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향하는 바라바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아직도 조금 전 일이 꿈인 듯했다.
‘생선가게에서 체포되고, 감방에 갇힌 후 근위대장을 만나고, 루브리아가 들어오고… 아, 내가 하나님께 기도했었지!’
“너 또 가게 비우고 어디를 온종일 쏘다니다가 이제 오는 거냐?”
집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한마디 하신다.
바라바는 그냥 “죄송합니다.” 하며 싱긋 웃었다.
“얘가 뭐 좋은 일이 있는지 실실 웃기만 하네. 웃는 얼굴이 네 엄마와 똑같구나.”
어머니는 1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날의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누워 앓으시더니 회복하지 못하셨다.
제물 가게가 잘되자, 목이 좋은 곳에 더 큰 가게를 열려고 했을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집으로 어느 날 죽은 비둘기 한 마리를 누가 던져 넣었는데, 다리에 철필로 쓴 메시지가 묶여 있었다.
[요셉, 제물 가게를 또 열면 큰 재앙이 올 것이다.]
하지만 바라바의 부모는 새 가게를 열 계획을 중단하지 않았다.
바라바는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안나스 제사장은 그와 경쟁이 될 만한 제물 가게가 있으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장사를 방해하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안나스의 짓이라면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었다.
특히 바라바의 부모는 안나스의 사두개파와 사이가 안 좋은 에세네파에 속해 있었다.
에세네파는 청빈한 삶을 강조하면서 광야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최근에는 세례 요한도 참여하여 그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사두개파는 천사나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 성전의 제사의식을 가장 중요시한 반면, 에세네파는 성전에서의 예배를 타락한 것으로 간주하였으니 이 두 파는 충돌을 면할 수 없었다.
바라바가 아버지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버지, 지금 가게가 잘되고는 있지만, 큰 가게를 또 하나 열면 좀 힘들지 않을까요?”
“이제 종업원을 두 명 정도 더 고용하고 우리 모두 같이 운영하면 별문제는 없을 거다.”
“안나스 일당이 방해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그놈들이 방해하는 건 하나도 무섭지 않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세금도 잘 내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니?”
바라바는 아버지의 의사가 확고한 걸 알고 더는 만류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작년 종합 격투기 대회에서 우승한 친구 헤스론을 당장 종업원으로 쓰자고 하여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 냈다.
바라바의 아버지가 새 가게를 중단하기는커녕 양이나 염소도 제물로 취급하려 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또다시 같은 방식의 경고가 날아왔다.
[요셉, 마지막 경고다. 즉시 새 가게를 여는 것을 중단치 않으면 크게 후회하게 될 거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협박에 굴하지 않고 계획대로 일을 추진하여 새 가게를 얼마 후 열었다.
때는 유월절을 며칠 앞두어 제물 판매가 가장 많은 시기였다.
가게를 여는 날 그동안의 단골손님들, 주위 친지들, 또 거래하는 도매상인들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였다.
가게를 돌아본 후 에세네파 장로 한 사람이 요셉에게 말했다.
“요셉 선생, 오늘 같은 날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비너스나 아폴로 같은 우상 조각을 파는 것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군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열만 해 놓을 뿐 경배하는 일도 없고, 마음은 오직 하나님만 향하고 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그들의 신을 팔고 이득을 남겨 우리 회당도 더 짓고 십일조도 내면 좋지 않을까요?”
“네. 그런 면도 있지요.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시험에 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가게 입구가 어수선해지며 몇 사람이 우르르 들어왔다.
안나스가 활짝 웃는 얼굴로 경호원들과 함께 요셉에게 다가왔다.
“요셉 선생, 정말 축하합니다.
이렇게 좋은 자리에 큰 가게를 내셨으니 앞으로 장사가 더 잘될 겁니다.”
“안나스 제사장님, 친히 오실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셉은 안나스가 갑자기 나타나자 의아한 느낌을 받았으나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는 노인답지 않게 얼굴이 기름지고 불그스레했으며, 몸매도 단단해 보였다.
유대인 특유의 매부리코와 허연 턱수염이 돋보이는 그는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안나스는 가게 안을 한 바퀴 휘휘 둘러보더니 곧 요셉에게 다시 다가와 말했다.
“이제 곧 유월절이니 더 바쁘시겠습니다. 앞으로 자주 연락합시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와 주셔서 영광입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나스는 들어올 때와 같은 웃음을 띠고 나갔으나 바라바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바라바의 어머니는 뜻밖의 손님이 온 것에 놀라서 남편 요셉에게 물었다.
“아니, 저 사람이 웬일이에요?”
“글쎄, 안나스가 이제 우리를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나? 여하튼 그가 와서 내 체면이 섰고 많은 분이 축하해 주니 그동안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구려. 앞으로 잘 될 것이오.”
과연 요셉의 말대로 새 가게는 날로 번창하여 바라바도 분주히 두 가게를 오가며 일해야 했다.
이렇게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아침, 헤스론이 헐레벌떡 바라바가 있는 작은 가게로 왔다.
“큰일 났어. 가게에 불이 났어.
지금 옆 가게 사람들과 같이 불을 대충 끄고 달려오는 거야.”
바라바와 요셉 그리고 마침 같이 나온 바라바의 어머니까지 급히 가게로 달려갔다.
새벽에 원인 모를 불이 나서 안에 있던 비둘기들이 대부분 타 죽었고, 독한 냄새로 가득한 가게는 가축들의 울부짖음으로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아직 살아 있는 제물들을 정신없이 밖으로 옮기던 중, 어머니가 비너스 신상을 옮기다가 갑자기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그녀는 이후 집에 몸져눕게 되었으며 이때의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몇 달 후 운명하였다.
바라바는 안나스가 일부러 개업식에 와서 축하해 주는 척하면서 뒤로 방화를 지시한 것으로 확신했다.
몇 달간 장사가 잘되자 넋 놓고 방심한 것이 크게 후회되었다.
요셉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이유가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우상이 되어 더 큰 가게를 내다가 이런 화를 불렀다는 자책과 비탄에 빠졌고, 결국 새 가게를 정리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요셉이 가게에서 우상을 팔아서 벌을 받은 거라고 숙덕거리기도 했다.
*안나스: AD6~15까지 대제사장. 그의 사위 가야바와 아들들도 각자 대제사장의 직위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