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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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49 화 ★ 폐제분주

wy 0 2019.05.16

 

 

방청석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고 뭔가 이상하다는 듯 방주에게 시선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방주가 입을 열었다.

 

“지금 검사님이 하신 말씀, 야곱과 헬리가 이복 형제라는 것은 가톨릭에서 중세 이후 지어낸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에요.

 

전혀 역사적 근거가 없는 소설입니다.

 

또한 가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영원 동정녀설’ 을 교리로 확정한 후 예수님의 동생들도 마태복음에 나오는 ‘다른 마리아’가 낳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마리아가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지요.

 

검사님은 저를 목사가 아니고 카톨릭 신부로 착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방청석에서 ‘방주 유죄’ 를 들고 있던 사람들이 피켓을 내리기 시작했다.

 

목이 더욱 말랐으나 방주가 계속 입을 열었다.

 

“기독교 교리는 신학자들이 모여서 만든 원칙을 황제나 교황이 최종 선언하여 역사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2백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교리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분들을 성인으로 추앙했지만 사실 이들의 목숨은 억울하게 희생 된 경우도 있습니다.”

 

검사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주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피고는 신성한 법정에서 혹세무민하며 성인들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발언을 중지시켜 주십시오.”

 

판사가 두터운 눈썹을 살짝 올리며 방주에게 말했다.

 

“좀 더 납득할 만한 설명을 못하면 성인 모독 죄로 다스릴 것이요.”

 

분위기가 갑자기 중세 종교 재판 같았다. 

 

방주가 용기를 내서 계속 말했다.

 

“제가 지금 말씀 드리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약 2백년 전 조선의 젊은 선비 윤모, 권모 두 사람이 가톨릭의 교리를 지키다 전주 감영에서 참수 당했습니다.

 

가톨릭의 가르침에 따라 신주를 불 태우고 제사를 폐했기 때문인데 이것을 ‘폐제분주’ 라고 합니다.

 

유교가 뿌리 깊은 조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이들이 가톨릭을 믿은 후 1790년 조선 왕조 사절단을 따라 북경에 도착하여 배운 것이 바로 폐제 분주였습니다.

 

당시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칙령에 의해 중국에서는 폐제 분주를 해야 했고 북경 주교인 '구베아'가 두 선비에게 그렇게 지시 한 것입니다.”

 

방주가 가볍게 방청석을 좌우로 둘러본 후 이어나갔다.

 

“150년이 지난 1939년 교황 '비오12세'는 새로운 칙령을 발표하여 동양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공자를 공경하는 행위는 우상 숭배가 아니고 사회 문화적인 예절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한국 가톨릭도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조상 제사를 문제 삼지 않았지요.

 

이렇듯 교리와 칙령은 시대에 따라 바뀌는데 이런 와중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신앙을 위해 순교한 건가요?

 

아니면 종교 권력의 상층부에서 필요에 따라 만든 교리의 희생양인가요?

 

이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이 성인이 되었다고 그들의 희생이 정당화 되나요?

 

교리와 하나님을 동일시 하는 자들은 배타적이고 폭력적이며 그렇게 지켜진 교리는 또 하나의 우상이 됩니다.

 

그러니까 2백년 전 두 선비는 ‘폐제분주’ 라는 우상에 희생 된 것이지요.”

 

판사는 눈을 껌벅거렸고 방청석에서는 몇 사람이 박수를 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검사가 벌떡 일어나 방주를 공격했다.

 

“피고는 본인이 개신교 목사임에도 엉뚱하게 가톨릭의 예를 들면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유죄가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의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공격의 기세는 처음보다 약해 보였다.

 

“그렇다면 개신교에서 문자주의를 신봉하여 일어난 역사적 비극도 말씀 드리지요.


1992년 다미 선교회라는 단체는..”

 

방주의 발언을 판사가 가로막았다

 

“여기는 피고의 개인 유세장이 아니요.

 

이제 판결을 내리기 전에 피고 신방주는 최후 진술을 하시오.”

 

방주가 일어나 한 손으로 수갑을 가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성경이 성령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것은 중세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루터도 성경을 그리스어로 다시 번역한 에라스무스가 있었기에 종교 개혁을 할 수 있었지요. 

 

아직도 대부분의 교회는 모래 속에 머리를 파 묻은 타조처럼 신화를 사실로 믿으라고 강요합니다.

 

종교는 강요가 아니라 깨달음이며 과도한 전도 지상주의는 십자군 시대의 흔적입니다.”

 

“피고는 그만 입을 다무시오.  

 

더 들을 것도 없이 판결을 하겠습니다.”

 

판사가 근엄한 얼굴로 컨닝 페이퍼 같은 쪽지를 소매 안에서 꺼냈다.

 

글씨가 작은지 머리 위에 올린 검은 뿔 테 안경을 코 위에 걸치고 읽기 시작했다.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맬 수 있겠느냐?”

 

방주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그것은 욥기에 나오는 말씀이었다.

 

판사의 말이 좀 더 계속 되더니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 깨닫지도 못 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말을 한 피고 신방주에게 징역 5년을선고한다.”

 

방청석이 술렁거렸고 판사의 말이 계속 되었다.

 

“다만 피고가 5일간 금식 기도 한 후 악어를 낚시로 잡는다면 즉시 풀어준다.”

 

판사가 방망이를 막 두드리려는데 방청석에서 외치는 소리가 났다.

 

“이 재판은 무효입니다.

 

모든 피고인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 오늘 신목사는 국선 변호인도 없는 상태입니다.”

 

서준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판사가 높이 든 방망이를 내리쳤고 방주의 뒤에 있는 교도관이 나머지 한 손에 수갑을 채우려 했다.

 

바로 그 때 방청석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최순실이 홀연히 백 말을 타고 달려와 방주를 자기 뒤에 태우고 재판정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방주가 목이 말라서 물을 좀 달라고 했다.

 

“신교수님, 여기 물 있소. 계속 잠꼬대를 하시네.”

 

무혁의 목소리였고 어렴풋이 날이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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