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의 아버지는 성전 근처 작은 가게에서 제사용 비둘기를 팔고 있었다.
가게 한쪽 면에는 돌이나 나무로 만든 조각들도 진열하여 팔기도 하였다.
희생 제물로 바치는 짐승 중 소나 양은 가야바 대제사장의 장인인 안나스가 독점 공급하고 있었다.
바라바는 가게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나, 일주일에 두세 번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가게를 지켜야 했다.
비둘기를 훔쳐 가려는 동네 꼬마들도 있었고, 우상 조각을 팔면 안 된다는 서기관들이 가끔 와서 귀찮게도 굴었다.
그날도 오전 내내 따분하게 가게를 지키고 있는데, 한 여인이 들어오며 말을 건넸다.
“저‥. 혹시 비너스 여신상이 있나요?”
바라바는 손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의 이국적이고 청순한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었다.
“네, 큰 것은 없고 여기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녀가 여신상을 둘러보는 동안 바라바는 가슴이 쿵쿵거렸으나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일 것이다 .
로마인들이 입는 자색 *튜닉을 걸치고 고급스러운 보석 장신구를 두르고 있었다.
그녀도 바라바의 눈길을 의식한 듯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띠는 것 같았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바라바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가 물었다.
“조금 더 큰 것은 없나요?”
“네, 지금은 없는데 내일 이맘때 다시 오시면 보여드리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가 표 나지 않게 대답하는데, 그녀에게서 오렌지꽃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네, 그럼 내일 다시 올게요.”
그녀가 상냥하게 인사하는 순간 바라바는 몸 전체가 떨리는 환희를 느꼈다.
조금 전 왔던 여인은 비너스의 환생이었고, 그래서 찾는 물건도 비너스상일 텐데 *리시포스가 만든 조각상이라고 해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유대인보다 조금 커 보였고, 수줍은 듯 교양 있는 모습에서는 정숙한 처녀의 자태가 느껴졌다.
당장 도매상에 가서 큰 비너스상을 몇 개 가져올까 하다가, 시장기를 느낀 바라바는 가버나움 시장에 있는 사라의 가게로 먼저 향했다.
가버나움 수산시장은 새벽 갈릴리 호수에서 잡아 온 싱싱한 생선들을 파는 가게가 많았다.
사라의 가게 앞은 오늘따라 사람들이 모여 있고 소란스러웠다.
가까이 가 보니 전투복을 입은 로마 근위대 대여섯 명이 가게 주인 사무엘 님에게 채찍을 흔들며 위협하고 있었다.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니, 어제 사 간 생선을 먹고 빌라도 총독의 부인이 배탈이 났다는 이유로 가게에서 독을 탔는지 의심하는 것이라고 했다.
바라바가 선뜻 근위대를 막아서며 말했다.
“잠깐 멈춰요. 확실한 증거도 없이 사람을 이렇게 다루면 안 되지요.”
“이놈은 또 뭐야? 네가 이 사람 아들이냐?”
“난 이 가게 단골인데 그동안 한 번도 생선을 먹고 아픈 적이 없었소.
뭔가 다른 문제로 아프실 수도 있으니 오늘은 이만하시지요.”
근위대원들은 바라바의 떡 벌어진 어깨와 무게 있는 말투에 잠시 주춤했으나 주위를 한 번 돌아본 후 말했다.
“너도 수상한 놈이니 우리와 같이 근위대로 가야겠다.”
근위대원들의 창끝이 바라바의 얼굴을 향했다.
싸우기에는 손에 든 무기가 없고 얼굴도 노출되어 바라바는 순순히 밧줄에 묶여 따라갔다.
근위대 건물은 높은 벽으로 바깥과 차단되어 있고, 건물 중앙의 높은 망루에 감시초소가 있었다.
운동장 저편에 빨간 망토를 걸치고 훈련에 열중하는 근위대의 모습도 보였다.
바라바와 가게 주인 사무엘은 근위대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 각각 좁은 감방에 처넣어졌다.
어두운 감방에 횃불 하나가 흔들리는 것이 바라바의 눈에 들어왔다.
퀴퀴하고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고, 벽 한쪽에 보이는 어렴풋한 붉은 흔적은 핏자국인 것 같았다.
바라바는 주위를 살핀 후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가게에서 나와서 바로 비너스 신상을 가지러 갈 걸 하는 후회를 하는데, 벽에 난 손바닥만한 문이 삐걱 열리더니 빵 두 조각과 물 한 컵이 들어왔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밖에 서 있는 보초를 불렀다.
“여보시오, 나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조사할 것이 있으면 빨리해 주시오.”
보초가 힐끗 보며 귀찮다는 듯이 작은 문을 쾅 닫았다.
‘오늘 집에 못 들어가면 아버지가 걱정하실 텐데‥.
내가 여기 있는 것도 모르실 테고‥.’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가 자신을 향해 천정에서 쏜살같이 덮치는 느낌이었다.
혹시 이놈들이 내가 열성당원인 것을 알아챈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더욱 불안했다.
무엇보다 제일 걱정되는 것은 내일 올 비너스 여인을 못 만난다는 것이었다.
약속을 하고도 가게에 안 나온 자기를 두고 실망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을린 역청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방이 조용하니 어느 방에선가 신음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바라바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반듯이 앉아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을 무렵, 덜컥 옥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왔다.
로마 백부장 한 사람과 생선가게 앞에서 바라바를 끌고 온 근위대원이었다.
*튜닉: 로마 시대의 겉 옷
*리시포스: BC4세기 그리스 유명 조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