가는 입천장이 데일 정도로 뜨거웠고 국물이 맑으면서 시원했다.

 

“이렇게 맛있게 하려면 오니온을 약한 불에 1시간 이상 천천히 볶아야해요.

 

그래서 집에서 하기가 어려운데 엄마는 자주 만드셨어요.”

 

서준의 속 마음을 갈파한 듯 그녀의 말이 계속 되었다.

 

“언제든지 술 많이 드신 후 알려주시면 이렇게 제가 시원하게 만들어 드릴게요.”

 

서준의 몸의 중심이 수프처럼 따스해 지는 것을 느꼈다.   

 

오니온 수프를 거의 다 먹은 후 서준이 물었다.

 

“그 영화에서 왜 엄마, 유정미가 아이를 낳은 사실을 남자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박준이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는데 혹시라도 피해를 줄까 봐 말을 안 한 거지요.”

 

그녀의 눈이 반짝였고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준은 국회의원으로 4선까지 하게 되고 유정미도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쌓은 후 S대 교수가 되어 귀국하게 되어요.”

 

선희가 상체를 앞으로 살짝 기울이고 다음 말을 막 하려는데 스파게티가 나왔다.

 

그녀가 화제를 음식으로 돌렸다.

 

“명란 스파게티는 일본사람들이 먼저 개발했는데 이제 우리가 더 잘 만들어요.

 

마늘과 파세리를 적당량 넣는 게 맛의 비결이지요.

 

명란을 너무 짜지 않은 최상품을 쓰는 게 제일 중요하고요.”

 

선희가 영화 평론과 먹방 해설을 동시에 진행했다.

 

“이것도 맛있지만 지난번 선희가 해준 조개 스파게티도 정말 좋았어요.

 

우스개 소리로 얼굴 예쁜 여자보다 음식 잘 하는 여자가 오래 간다는 말도 있잖아요.”

 

말을 하고 보니 별로 적절한 멘트가 아닌 성 싶었다.


선희가 포크에 스파게티 면을 동그랗게 말아 올리며 생긋 웃었다.

 

몇 분 안 돼서 스파게티 접시가 모두 비워졌고 디저트로 케익과 커피를 시켰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떻게 되었나요?”

 

선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박준위원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15살 먹은 딸 선희를 만나지요.”

 

“잠깐, 지금 딸의 이름이 선희라고 했나요?”

 

“영어 이름 Sunny인데 선희로 들리지요?ㅎㅎ”

 

그 동안 유정미에게 미안한 마음과 진정한 사랑에 대한 고민 끝에 박준의원은 한 번만 더 출마를 한 후 부인과 이혼하기로 결심하게 돼요.


2년만 기다려 달라고 유정미에게 부탁하지요.”

 

하얀 본차이나 커피잔에 가득 따라 온 커피를 두 사람이 한 모금씩 동시에 마시고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유정미는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바이올린 연주와 학교수업을 계속해요.

이렇게 거의 2년이 지났는데 놀라운 소식을 신문에서 읽게 되지요.”

 

서준이 눈을 깜빡 거리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박준의원 마포 지역구 출마 포기, 갑자기 알츠하이머 증상으로>

 

이런 제목이 일간지에 크게 실렸고 박준 의원은 가족과 함께 스위스로 요양을 떠났다는 기사였어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서준은 오래 전 어느 국회의원이 치매로 선거를 포기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큰 충격을 받은 유정미는 모든 것을 운명으로 생각하고 바이올린 연주에 더욱 몰두하며 연주 여행을 다니지요.

 

세월이 5년쯤 흘러서 서울에 베를린 교향악단이 오는데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유정미와 같이 하게 되요.

 

연주회 날 세종문화회관에 리허설을 위해 도착한 유정미는 음악회 팜플렛을 보면서 박준의 회사가 스폰서라는 것을 알게 돼요.

 

 오늘 박회장이 올 것이고 연주 끝나고 2층 로비에서 오케스트라단원들과 함께 칵테일 파티가 있다는 것도 매니저가 알려주지요.”


“아,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2악장이 그 영화에 정말 잘 어울리겠네.

 

박회장은 옛날 기억을 모두 잃었겠지요?”

 

“네,  연주를 끝내고 기립 박수를 받는 유정미를 보며 열렬히 박수를 치는 박준은 그녀를 전혀 기억 못해요.

 

무대 위에서 객석을 두리번 거리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박수를 치는 그를 찾아 낸 바이올리니스트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여요.

 

곧 바로 앵콜 곡으로 크라이슬러 ‘사랑의 슬픔’을 연주하지요.”

 

“아, 그 곡도 좋지요. 

 

엄마가 바이올린을 좀 하셨나요?”

 

“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5년간 했고 영화 대본을 받고서 3달 간 매일 연습하셨대요.”


“그러셨구나. 연주회 끝나고 칵테일 파티는 어떻게 되었나요?”

 

“박회장이 파티 도중 매니저를 불러서 오늘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누구냐고 묻지요.

 

매니저가 파티에 참석 한 유정미를 그에게 소개 하지만 악수를 하는 박회장의 얼굴에 아무런 감정도 안 나타나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1악장의 화려하고 우수에 찬 멜로디가 화면에 흐르면서 영화가 끝나지요.”

 

“영화제목 ‘사랑의 시간’ 이 무슨 뜻인지 이제 좀 알겠네. ”

 

잠시 후 서준이 커피잔을 비우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손을 닦는데 벽 모서리에 붙은 작은 CCTV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음식을 서브한 종업원이 화장실로 들어오며 서준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여기 식당에는 CCTV가 없지요? “

 

“있는데 손님들이 신경 안 쓰시게 겉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 그래요?  없다고 하던데?..”


“잘 모르는 사람이 물어보면 귀찮아서 없다고 하지요.”

 

“아, 그렇군요.”

 

태연히 대답했지만 서준의 가슴이 몰래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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